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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성령쇄신운동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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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5-18 ㅣ No.236

성령쇄신운동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 (상)


"성령, 세속적인 이 시대에 영적 쇄신을 위한 보물"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가 바르고 건전한 성령쇄신운동을 위해 지난해 말 소책자 「올바른 성령 이해」를 발행했다.

 

31일 성령강림대축일을 맞아 「올바른 성령 이해」에 대한 신자들의 이해를 돕기위한 기회을 마련했다. '성령쇄신운동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이란 제목으로 문종원 신부(서울대교구 성령쇄신봉사회 대표담당) 신부의 글을 3회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주]

 

 

1. 성령쇄신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성령강림의 볼 수 있는 표지로서 신약성경이 전하는 사건들은 사라진 옛 역사가 아니며 이 역사는 오늘날 솟아오르는 사건입니다. 개인적 체험이 없는 교의적 믿음은 공허하고, 교회의 믿음과 연결이 없는 순수한 체험은 맹목적입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성령쇄신은 하나의 희망이고 시대의 적극적 징표요, 우리 시대에 대한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그것은 세속적 합리주의 결과로 무미건조해진 이론과 실천에 대한 기도의 기쁨과 풍요함을 재발견하는 것입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생명을 주시는 영' 성령쇄신은 바로 생명을 주시는 영에 대해 재인식하고 끊임없이 새롭게 재발견하고 삼위일체 안에서 우리 모두 하나 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동안 성령쇄신운동이 가톨릭 안에서 잠자고 있던 많은 신앙인들을 깨어나게 했고 회개하게 했으며 예수님을 나의 주님이라 고백하게 했던 것은 틀림없습니다.

 

성령운동이 불같이 일어나면서 엄숙하기만 하던 성당은 활기가 넘쳐나고 찬미와 찬양의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자유기도를 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됐습니다.

 

이렇게 성령쇄신 운동은 사제, 수도자, 평신도 등 많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성령쇄신의 모습은 지나치게 외향적으로 치우치거나 치유나 예언, 구마 또는 기복신앙으로 흐르는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을 낳은 것도 사실입니다.

 

2005년 10월 서울대교구 통합사목연구소에서 발표한 신앙생활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성령쇄신 참여자의 60% 이상이 고졸 이하 학력이며, 50% 이상 참여자들이 월수입 200만 원 이하 서민층으로, 여성이 86% 이상이며, 연령층은 50대 이상입니다.

 

50대 이상 연령층이 65%인 점을 감안한다면 성령쇄신운동의 노령화와 쇠퇴는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영적성장을 위해 42.4%, 치유 및 삶의 어려움 해결을 위해 32% 라는, 즉 75% 이상 사람들이 영적성장 및 삶의 갈망을 채우고자 성령기도회를 찾는다는 것입니다. 참여한 사람들에게서 성령쇄신운동이 개인 영성 생활에 상당부분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각 본당 성령기도회는 여전히 교회 사목의 저변에 놓여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므로 더욱 성령쇄신운동의 영적 가치는 재조명돼야 하고 또한 그 가치는 공유돼야 합니다.

 

성령쇄신의 명암을 직시하며,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에서 2008년 12월에 발행한 소책자 「올바른 성령 이해」를 통해 바르고 건전한 '성령쇄신운동'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를 마련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 하겠습니다. 성령의 은사에 대한 식별력을 키우고, 바르고 건전한 쇄신 운동에 일조하여 개인 신앙생활은 물론이고 교회 공동체에도 올바른 지침을 주는 소책자가 발간된 것과 관련해 다시 한 번 성령쇄신의 올바른 방향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2. 교회 쇄신 운동인 성령쇄신

 

가톨릭 성령쇄신 운동의 시작은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에 있는 듀케인대학교의 몇 명 대학생 그룹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들은 1967년 피정 중에 성령이 그들 안에 넘치는 경험을 시작했으며, 이후 70년대 중반까지 3만5000명의 전 연령층 가톨릭 신자들이 성령을 찬미하고 일상생활을 영위하려는 성령의 능력과 힘을 구하기 위해 노틀담대학 전국 집회에 모였습니다.

