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 (토)
(백)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이 제자가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이다. 그의 증언은 참되다.

세계교회ㅣ기타

격동의 현대사11: 교회 일치의 상징 공동번역 성서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1-18 ㅣ No.120

[격동의 현대사 - 교회와 세상] (11) '교회 일치의 상징' 공동번역 성서


세계 첫 공동번역... 성서 대중화, 복음화 이바지

 

 

- 「공동번역 성서」 구약편을 함께 번역하는 선종완(왼쪽) 신부와 문익환(오른쪽) 목사. 사진제공=성서와 함께.

 

 

1977년 4월 10일, 한국 성경 번역사에 길이 남을 쾌거가 이룩됐다.

 

한국 천주교회와 개신교회가 힘을 합쳐 신ㆍ구약 합본 「공동번역 성서」를 번역하고 대한성서공회를 통해 발행한 것이다. 1969년 1월 6일 번역에 들어간 지 8년 만의 결실로, 한국 교회는 감격에 젖었다.

 

이로써 가톨릭교회는 역관 출신 최창현(요한)의 「성경직해광익(聖經直解廣益)」(1790~1909), 한기근 신부 등의 「사사성경(四史聖經, 종도행전 포함)」 및 「복음성서」(1910~1948), 선종완 신부의 구약성서 17권(9책, 1958~1963) 발간에 이어 최초로 신ㆍ구약 완역본 성경을 갖게 됐다. 신ㆍ구약 합본 공동번역 성서 발행은 이 땅에 복음이 전래된 지 200년 가까운 세월에 처음 있는 경사였고, 우리나라 성서 번역사에도 '하나의 말씀'이라는 굵직한 이정표를 세웠다.

 

특히 천주교회를 비롯해 국한문 혼용 「관주성경(貫珠聖經)」을 써오던 개신교회 가운데 성공회와 일부 감리교 및 기독교장로회, 정교회 등도 이를 채택함으로써 교회일치에도 크게 이바지하는 계기가 됐다. 물론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와 달리 우리나라에선 '하느님' '야훼'라는 표현이나 외경을 받아들이는 문제로 개신교계 보수신학자들 반대에 부딪쳐 '보편화'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한국 그리스도교회 일치와 대화를 위한 획기적 시도로 평가됐다.

 

당시 공동번역 성서 번역에 참여한 문익환 목사와 이현주 목사의 점심 중 대화는 아직도 '신화처럼' 회자된다.

 

"이 목사, 공동번역을 하다보니까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됐어. 뭔지 알아요?"

 

"???"

 

"요새는 구교(Catholic)가 신교(新敎)고, 신교(Protestant)가 구교(舊敎)더라구요."

 

 

발간 계기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아니었다면, 공동번역 성서는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성서학계 보편적 견해다. 공의회 결정을 통해 '말씀 전례'가 '성찬 전례'와 함께 중요한 부분으로 인정됐고, 성서가 "각국어로 적합하고 정확하게, 특별히 성경 원문에서 번역 출간되기를" 권장했을 뿐 아니라, 성경 번역이 "갈라진 형제들과 공동 협력으로" 이뤄지기를 희망했기에 가능했다(「전례헌장」 24ㆍ35ㆍ51항, 「계시헌장」 22항).

 

이에 한국 천주교회는 「계시헌장」 정신을 구현하고자 1965년 2월 성서위원회를 설립하고, 1968년 2월 교황청 성서위원회와 세계성서공회연합회가 공동 작성한 성경 번역 원칙 하에 대한성서공회와 '신ㆍ구약 성서번역 공동위원회'를 구성해 번역에 들어갔다. 이렇게 추진된 공동번역 사업은 2년 만인 1971년 신약성서, 8년 만인 1977년 구약성서와 신약성서 개정판 합본 발간으로 세계 교회 사상 첫 공동번역 결실을 맺었다.

 

번역 작업에는 신약공동번역위원회에 백민관 신부와 허창덕 신부, 김창렬 주교(가톨릭대 학장 취임으로 한 달 만에 사퇴), 박창환 목사, 정용섭 목사, 김진만 고려대 교수, 이근섭 이화여대 교수 등이 참여했고, 구약공동번역위원회에 선종완 신부와 문익환ㆍ김정준 목사 등이 참여했다. 또 문장 위원으로 이현주(동화작가)ㆍ김우규(문학평론가)ㆍ양성우(시인)씨 등도 참여했다.

