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일 (수)
(백) 부활 제5주간 수요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현대 영성: 관상적 대화(Contemplative Dialogue)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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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9-11 ㅣ No.1859

[현대 영성] “관상적 대화”(Contemplative Dialogue)란 무엇인가?

 

 

“머튼은 무엇보다 기도의 사람이요, 자신의 시대의 확실성에 도전하였고, 영혼들을 위해 그리고 교회를 위해 새로운 지평을 연 사상가였다…. 그는 또한 민족들과 종교들 사이의 평화를 증진하는 관상적 대화의 사람이었다.” 2015년 미국 의회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연설 중, 토마스 머튼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다. 머튼은 관상적 기도 안에서 새로운 하느님을 만났고, 이 만남은 자신의 시대에 당연하다고 여겼던 생각을 뛰어넘어 새로운 지평을 교회와 세상에 전해주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에게 관상적 대화의 사람이라고 칭한 것이다. 이는 종교 간 대화에서 관상적인 측면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암시해 주고 있다. 기도 안에서 영적인 체험을 통해 자기-초월을 체험한 이는 성령의 도구로 사용된다. 그리고 이러한 예언자는 기존의 세력에 저항을 받으며 새로운 시대를 열어왔다. 그렇다면 머튼의 시대에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은 무엇이며 그가 기도와 관상을 통해 깨닫게 된 하느님의 메시지는 어떤 것이었을까? 그가 말하는 ‘관상적인 대화’란 과연 무엇일까?

 

토마스 머튼(1915~1968)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과 이 공의회를 마친 직후 혼란스러운 교회의 시기를 살았다. 앞서 공의회 이전 교회의 이웃 종교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설명을 했듯이 머튼 역시 가톨릭교회에 대한 우월주의에 사로잡혀 있었고 특히 수도승과 사제는 평신도에 비해 더욱 영적인 사람이라고 여겼다. 어려서부터 무신론자에 방탕한 젊은 시절을 보내고 가톨릭의 세례를 받고, 트라피스트 수도회에 입회하여 당시 교회의 가르침을 받은 그에게 그것은 당연한 태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공의회가 개최되기 전부터 그는 1950년대에 이미 전통적인 교회의 가르침을 넘어 새로운 하느님관이 생겨났으며 1958년 루이빌에서의 깊은 영적인 체험을 통해 수도승과 평신도의 차별 꿈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1960년대에는 그가 깨달은 바에 따라 세상에 하느님의 목소리를 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웃 종교를 향해 자신을 개방하고 그들로부터 배우고 그들과 깊은 영적인 나눔을 시도했다. 여기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기도를 통한 깊은 관상적인 체험은 그 사람을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메시지를 세상에 전할 소명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머튼은 깨달은 자의 책임감으로 관상에서 체험한 참된 그리스도의 정의와 사랑의 목소리를 전하게 된 것이다. 당시 가톨릭교회만이 구원의 도구라고 생각하며 다른 종교인들을 이교도라 여기고 그들을 개종시켜야 한다는 기존의 생각을 넘어 다른 종교인을 형제라 부르고 그들을 통해 배움을 얻고자 했던 변화된 머튼의 태도의 기초는 바로 기도와 관상이었다. 나아가 머튼은 기도와 관상으로 오랜 수행을 한 다른 전통의 종교인들과 깊은 영적 대화를 나눌 수 있음을 깨달았다. 깨달은 이들은 서로 통하는 것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머튼의 종교 간 대화의 기본 원리는 ‘관상적 깨어남(contemplative awakening)을 통한 초문화적 성숙 (trans-cultural maturity)’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의 종교 안에서 깊은 수행을 통해 영적으로 깨어난 이들은 다른 종교와 문화에 대해 개방적이며 이원론적인 사고를 넘어 이웃 종교인들과 영적인 친교(Spiritual Communion)를 나눌 줄 알며 모두를 향한 자비와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래서 머튼은 인도 캘커타에서 한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관상적 대화는 반드시 긴 침묵과 오랜 기간의 명상을 통해 진지하게 영적으로 훈련된 이들에게 유보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이 관상적 대화는 자기 자신의 수도승 전통 안에서 온전히 성실하며, 자기 자신의 종교적 공동체의 과거와 진지하게 접촉하며, 나아가 그 전통과 다른 공동체들에게 속한 영적 체험의 유산들을 향해 열린 존재들에게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머튼은 자신이 말한 대로 다른 종교 전통의 영적 체험의 유산들에 향해 열린 존재였으며 이것은 그의 1968년 폴론나누와에서의 강한 영적 체험에서 나타났다. 불교 성지인 스리랑카의 폴로나누와를 순례하던 중 거대한 불상 앞에서 머튼은 ‘자신이 끌어 당겨져 소멸되는 듯한’ 신비적 체험을 한다. 이 체험을 통해 자신의 모든 문제가 사라지고 분명하고 깨끗해졌다고 묘사한다. ‘모든 것이 자비요 모든 것이 비움’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이 종교를 초월하는 드라마틱한 체험은 성령의 은총이었으며 우리에게도 다른 종교 안에서도 영적인 체험을 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성령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요한 3,8 참조).

 

[2022년 9월 11일(다해) 연중 제24주일 가톨릭마산 2면, 박재찬 안셀모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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