 

- 성령쇄신운동은 사제, 수도자, 평신도 등 많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켰으나 지나치게 외향적으로 치우치거나 치유나 예언, 기복신앙으로 흐르는 등 문제점도 낳았다. 사진은 전국성령대회 모습으로 특정 내용과 관계없음. 평화신문 자료사진

 

 

역사적으로도 하느님께서 성령의 돌풍으로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셨던 파도가 절정에 달한 것 같은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4세기 수도원 운동 또는 중세시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에 의해 시작된 교회 쇄신운동을 그렇게 볼 수 있고 20세기도 그러한 시대 중 하나였습니다. 결정적 순간들을 예로 들어보면, 교황 레오 13세가 신자들에게 보낸 성령에 관한 회칙 「하느님의 직무」(Divinum Illud Munus, 1897)를 말할 수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성공을 위해 교황 요한 23세는 새로운 성령강림을 청하면서 "새로운 성령강림으로 우리 일상을 당신의 경이로움으로 새롭게 하소서"라고 기도함으로써 가장 최근 성령쇄신 운동의 초석을 놓았습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은 성령과 은사의 현존에 대해 기술합니다. "성령께서 신자들에게 특별한 은혜를 주신다… 이런 은사를 받았기 때문에, 교회와 세계 안에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하여… 이런 은사를 사용할 권리와 의무가 각 사람에게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은사는 '제가 불고 싶은 대로 분다'(요한 3,8)는 성령의 자유로우신 인도를 받아 행사되어야 한다."

 

1975년 제9회 성령쇄신에 관한 로마 국제회의에서 교황 바오로 6세는 "교회와 세계는 성령강림의 기적이 역사상 계속되기를 어느 때보다 더 바라고 있습니다. 갈수록 급속도로 세속화되어가는 이 세계에 성령이 일으키는 '영적 쇄신'을 증거하는 것보다 더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떻게 이 '영적 쇄신'이 교회와 세계에 '하나의 기회'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까?"라는 인사로 그들을 맞았습니다.

 

미국에서는 가톨릭 주교들이 몇 편의 긍정적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1969, 1975, 1984, 1997). 성명서들의 핵심 부분이 가장 최근에 발표된 문서 「새로운 봄을 위한 은총」에 포함돼 있습니다.

 

이 문서는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우리는 성령세례(사도 1,4)라고 알려진 성령의 선물과 은사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확인과 지원과 격려의 성명서를 발표하는 것은 적절한 일이라고 느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성령의 작용이 수백만 명 사람들의 삶과 또한 그들을 통해 교회의 삶에 미치게 된 긍정적인 영향을 확인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도 또한 교회의 삶을 새롭게 하기 위한 그들의 노력에 격려를 보냅니다."

 

주교들은 1969년 문서를 통해 재차 말합니다. "쇄신운동이 스스로 복음의 지속적인 현실화를 위해 중요한 활동을 하는 한, 교회의 삶에 부수적인 일이라고 경시될 수 없습니다."

 

주교들은 또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1979년 연설을 인용합니다. 교황은 그 연설에서 성령쇄신을 "성령이 작용한다는 신호이며 교회 전체의 쇄신을 위해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고 기술했습니다.

 

이 문서는 다음과 같이 결론짓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입문할 때 받게 되는, 그리고 성령의 현존과 작용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의 기회로 이해되는 성령세례는 보통의 그리스도인으로의 삶의 한 부분입니다. 이는 가톨릭 성령쇄신운동과 긴밀하게 연관되는 광범위한 은사로 명백히 드러납니다." [평화신문, 2009년 5월 17일, 문종원 신부(서울대교구 성령쇄신봉사회 대표담당)]

 

 

성령쇄신운동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 (중)


"은사, 개인 아닌 교회와 공동선 위해 주어지는 선물"

 

 

- "오소서 성령님! 저희를 새롭게 하소서." 2008 전국 성령쇄신대회에 참석한 신자들 [평화신문 자료사진]

 

 

3. 성령쇄신의 빛과 그늘

 

주교회의 신앙교리 위원회가 발행한 「올바른 성령 이해」는 성령쇄신운동의 빛의 측면을 이야기하면서, 성령의 다양한 은사를 통해서 개인 삶의 긍정적 변화는 물론 '가족 간의 화목, 이웃과의 친교, 적극적 선교 의지 그리고 이웃을 위한 봉사 활동에 참여'라는 결실을 드러낸다고 언급했습니다. 아울러 성령쇄신운동의 그늘 측면도 언급하면서, 은사부분에서의 오해와 남용, 외적 은사에 대한 집착을 들었습니다.