 

겨레 역사상 최초로 가톨릭과 개신교가 연합해 우리말로 선보인 공동번역 성서 번역 원칙은 축자 번역이나 형식적 일치를 피하고 '내용의 동등성(Dynamic Equivaence)'을 취했다는 데 있다. 이를 위해 △ 당시까지 사용하는 명사가 같은 것은 그대로 뒀고 △ 그렇지 않은 명사는 사전이나 교과서에서 쓰는 명칭을 따랐으며 △ 이 두 가지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엔 원어 발음을 따랐다. 하지만 하느님 말씀을 한글로 옮기는 데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이 따랐고 원어를 실제로 한글로 표기하는데엔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당시 구약 번역에 크게 이바지한 선종완 신부는 생전에 펴낸 「제1편 창세기」 머릿말을 통해 "번역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그 참뜻에 충실할 뿐 아니라 우리말 어법이 허락하는 한 글자에까지도 충실하려고 힘쓰는 한편 모든 이들이 성경을 읽고 영적 이익을 얻도록 하기 위해 되도록 쉬운 말로 옮기려고 애썼다"고 밝힌 바 있다.

 

 

성서 대중화에 '견인차 역할'

 

대한성서공회에 따르면, 2006년 10월부터 1년간 발행된 공동번역 성서는 1019부에 불과하다. 그 전년도에도 3000부에 지나지 않는다.

 

1971년부터 1984년까지 14년간 공동번역 신약성서가 73만4000부, 신ㆍ구약 합본 공동번역 성서가 26만2000부나 팔려나갔던 것을 감안하면, 공동번역 성서 수요가 얼마나 줄었는지 금세 알 수 있다.

 

이는 2005년 말 대림시기부터 한국 천주교회가 새 「성경」을 쓰기 시작한 게 직접적 원인이 됐지만, 이에 앞서 1993년 대한성서공회에서 「새 번역 성경」을 낸 것이 보다 큰 원인이 됐다. 이에 따라 공동번역 성서는 현재 성공회나 정교회에서나 쓸 뿐, 천주교와 개신교 어느 쪽에서도 쓰지 않는 성경이 됐다.

 

그러나 공동번역성서를 이대로 포기하기엔 그 의미가 결코 적지않다. 공동번역 성서는 우선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계기로 한국 천주교회에서 '갈라진 형제들'인 개신교회와 공동 협력으로 '하느님 말씀'을 번역했다는 뜻이 있다. 또 국내 천주교ㆍ개신교 성서학계 권위자들이 번역에 함께 참여, 마치 시를 읽는 듯한 빼어난 문체와 토속적인 낱말이 많이 사용된 장점이 있다. 이로 인해 독자들, 심지어는 어린이들까지도 성서를 친숙하게 접하도록 하는 계기가 됐다.

 

특히 성서의 우리말 번역은 1970년대부터 불기 시작한 한국천주교회 성서 읽기운동의 초석이 됐다. 가톨릭성서모임(1972)이나 바오로 성서 모임('성서를 따라서', 1976), 시청각 통신성서(1978) 등이 1970년대에 비롯됐고, 이후 생활성서 여정 성서 모임(1983)과 성서못자리(1990), 성서 백주간(1992), 우리 성서 모임(1993) 등 성서사도직운동으로 이어졌다.

 

물론 공동번역 성서는 '의역' 때문에 원문의 개성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다는 비판도 받았지만, 한국 현대사의 전환기에 성서를 대중화하고 보급하는데 중요한 견인차 역할을 했고, 복음화의 지렛대가 됐다.

 

1999년 공동번역성서 개정판 작업에 참여한 전무용(53, 대한성서공회 번역실) 부장은 "개인 의견으로는 가톨릭 교회 선교에 알게 모르게 공동번역 성서가 지대한 기여를 한 것으로 본다"며 "공동번역 성서는 매우 좋은 번역본 성경이어서 과거 산물로 버리고 가기엔 안타깝고 새 성경과 상보적(相補的) 관계에 놓여있기에 여러모로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고 두 성경을 함께 볼 것을 권했다.

 

 

공동번역 성서는

 

국내 첫 가톨릭과 개신교 공동 한글판 성경인 공동번역 성서는 구약성서 1925쪽(제2경전 328쪽 포함), 신약성서 505쪽 등 총 2430쪽으로 이뤄져 있다.

 

부록으로 성서 지도 8장과 지명 색인을 덧붙였다. 번역 원본으로는 신약이 그리스어 성경인 「The Greek New Testament」(1966년, 초판, 세계성서공회연합회 발행)를, 구약이 히브리어 성경인 「Masoretic Text in Biblia Hebraica」(1937년, 3판, Rudolph Kittel 편집)를 텍스트로 삼았다.

 

하지만 번역과 관련, 논의나 절충과정, 논의 결과에 관한 상세한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1989년 3월 1일 시행에 들어간 개정 '한글 맞춤법'에 따라 어법을 바로잡고 중대한 오ㆍ탈자를 교정, 1999년에 개정판을 내 현재에 이른다.

 

[평화신문, 2009년 1월 18일, 오세택 기자]



2,540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