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일 (수)
(백) 부활 제5주간 수요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살레시오 성인이 답하다9: 성인께서도 유혹을 받으신 적이 있나요?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9-05 ㅣ No.1857

[김용은 수녀가 묻고 살레시오 성인이 답하다] 9. 성인께서도 ‘유혹’을 받으신 적이 있나요?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면 늘 깨어 기도하세요”

 

 

톨렌티노의 성 니콜라오의 유혹. 신심 생활이나 영성 생활을 하는 데 장애물은 어쩌다 만나는 맹수가 아니라 수시로 찾아오는 하루살이 같은 유혹이다. 이러한 유혹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하느님 사랑 안에 머물며 사랑을 나누고 실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사랑하올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께

 

안녕하세요. 한동안 불볕더위와 기록적인 폭우로 슬픈 소식이 많이 들렸습니다. 다행히 집중호우는 지나고 가끔 불어오는 부드러운 바람과 따스한 햇볕으로 치유받는 느낌입니다. 그런데요. 그것도 잠시 왠지 모를 불안감으로 혼란스러울 때가 있답니다. 더 무서운 전염병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 물가는 계속 오를 것이고,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도 언제 또 어떻게 덮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일까요? 마음이 불안할수록 유혹이 찾아온다죠. 불평불만이 생기고 우울과 슬픔에 빠지게 합니다.

 

사실 지난 편지에 성인께서 하신 말씀에서 ‘유혹’이란 단어가 마음에 꽂혔습니다. 유혹하면 뇌물이나 마약 혹은 성적이고 원초적인 그릇된 행동을 하게 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해 멀게만 느껴졌었지요. 그런데 가만히 멈춰 돌아보면 유혹이 아닌 것이 없는 것 같네요. 어쩌면 유혹인지도 모르고 그저 익숙하게 바라보고 적당히 타협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나 요즘처럼 마음이 불안하고 공허할 때 아담과 하와처럼 달콤한 사과의 유혹에 쉽게 넘어갈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성인께서는 ‘유혹’을 받으신 적이 있나요? 유혹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작은 유혹에도 깨어 살고 싶은 김 수녀가 드립니다.

 

 

사랑하는 김 수녀와 독자들에게

 

여러 가지로 힘든 시기를 겪고 있군요. 이런 고달픈 현실에서 불안해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마음의 불안 자체는 유혹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마음속 긴장과 두려움은 유혹을 생기게 하는 원인은 될 수 있어요. 유혹은 저를 포함해서 누구나 언제든지 느낄 수는 있어요. 아주 자연스러운 거라고 말하고 싶어요. 어떤 사람은 유혹을 느끼는 그 감정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기도 하는데요. 느낌과 감정은 아무런 죄가 없답니다. 그런데요. 구별할 필요는 있어요. 유혹을 느끼는 것과 그 느낀 유혹에 동의하여 선택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매우 다르다는 것을요.

 

살다 보면 유혹은 다양한 형태로 다가오지요. 때론 아주 위험한 맹수와 같이 무섭게 공격하는 것도 있어요. 그럴 때 우린 방어적 경계태세를 갖추고 파괴적인 공격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하지요. 역설적일지 모르나 엄청나게 큰 유혹은 쉽게 빠지지는 않아요. 그만큼 우리도 방어태세를 철저하게 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하루살이처럼 성가시고 귀찮게 찾아오는 작은 유혹이 있어요. 이런 유혹은 아무 생각 없이 손가락 하나로 쫓아버리기도 하고 때론 입속으로 들어가도 모를 정도로 의식하지 못해요.

 

가끔은 누군가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렇다 하더라도 진짜 죽음까지 바라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를 향한 분노로 인해 험담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는 더 쉽겠지요. 또한, 어떤 사람을 간음하고 싶은 욕구가 올라올 때가 있겠지만, 이 또한 행동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아요. 그러나 은밀하게 만나 호의를 베풀고 정담을 나누기는 더 수월하겠지요. 결혼생활을 하면서 불륜을 저지르지는 않아도 작은 말로 상처를 주는 일은 종종 일어나기도 하고요. 그리고 어떤 사람의 물건이 무척 탐나고 갖고 싶다고 하여 훔치려고 하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나보다 많은 것을 가진 그 사람을 질투하고 시샘할 수는 있겠지요.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법정에서 거짓 증언을 하기는 어렵죠. 그러나 일상에서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이간질하거나 슬쩍 거짓을 끼워 넣는 유혹에는 빠질 수 있겠죠. 평소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대놓고 무시하고 욕할 순 없어도 외면하고 모른 척할 수도 있겠고요.

 

신심 생활이나 영성 생활을 하는데 장애물은 어쩌다 만나는 맹수가 아니라 수시로 찾아오는 하루살이 같은 유혹입니다. 눈앞에 아른거려 뺨이나 코에 앉아 성가시게 하는 작은 유혹은 우리의 영혼을 분산시켜 신심 생활을 방해한답니다. 자칫 작고 사소한 유혹들을 알아채지 못하고 허용하게 되면 일상이 되고 습관으로 스며들어 인격과 삶의 방식에도 문제가 되겠지요.

 

유혹에 대처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소한 유혹을 멀리하려고 일일이 대응하거나 불필요한 싸움을 하지는 마세요. 단 한 가지, 사랑을 실천하세요. 사랑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구체적으로 나누고 실천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유혹을 퇴치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온갖 유혹에 저항하는 가장 좋은 명약이 있어요. 바로 하느님에 대한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유혹이 밀려들 때 가장 안전한 피난처이니까요.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물기 위해선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분명 내 힘으로 이겨 낼 수 없는 유혹이 찾아올 때가 있는데요. 그렇기에 늘 깨어 기도하는 연습을 매일 규칙적으로 하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으로 사세요! Live Jesus!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씀

 

[가톨릭평화신문, 2022년 9월 4일, 김용은(제오르지오, 살레시오 수녀회) 수녀]



2,138 2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