 

"올바른 성령 이해"는 성령의 은사는 개인은 물론, 공동체의 신앙 쇄신과 삶의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고 언급하며 은사의 본래 목적은 잊은 채, 오직 축복을 많이 받겠다는 욕심에서 은사에 집착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또한 은사를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상식을 넘어선 기이한 행동을 하는 이들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 책자에서 주어진 은사는 교회 공동체에 유익이 되도록 사용해야 하는데, 개인 만족과 이익만을 목표로 은사를 사용하는 경향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성령의 은사를 "공동선을 위하여"(1코린 12,7), 교회 공동체의 성장을 위하여(1코린 14,4,12; 에페 4,11-16 참조) 주어지는 것이라고 언급하며, 개인 만족보다는 '교회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1코린 14,5 참조) 은사를 청하고, 주어진 은사는 교회 공동체에 유익이 되도록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4. 성령과 성령의 선물인 은사

 

"올바른 성령 이해"는 성령을 창조하시는 영, 생명을 주시는 영, 구원하시는 영, 거룩하게 하시는 영으로, 예수님과 함께하신 성령과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으로, 그리고 내적 변화를 일으키시는 영, 은사를 베푸시는 영, 진리와 자유의 영으로 설명합니다.

 

수웨넨스 추기경은 "하느님의 숨겨진 손길" 마지막 장에서, 유언의 형태로 중요한 말을 남깁니다. "미래를 바라보면서, 나는 미래의 교회 안에서 성령의 역할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령은 항상 말의 온전한 의미를 드러내는 '생명을 주시는 영'이십니다. 이것은 내가 작별인사로 강조하고 싶은 것입니다."

 

성령으로부터 오는 무상의 선물로 교회와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봉사하도록 주어진 은사(Charism)라는 단어는 그리스 말 카리스(Charis)에서 유래했습니다. Charis 라는 어간에 접미사 ma가 첨가됨으로써 그 기본 의미가 '성령의 은총'을 의미하는 한 단어를 형성한 것입니다. 신약성경에 이 단어가 17번이나 언급되는데, 한 번을 제외한(1베드 4,10) 나머지는 모두 바오로의 서간에서 발견됩니다.

 

수웨넨스 추기경은 「은사 쇄신과 어둠의 세력」에서 진정한 쇄신은 모두 성령께 달려있기에 교회의 영적 운동은 모두 당연히 '은사적'이라고 하며, 은사 쇄신은 세례와 견진을 다시 활성화하는 은총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금 인정하고 성령께 새로이 마음을 여는 회심을 포함하는 일종의 개인적 성령 강림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은사 쇄신을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새로운 것은, 우리 믿음의 영원한 대상인 성령께서 그들에게 살아있는 체험이 됐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사 쇄신 운동의 주요 동기입니다. 이처럼 은사 쇄신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을 더욱 민감하게 의식하게 해주었습니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오순절의 성령강림 사건으로부터 살아계신 예수님을 경험했고 성령은 그들을 내적쇄신으로 인도했습니다. 이러한 영적 체험은 사람들의 수만큼이나 다양하며 체험 유형에 따라 사람 전체를 사로잡습니다. 성전에 거처하시는 것처럼 교회와 신자들의 마음속에도 거처하시는 성령은 전체 교회에 주어진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첫 번째 선물은 성령 자신입니다. 성령과 함께 성령의 선물인 은사들이 내렸습니다. 성령과 그분의 선물인 은사는 교회와 그리스도 신자 각 사람의 구성요소입니다.

 

 

5. 사랑과 은사

 

"올바른 성령 이해"는 은사 식별의 중요한 기준은 사랑이라고 언급하며, 성령의 은사는 특별한 은총으로서, 누구에게나 필수적인 것이 아니라 성령의 자유로운 결정에 따라 각자에게 적합하게 주어지는 선물이라고 설명합니다. 이어 사랑만큼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 모두에게 주어지는 성령의 선물이라고 하며,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에(로마 5,5 참조)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령께서 부어 주신 사랑을 삶으로 드러내야 한다고 권고합니다.

 

마가렛 미첼은 "21세기를 위한 은사의 회복"에서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12장에서 14장이 은사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설명을 합니다. 이 부분은 성경 말씀 중에서 성령의 선물인 은사에 관해 가장 많이 다루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의 다양한 은사는 생명의 근원이 되기도 하지만 문제의 발단이 되기도 합니다.

