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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성당 건축 이야기4: 능동적 참여와 성당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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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1-23 ㅣ No.914

[김광현 교수의 성당 건축 이야기] (4) ‘능동적 참여’와 성당 건축


성당 중심에 제대 두었다고 ‘능동적 참여’ 건축일까

 

 

미사가 거행되는 동안 주례 사제는 제단에서 신자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신비한 언어로 혼자 말하고 있었고, 성가도 성직자와 전문 성가대원만이 부르고 있었다. 평신도는 성당에 와 있을 뿐, 전례에 적극적으로 참여도 이해도 할 수 없었다. 이렇듯 전례는 평신도들의 삶과 무관했다. 20세기 초 여러 움직임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이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을 통해 전례에 대한 새로운 원리를 결정해 주었다.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다.

 

 

능동적 참여에 대한 해석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능동적 참여’의 원리를 구현하기 위해 성당 건물의 평면은 이래야 하고 제단을 이렇게 놓아야 하며 회중석은 이렇게 배치해야 한다는 식의 구체적인 요구를 한 적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건축하는 사람들은 이 ‘능동적 참여’를 제대를 평면 중심에 놓는 원리도 쉽게 받아들였다.

 

전통적으로 성당 건물은 세로가 긴 십자형 평면이었고 제단은 축의 끝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새로운 성당은 ‘능동적 참여’를 구현한다는 이유로 제단을 크게 낮추고 제단과 평신도의 공간을 구분하지 않으려 했다. 제대는 회중석 쪽으로 깊게 옮겼으며 심지어는 사제와 회중을 같은 평면에 놓았다. 이로써 사제와 평신도 사이의 계층적 차이는 점차 사라졌다.

 

그리 유명하지는 않지만 오스트리아 빈에 ‘공의회 기념 성당(Konzilsgedchtniskirche, Council Memorial Church)’이 있다. 1962년에서 1965년 사이에 열린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기념하여 지었다는 뜻이다. 네오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을 철거하고 요제프 라크너(Josef Lackner)의 설계로 새로 지어진 노출 콘크리트 건물이다.

 

그러나 성당의 외관이 이래도 되나 의심이 갈 정도로 아주 폐쇄적이다. ‘능동적 참여’의 원리를 구현했다고 하는 여러 성당의 원형을 도식화한 것으로 보일 정도로 단순하고 냉정하다. 제단은 정사각형 평면의 한가운데 놓였다. 제단은 널찍하게 펼쳐져 있으나 회중석보다는 단 한 단만 높을 뿐이다. 제대는 다시 한 단을 더 높여 평면의 중심에 두었고, 회중은 세 변에서 제대를 마주 보고 앉는다. 제대 뒤로는 성가대석을 높이 두었고 성가대석 밑에는 경당이 있다.

 

똑같은 출입구를 정사각형 평면의 네 모퉁이에 두어 어디로 들어오나 똑같은 공간이 널찍하게 나타난다. 회중석 의자의 옆 판은 희게 칠한 강판으로 만들었으며, 고해소의 벽도 강판으로 만들었다. 내부의 벽도 모두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하며 전통적인 희망의 표징은 모두 삭제되어 있다. 천장의 네 변에는 천창을 둔 천장은 철판으로 격자 모양으로 짜여 있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완성된 성당, 마치 텅 빈 컨벤션 센터를 임시로 빌린 성당처럼 보인다. 그러나 성당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례로 상징하고 표현하는 건축이지, 텅 빈 공간을 신자들의 찬미와 기도와 영성으로 채우는 곳이 아니다. 이 성당을 보며 제단을 중심에 두고 회중이 제단을 평등하게 둘러싸는 것이 곧 공의회가 요구한 ‘능동적 참여’의 건축적 해석이 될 수 없음을 확인하게 된다.

