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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병인순교 150주년 기념8: 정의배 마르코 회장 - 바오로 사도 이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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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7-23 ㅣ No.761

병인순교 150주년 기념 (8) 정의배 마르코 회장 - 바오로 사도 이해하기

 

 

성경에 나오는 신비한 인물 중 한 분이 바오로 사도다. 그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철저히 박해하다가 회개하여 반대로 그분을 적극적으로 선포하는 사도로 바뀌었다. 그것도 한 때 그런 것이 아니라 ‘달릴 길을 다 달려’ 죽음에 이를 때까지 한결같이 예수님을 선포하였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무엇이 계기가 되었을까? 쉽게 이해가 되질 않는다. 오늘 소개하는 정의배 마르코 회장이 그 의문을 풀어준다.

 

정의배는 1795년 서울 창동의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한문에 능통했기에 작은 서당을 운영하며 아이들에게 유학을 가르치며 생활하였다. 그래서 천주교 신자들은 제사를 지내지 않는 패륜집단으로 생각했고, 박해를 받아 마땅하다고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희한한 일을 보았다. 그가 44살이던 1839년 9월 21일, 그날은 한강 새남터에서 프랑스 선교사 세 명이 처형되는 날이었다. 정의배는 우연히 그곳을 지나다가 선교사들이 기뻐하며 순교하는 장면을 보고는 너무나 이상하게 여겼다.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기뻐하며 죽을 수 있는가?

 

그날을 계기로 정의배는 천주교 신자들을 수소문하여 교리책을 구해 탐독하였고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전에는 천주교인이면 착한 사람이 될 수 없다고 믿었다. 그러나 지금은 천주교인이 되어야 정말 착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는 입교하여 영세를 받았고,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자기 가족들뿐만 아니라 예비자들을 모아 가르치고, 주변의 가난한 사람들과 병자들을 방문하였다. 또한 고아들을 양육하는 성영회(聖영會) 사업이 시작되자 여러 아이들을 입양하여 집에서 돌보아주었다. 그는 학식이 뛰어났음으로 회장으로 임명되어 선교사들을 도우며 평생을 가르치고 봉사하는 일에 힘썼다.

 

1866년 병인박해가 시작되자 정의배 회장은 어떤 사람의 밀고로 일찌감치 체포되었다. 나이가 이미 71세에 이르렀으므로 포졸들은 그를 묶지 않고 정중히 모셔갔다. 그러나 지도급 인사였기에 혹독한 형벌과 문초를 여러 차례 받았다. 그런 가운데에도 끝까지 신앙을 고백한 정의배 회장은 3월 11일 군문효수형으로 칼을 받아 처형되었는데, 그 장소는 옛날 선교사들이 기뻐하며 죽음을 맞이한 한강 새남터였다.

 

정의배 회장이 바오로 사도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으로 도움을 주는 장면은 프랑스 선교사들의 순교를 목격하는 장면이다. 사도행전을 보면 첫 순교자 스테파노가 죽임을 당하는 장소에 바오로 사도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증인들은 겉옷을 벗어 사울(바오로)이라는 젊은이의 발 앞에 두었다.”(사도 7,58) 그때 바오로 사도 역시 정의배 회장처럼 무엇인가를 보았고, 그것이 결국 바오로의 회심으로 이어졌다고 나는 이해한다. 71세의 노인 순교자가 ‘달릴 길을 다 달리며’ 가르쳐 준 선물이다.

 

[2016년 7월 24일 연중 제17주일 대전주보 3면, 김정환 신부(내포교회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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