 

첫 번째 본문인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12~14장 말씀은 "성령의 은사에 관하여"(12,1)라는 제목으로 시작하여 "다만 모든 일이 품위 있고 질서 있게 이루어져야 합니다"(14, 40)로 끝맺음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 장은(12, 13, 14) 모두 코린토 교회에서 은사에 관한 경쟁으로 야기된 분열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2장은 교회 사목과 은사들의 우선순위를 매기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12,28). 14장은 성령의 은사와 이 은사가 교회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2장과 14장은 코린토 전서에서 사랑의 송가로 가장 잘 알려진 13장을 사이에 두고 있습니다.

 

이처럼 바오로는 종종 자신이 자세하게 다루는 주제 한가운데 좀더 일반적이고 상황에 맞는 고차원적 보기를 집어넣는 샌드위치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이 경우 사랑이 교회를 위한 해결책으로 제시되며 강조됩니다.

 

마가렛 미첼은 먼저 바오로 사도가 멀리 떨어져 있는 코린토 교회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을 했을 거라고 예상합니다. 그래서 결혼에 대한 관습, 부활에 대한 믿음, 음식 습관, 복음에 관한 행동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 있어 논쟁이 일어나고 있지만 이러한 논쟁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이러한 논쟁으로 인해 교회가 일치되지 못하고 분열되어 있다는 점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편지를 쓰면서 이러한 논쟁점에 대해 곧바로 다루거나 옳고 그름을 판결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점도 알고 있었습니다. 대신 바오로 사도는 편지 전체에서 교회의 일치를 도모했고 논란이 되는 문제점들의 타협점을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1장 10절에서 그의 호소를 가장 중심에 두었습니다. "형제 여러분,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권고합니다. 모두 합심하여 여러분 가운데 분열이 일어나지 않게 하십시오. 오히려 같은 생각과 같은 뜻으로 하나가 되십시오."

 

 

6. 성령의 은사에서 드러난 세 가지 놀라움

 

사도행전에 나오는 성령강림절은 교회의 탄생일입니다. 예수님의 사도들과 따르던 남녀들이 한 곳에 모여 있을 때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거센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고" "불꽃 모양의 혀들이 나타나 갈라지면서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고 적혀 있습니다. 희망과 방향을 잃고 있던 사람들이 이러한 성령을 체험하고 나서는 "성령께서 표현의 능력을 주시는 대로 다른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다"(사도 2,1-3).

 

수웨넨스 추기경 기념 심포지엄에서 도리스 도넬리는 다음과 같이 은사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은사를 통해 드러나는 세 가지 놀라움이 있는데, 이는 용어 자체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놀라움은 은사가 교회에서 뿐만 아니라 세상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놀라움은 은사가 인간의 요구가 있는 곳 어디서나 드러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놀라움은 은사가 공동의 선을 위해 주어진 독특한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개인의 선을 위해 주어지는 은총들과는 달리 이러한 은사들은 확실히 많습니다."

 

은사는 다양하게, 인간의 요구가 있는 곳 어디에서나 표출됩니다. 그동안 은사를 너무 인간의 틀 속에 가두거나, 지극히 제한하거나, 또는 인간의 이해 범주 안에만 묶어두었던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제 성령쇄신에서는 은사에 대해 바람이 불고 싶은 대로 부는 것처럼 자유로움 속에서 올바르게, 그리고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야 합니다. [평화신문, 2009년 5월 24일, 문종원 신부(서울대교구 성령쇄신봉사회 대표담당)]

 

 

성령쇄신운동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 (하)


성령의 다양한 은사, 교회에 숨을 불어넣다

 

 

7. 은사와 제도의 조화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은 여러 곳에서 은사에 대해 언급을 합니다. 이 용어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14번 등장합니다. “교회에 관한 교의헌장” 4항은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성령께서는 … 교계제도와 은사의 여러 가지 은혜로써 교회를 가르치시고 지도하시며….”

 

호게이는 “21세기를 위한 은사의 회복”에서 이것은 잠재적으로 아주 중요한 선언이지만, 상세한 설명이 없기 때문에, 교회론적으로 함축적인 의미를 이해하는 데는 명확하지 않다고 말하며, 같은 문헌 12항에서 이러한 은사가 정확하게 어디가 교회론적인지 더 불분명하다고 지적합니다.