 

 

전쟁이 불러온 성당 건축의 변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종교는 쇠퇴했다. 이에 세계대전에서 수많은 성당이 파괴된 가톨릭교회는 새로운 출발을 위해 건축에 눈을 돌렸다. 그래서 성당 건축은 당시 유럽에서 가장 다채롭게 발전한 건물 유형이 될 수 있었다. 특히, 1960년대에 철근 콘크리트를 주재료로 사용하던 브루탈리즘(Brutalism)이라는 건축 경향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이는 교회가 정교한 세공과 금박으로 마감한 역사적인 성당 대신에 값 싼 콘크리트의 거친 조형으로 성당의 ‘엄격한 이미지’를 잘 전달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1969년에 오스트리아 오버바르트(Oberwart)에 완성된 ‘부활 성당(Osterkirche, Easter Church)’이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제단은 회중석으로 전진해 있고 회중석과는 한 단밖에 차이가 안 난다. 허전한 ‘공의회 기념 성당’과는 달리 육중한 콘크리트의 조소적 형태가 내부를 엄격하고 압도하는 공간을 만들었다. 오히려 이 때문에 가장 거룩하고 존귀해야 할 제단과 제대는 심하게 축소되고 말았다. 또한, 노출 콘크리트라는 재료는 시공의 특성상 다양한 장식을 거부할 수밖에 없는데, 제단 뒤의 패널과 커다란 철제 십자가는 나중에 더해졌을 정도로 노출 콘크리트로 지어진 이 성당에서는 교회의 언어가 모두 삭제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건축적으로는 거친 노출 콘크리트로 공간을 풍부하게 표현한 가장 뛰어난 브루탈리즘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능동적 참여’를 해석한 성당이 건축가 개인의 표현 대상이 되면 스위스 이리몽스에 완공된 성 니콜라스 성당(Eglise Saint-Nicolas, Hrmence)처럼 된다. 1971년에 완성되었다. 건축가는 산에 사는 그곳 주민의 강인함을 상징한다며 마치 그 땅에 떨어진 바위의 내부를 불규칙하게 파낸 듯한 형태로 설계했다. 그런데도 당시 주임신부와 신자들은 이 안을 거의 만장일치로 선택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가? 심하게 요철을 이루며 천장에 매달린 수많은 콘크리트 덩어리에 제단은 크게 위축되고 말았다. 제단은 제대와 독서대를 놓고 복사가 무릎을 꿇을 수 있는 정도의 크기로 줄어든 채, 회중석으로 둘러싸인 외딴섬이 되고 말았다. 이것이 현대적으로 갱신한 하느님의 집인가? 누구의 비판처럼 그야말로 이 성당은 “믿음의 벙커”가 되고 말았다.

 

 

꿈보다 해몽이 좋다

 

영국에서 가장 큰 성당으로 1967년에 완공된 ‘리버풀 메트로폴리탄 대성당’은 공의회의 새로운 전례 정신을 가장 잘 표현한 성당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당시 히난(Heenan) 대주교는 공의회의 ‘능동적 참여’를 염두에 두고 이렇게 요구했다. “희생 제사를 함께 드리는 회중 2000명 모두가 제대를 분명히 보아야 한다. 제대에 서 있는 사제가 멀리 떨어져 있는 인물로 보여서는 안 된다.” 참으로 옳은 말씀이었다. 이에 세계적인 건축가 프레더릭 기버드(Frederick Gibberd) 경이 원형 평면에 제대를 중심에 둔 안으로 당선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건축가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정말 새로운 전례 운동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주교좌는 제대 뒤에 있어야 한다든지, 세례소는 제단과 관계가 있을 수 있다고 어느 누가 말했다 하자. 그래도 나는 그에게 물어볼 게 없다. 사제들의 작은 공간을 옆에 두어야 할 것을 생각하면 이 성당의 평면은 반원이 될 수도 있었다.” 무슨 말인가? 건축가는 ‘능동적 참여’를 깊이 잘 알아서가 아니라, 설계 요구를 도형적으로 잘 해석했을 뿐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이 성당을 공의회의 ‘능동적 참여’를 가장 잘 표현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처럼 과감하게 성당 중심에 제대를 두었다고 그것이 곧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에 따라 ‘능동적 참여’를 건축으로 해석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우리는 전례와 무관하게 지어졌는데도 말로만 새 성당을 ‘능동적 참여’에 근거하여 설계했다고 정당화하는 일이 너무 많다.

 

 

- 공의회 기념 성당(Konzilsgedachtniskirche), 빈, 오스트리아, 1968년. 출처=Jamie McGregor Smith




- 부활 성당(Osterkirche), 오버바르트, 오스트리아, 1969년. 출처=Jamie McGregor Smith




- 리버풀 메트로폴리탄 대성당, 리버풀, 영국, 1967년. 출처=Catholic Church England and Wales




- 성 니콜라스 성당(Eglise Saint-Nicolas, Heremence), 이리몽스, 스위스, 1971년. 출처=Val d'Herens 

 

[가톨릭평화신문, 2023년 1월 22일, 김광현 안드레아(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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