2024년 5월 1일 (수)
(백) 부활 제5주간 수요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현대 영성: 깨달은 사람은 깨달은 사람을 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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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9-26 ㅣ No.1868

[현대 영성] “깨달은 사람은 깨달은 사람을 알아봅니다”

 

 

2016년 유학 중, 필자는 논문을 지도해 주고 있던 토론토 대학의 존 다도스키(John Dadosky) 교수님과 함께 잠시 귀국하여 3주 동안 한국의 불교와 가톨릭 수도원 체험을 한 적이 있다. 일정 중에 우리는 청도 운문사를 방문하였는데 주지 스님께서 친히 사찰을 안내해 주셨고 다도(茶道)의 시간도 가졌다. 담소를 나누던 중 존 교수님이 필자에게 “이 스님은 깨달음을 얻었는지 아직 얻지 못하였는지” 여쭤보라고 부탁을 하였다. 스님께 질문을 드리자 빙그레 웃으시며 이렇게 대답을 하셨다.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깨달음을 얻은 사람을 알아봅니다.” 심오한 이 대답 속에는 ‘교수님은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해 저를 못 알아보시는군요’라는 의미가 숨어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런 것은 질문할 필요가 없다’는 뜻일까? “깨달은 사람은 깨달은 사람을 알아본다”는 스님의 이 말씀을 통해 종교 간 대화에서 있어서 ‘영적인 통교’(Spiritual Communion)이라는 의미를 여기에서 나누고자 한다.

 

영적인 깨달음 혹은 깨어남은 인간 의식의 변형을 가져오고 새로운 관점으로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그리고 개방성과 자비로운 사랑으로 그 열매가 드러난다. 반면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한 이들은 자신의 거짓 자아에 지배되거나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하는 경우가 많다. 위의 교수님과의 여정 가운데 어느 불교 사찰에서 템플 스테이를 한 적이 있었는데, 첫 날밤에 템플 스테이를 온 십여 명의 젊은이들과 함께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게 되었다. 그런데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젊은 스님께서 가톨릭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꺼냈다. 십자군 전쟁이나 종교 재판, 남미에서의 선교 방법에 대한 부조리에 대해 언급하면서 필자에게 “신부님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의견을 물었다. 당혹스러운 질문이었다. 많은 젊은이들은 어떤 답을 할까 무척 궁금해하는 눈빛이었다. “저는 종교와 종교인은 구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교와 그리스도인을 분리시켜서 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신비체(콜로 1,18 참조)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완전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죄인들입니다. 부족하고 나약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공동체이기에 그 가운데에는 성숙한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모두가 사랑의 완전함으로 나아가고 있는 과정 중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어느 종교이든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 자신을 한 번 보십시오. 우리가 완전합니까? 교황님께서도 당시 그리스도인의 미숙함에 대해 인정하시고 사죄를 하셨습니다.” 젊은이들은 이 대답에 수긍을 하는 모습이었다. 그 젊은 스님도 마음이 불편했는지 떠나는 날 우리 일행에게 다가와서 “그날 무례한 질문을 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앞으로 자주 만나 대화하며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고 제안을 하였다. 우리 일행은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고 마음이 참 훈훈해졌다.

 

이 젊은 스님과의 작은 일화가 종교 간 대화에서 우리가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 주었다. 자신의 종교 안에서 오랜 수행을 통해 영적인 깨달음을 얻은 이들은 다른 종교에 대해서도 개방성을 지니며 존중과 이해로 다가가기 마련인 것 같다. 불자이든 그리스도인이든 모두가 한 명의 인간으로서 다른 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종교적 경계를 넘어가는 영적인 통교인 것이다. 토마스 머튼과 자델 린포체와의 만남은 우리에게 종교가 다르지만 깨어난 이들이 어떻게 영적인 통교를 나눌 수 있는지에 대해 잘 보여 주고 있다. 1968년 11월, 머튼은 족첸의 살아 있는 위대한 스승들 중 한 명인 자델 린포체를 그의 은둔처에서 만났다. 그들은 어떤 장벽도 없이 즉시 서로를 알아보았다. 머튼은 그에게 깊은 감명을 받아 이렇게 기록했다. “제가 지금까지 만난 이들 중에 가장 위대한 린포체였고, 너무도 인상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자델 역시 즉시 머튼의 깊은 영적인 수준을 알아보고, “누가 먼저 해탈에 이르는지 보도록 하지요”라고 말하면서 머튼을 ‘타고난 부처’라고 칭했으며, 다음 생애 안에 혹은 이번 생애에 완벽한 해탈에 이를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머튼도 그에게 심지어 자신의 스승이 되어 달라고 청했다. 비록 그들은 짧은 만남을 가졌지만 헤어질 때에는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실로 아름다운 영적 통교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깊은 깨달음을 통해 종교를 넘어 서로를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 그 마음은 우리 시대의 모든 종교인들이 가져야 할 태도일 것이다. 자신의 종교의 우월성을 내세우거나 다른 종교인을 비하할 때 아직 우리는 하느님의 보편적인 사랑의 마음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표시가 아닐까?

 

[2022년 9월 25일(다해) 연중 제26주일(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가톨릭마산 3면, 박재찬 안셀모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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