 

“성령은 … 모든 계층 신도들에게 특은도 나누어 주심으로써 교회의 쇄신과 보다 폭넓은 건설을 위해 유익한 여러 가지 활동과 직무를 맡기기에 적합하도록 그들을 준비시킨다. 이것은 ‘각 사람에게 성령이 나타나 주신 것은 모든 사람의 유익을 위한 것’(1코린 12,7)이라고 기록한 바와 같다. 이러한 은사는 이례적인 것이건 혹은 보다 단순하고 일반적인 것이건 간에 모두 교회의 필요에 적합하고 유익한 것이니만큼 감사와 위안을 느끼며 받아들여야 한다.”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 3항은 다시 은사 주제에 관해서 소개하나 교회와 세상 모두를 위해서 은사들을 이해하고 사용하는 데 있어서 더 포괄적으로 다룹니다. “이러한 은사를 받았기 때문에, 교회와 세계 안에서 사람들의 행복과 교회 건설을 위하여, 이런 은사를 사용할 권리와 의무가 생기는 것이다.”

 

“사제의 직무와 생활에 관한 교령” 9항을 통해 우리는 어느 정도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항에서 사제들은 깨닫도록 권고를 받습니다. “사제는 어떤 영감이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인지 판단하고, 신도들이 받는 높고 낮은 여러 형태의 은사를 신앙심으로써 찾아내며, 기꺼이 인정하고 열심히 보호해야 한다.”

 

“올바른 성령 이해”에서 성령께서는 교회의 성장을 위해서 다양한 은사와 직분을 선사하신다(에페 4,11-16 참조)고 언급합니다. 아울러 같은 성령께서는 교회가 분열되지 않도록 평화의 끈으로 일치를 이루어주신다(에페 4,3 참조)고 설명합니다.

 

또한 누군가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교회 일치와 화합에 어긋나게 “적개심, 분쟁, 시기, 격분, 이기심, 분열, 분파, 질투”(갈라 5,20-21)와 같은 ‘육의 행실’을 저지른다면, 그가 주장하는 은사는 진정한 것이 될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호게이는 “21세기를 위한 은사의 회복”에서 은사가 이 시대에 우리에게 상당히 자주 또는 드물게, 비상하게 또는 평범하게 여전히 존재한다면서, 수웨넨스 추기경의 말을 인용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선물들이 배타적인 비상한 그리고 놀라운 현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교구에서 평신도로, 남자와 여자로 하느님으로부터 진실로 부르심을 받고… 특별한 선물을 받았다는 것은 모르는가?” “각자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은, 학식이 있건 그렇지 않건, 매일의 삶 안에서 은사를 지닌다.”

 

아마 공의회가 했던 가장 중요한 것은 살아 있는 유기적 조직체는 두 종류의 선물, 곧 제도와 은사에 의해서 운영된다는, 1943년부터 교황 비오 12세의 “그리스도의 신비체에 관하여”(Mystici Corporis Christi)에서 제기된, 여전히 시험되지 않은 표현을 반복한 것이었습니다. 교황 비오 12세와 같이 공의회는 제도의 선물들이 유기적 조직체를 유지하며 반면에 은사적 선물들이 그것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은사의 사용에 대한 기대나 여지를 갖지 않는 조직은 그들 자신의 제도와 질서로 인해 성령과 성령의 선물을 제한할 수 있는 가능성이 다분히 있습니다. 은사는 교회로 하여금 일련의 제도가 어떻게 돼야하며, 교회가 성령의 예측할 수 없는 불고 싶은 데로 부는 사람에 어떻게 의존해야 하는지를 상기시킵니다.

 

교회법은 그것이 본래대로 기능하기 위해 성령께서 활동하실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2코린 3,17)

 

호기에는 은사는 생명력이 있는 교회에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교회를 교회답게 만드는 누룩과도 같은 것이라고 말하며 다음과 같이 강조합니다. “조직 체계와는 독립적으로 기능한 은사는 혼돈을 일으킬 수 있는 반면에, 은사가 없는 조직은 단조롭고, 일률적이고, 생명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각자 서로 보완이 필요한 것입니다. 의식이 있는 교회의 사제들과 주교들은 그들 교구민의 은사를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이와 함께 “올바른 성령 이해”는 교도권은 하느님 백성이, 이 봉사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그리스도께서는 목자들에게 신앙과 도덕에 관한 무류성의 은사를 주셨다고 언급합니다. 이 은사는 여러 가지 모양으로 행사될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은사의 진실성과 올바른 실천에 관한 판단은 교회를 다스리는 이들에게 속한다”고 천명하면서, 목자들에게는 “성령의 불을 끄지 않고 모든 것을 시험하여 좋은 것을 붙드는” 사명이 맡겨져 있다고 분명하게 밝힌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은사 식별에 관해서는 교도권에 순종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결론

