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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병인순교 150주년 기념9: 병인박해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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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7-31 ㅣ No.762

병인순교 150주년 기념 (9) 병인박해 그 후

 

 

1866년에 시작되어 흥선대원군이 권좌에서 물러나는 1873년까지 계속된 병인박해는 참혹했다. 박해 이전 23,000여 명이었던 신자들 중 8천여 명이 순교하거나 피난 중에 죽음을 맞이했다고 추정한다. 죽음을 모면한 신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고향을 떠나 인적이 드문 곳으로 피난하여 살았다. 이로 인해 박해가 끝난 후에 신자들은 조선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되어 척박한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이는 1876년 이후 조선에 다시 들어온 프랑스 선교사들의 목격담이다.

 

그 가난은 대물림되어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본래 가진 것이 없는 처지인데다, 옛날에는 신자가 아닌 사람과 결혼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으니 ‘그 밥에 그 나물’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병인박해가 끝나고 70~80년이 지나도록 천주교 신자들은 산간벽지나 갯가 오지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로 여겨졌다. 하지만 그 대물림 안에는 참혹한 박해도 어쩌지 못하는 숨겨진 보화가 함께 전달되었다. 신자들은 떠돌이 생활이 얼마나 힘겨운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가난한 사람들을 누구보다 잘 도와주었다. 정처 없이 떠도는 사람들이 있으면 기꺼이 받아주었다. 더 갈 곳이 없으면 동네에 살도록 해주고, 없는 살림에도 조금씩 나누어 집과 농토를 마련해주었다.

 

또한 많은 옛 신자들은 거지들에게도 친절을 베풀었다. 옛날에는 거지들이 참 많았는데, 그런 이들을 그냥 돌려보내지 않았다. 단순히 쌀이나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집 안으로 들여 밥을 해주고, 때로는 잠을 재워주며 아침까지 챙겨 먹여 보내주었다. 어려서 본 기억으로, 동네 어르신 한 분이 거지를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 마당에 멍석을 깔아주고 밥상을 차려 주던 모습이 선하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면 서 그들의 눈을 본 적이 있느냐’고 하셨는데 오래전부터 그것을 실천하는 분들이 우리 안에 있었다.

 

2016년, 병인박해가 일어난 지 150주년이 되는 해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누구도 150년을 산 사람이 없으니 참으로 긴 시간이다. 그러나 아직도 가끔은 병인박해 때 순교하신 분들의 후손들이 찾아와 어느 기록에도 이름이 없는 분들에 대해 이야기해주시곤 한다. 그렇게 보면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어 올 만큼 가까이에 있는 참 짧은 시간이다. 그 안에서 옛 신자들이 삶에서 실천하던 보화도 없어지지 않고 전달되고 있다. 옛날과 방식이 달라졌을 뿐 지금도 많은 신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가난한 이들의 눈을 바라보며 자비를 실천하고 있다. “순교자들의 피는 그리스도인의 씨앗”이라는 테르툴리아누스 교부의 말대로, 박해 속에서 생겨난 씨앗들이 자라나 열매를 맺으며 또 다른 씨앗이 되고 있으니 그저 감사할 뿐이다.

 

* 그동안 「병인순교 150주년 기념」을 집필해 주신 김정환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2016년 7월 31일 연중 제18주일 대전주보 3면, 김정환 신부(내포교회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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