 

초대교회 공동체와 마찬가지로 오늘의 교회 공동체가 생명력을 지니려면 성령의 다양한 은사들이 공동체 안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곧,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일치하여, 모든 지체들 안에 은사가 드러나 공동 유익을 위해 사용돼야 합니다. 이러한 능동적 신앙생활과 모든 지체들이 교회의 주체가 되기 위해서 성령쇄신은 폭 넓은 은사를 접할 수 있도록 기회와 교육을 제공해야 할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사는 그 시대가 요구하는 은사들을 필요한 곳, 쓰시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모든 은사활용은 바로 복음 선포와 하느님 나라의 확장에 그 목표를 둬야 하며 성령쇄신이 추구할 목표가 돼야 할 것입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교회에 관한 교의헌장” 25항에서는 사제와 주교의 사목에 있어서 설교가 중심적이라는 중요성에 관해 강조했고, 서품된 사제들의 은사는 교회에서 다 함께 축복할 일이며 사제와 주교가 복음을 설교해야 하는 의무 또한 명확한 것입니다. 이와 함께 교회의 복음선포 소명은 모든 세례와 견진 성사로부터 유래됩니다.

 

수웨넨스 추기경은 추기경들의 사목 경험을 상기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우리 경험에 비춰 자신의 교구에서 평신도 중에 정말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생각되는 신자가 있지 않습니까? 이러한 평신도들은 교리를 가르치거나 전도를 하고 여러 종류의 사도적 활동은 다양한 서로 다른 성령을 받은 것입니다… 만일 이러한 성령의 은사가 없다면 교회의 사목은 활기를 잃고 무미건조해 질 것입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교회에 관한 교의헌장” 31항에서는 세례와 견진으로 평신도 또한 그리스도의 사제직, 예언직, 왕직에 참여해야 한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소명은 복음을 증거하며 기쁜 소식을 전하라는 전체 교회의 책임을 각자가 분수대로 지는 것입니다.

 

부활 성야에서 물의 축복과 성유 축성은 세례식에서 세례를 받는 사람들은 단지 말씀을 듣는 사람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라는 부름을 받은 능동적인 사목자들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세례수 축복 때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당신은 세례 받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만방에 전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성유 축성 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합니다. “기름부음을 받고 그리스도를 닮음으로써 그리스도의 예언자직과 사제직과 왕직을 함께 나누어 받게 하셨나이다”(부활절 1, 서문 1). 그러나 서품된 사제들은 독특한 역할, 분별의 직무 그리고 주교에게 위탁받은 은사들을 관리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올바른 성령 이해”는 교회 교도권과 그 권위에 대한 순종도 참된 영을 식별하는 기준이 된다고 언급합니다. 왜냐면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으신 주님께서는 사도들에게 만민을 가르치고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할 사명을 주셨고(마태 28,18-19). 이 교도 직무는 사도들의 후계자인 주교들에게 전수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또한 주교들은 진리의 영인 성령(요한 16,13)의 도우심으로 계시된 진리를 올바로 설명하고 신앙을 수호하며 오류를 경계하는 사명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계속해서 사도들의 후계자인 주교의 교도권에 대한 순종은 예수님의 뜻에 부합한다고 하며, “가톨릭 교회교리서”에서 “어떤 은사를 받았다고 해서 교회 목자들의 의견을 무시하거나 그들에게 불순종해서는 안 된다”고 한 부분을 인용하며, 성령의 은사를 내세우면서 교도권의 판단을 무시하거나 그에 저항한다면, 그 은사 현상은 성령에게서 오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올바른 성령 이해” 마지막 부분에서 은사의 식별 과정을 위해 성경, 교회의 가르침과 전통에 근거를 둔 기준이 제시된다고 하며, 이는 공동체의 선익, 사랑, 성령의 열매, 일치, 교도권에 대한 순종, 겸손, 이성이 바로 그것이라고 결론을 맺습니다. [평화신문, 2009년 5월 31일, 문종원 신부(서울대교구 성령쇄신봉사회 대표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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