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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성당 건축 이야기3: 하느님의 집과 하느님 백성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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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1-19 ㅣ No.911

[김광현 교수의 성당 건축 이야기] (3) ‘하느님의 집’과 ‘하느님 백성의 집’


‘하느님의 집’과 ‘하느님 백성의 집’은 나뉠 수 없다

 

 

- ‘하느님의 집’과 ‘하느님 백성의 집’은 나뉠 수 없다. ‘성녀 데레사 성당’, 린츠, 오스트리아, 루돌프 슈바르츠 설계, 1962년. 출처=Jamie McGregor Smith

 

 

성당은 ‘하느님의 집(domus Dei)’이다. 영어로는 ‘the house of God’이다. 이는 성경에 나오는 말로서 성당의 본질이 담겨 있다. 그런데 ‘하느님 백성의 집(the house of God’s people)’이라는 또 다른 표현이 있다. 이 말은 ‘도무스 에클레시에(domus ecclesiae)’라는 말에서 나왔다.

 

 

누구를 위한 집인가

 

교회를 그리스어로 에클레시아(Ecclesia)라 한다. ‘불러 모음’, 곧 하느님 앞에 모인 선택된 하느님 백성들의 집회라는 뜻이다. 유다인이 모이던 시나고그(synagogue)가 그리스어로 가르치려고 모이는 장소인 것과도 아주 비슷하다. 그런데 그리스어 ‘에클레시아’는 “집에서 어떤 공공의 장소로 불려 나온 시민들의 모임, 곧 집회”라는 뜻이었다. 눈여겨 읽으면 그 안에는 집회란 어떤 장소 또는 집에 모여야 성립된다는 뜻이 들어 있다. 이처럼 교회는 집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도무스 에클레시에’라는 ‘교회의 집’, ‘하느님 백성의 집’이 생겼다.

 

다만 ‘도무스 에클레시에’는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문헌상으로 이 말은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역사학자 에우세비우스(Eusebius)가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4세기 무렵이니 상당히 오래된 말이다. 학술적으로는 1939년에 건축역사가 크라우트하이머(Richard Krautheimer)가 이 말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그는 초기 그리스도교 예배를 위해 개조하거나 확장한 주택을 ‘도무스 에클레시에’라 불렀다. 그 이후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서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친교를 나누었는지를 연구할 때 이 용어는 꼭 등장한다.

 

그런데 종종 ‘하느님 백성의 집’을 ‘하느님의 집’과는 대조되는 말 또는 반대말로 쓰고 있다. 유감스러운 일이다. 성당을 나타내는 두 용어를 이렇게 사용하면 하느님은 그분의 사제와 봉사자를 통해서만 알 수 있는 하느님, 그래서 우리에게서 멀리 계신 하느님이 되고 만다. 또 ‘하느님의 집’은 성직자 주의와 의례적 형식성만을 강조한 성당인 듯이 보이고, ‘하느님 백성의 집’은 모인 신자들의 공동체를 우선하는 성당인 것처럼 여기기 쉽다.

 

이렇게 ‘하느님의 집’과 ‘하느님 백성의 집’을 양분해서 바라보면 ‘하느님의 집’은 ‘성전’이라는 건물을, ‘하느님 백성의 집’은 ‘백성’의 모임을 강조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낳게 만든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집’의 궁극적 모델은 예루살렘의 성전일 것이고, ‘하느님 백성의 집’의 궁극적 모델은 퀘이커(Quaker)의 집회소와 같은 것이 될 것이다. 퀘이커들은 목사 없이 각자 침묵으로 예배를 드린다. 그래서 그들의 집회 장소는 주택의 넓은 홀에 긴 의자를 둘러놓은 것이 전부다. 그들에게 교회 건물은 없다. 예배하는 공동체만이 교회다.

 

성당의 공간은 본질적으로 제단과 회중석으로 나뉜다. 그런데 ‘하느님의 집’과 ‘하느님 백성의 집’을 상반되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사제는 하느님께 제사드릴 수 있도록 뽑힌 사람이므로 제단 쪽은 하느님께만 속하는 자리가 된다. 또 평신도들이 함께 미사를 드리는 회중석은 백성인 신자들에게만 속하는 자리라고 여기게 된다.

 

퀘이커의 집회소는 공동체의 ‘모임’만 강조한 ‘하느님 백성의 집’의 궁극적 모델이다. 출처=Wikimedia Common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이자 그리스도의 몸

 

그러나 제단은 성직자에게, 회중석은 평신도에게만 속하는 자리가 아니다. 성직자와 평신도는 방식이 다를 뿐 모두 하느님의 부름에 응답하여, 성직자는 직무 사제직을, 평신도는 보편 사제직을 갖게 된다. 따라서 제단과 회중석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은 성직자와 평신도의 사제직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여기는 것과 똑같다. 전례를 거행하는 것은 회중이다. 영어 네이브(nave)를 번역할 적당한 단어가 없어서 이를 ‘회중석’이라고 부르지만, 회중은 전례를 거행하기 위해 모인 사제, 부제, 시종, 독서자, 성체 분배자 등 미사에 참여한 모든 이를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현존을 표징으로 나타내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성사적으로 ‘하느님의 집’ 안에 머물고 계시고, ‘하느님의 집’에 모인 백성에게 그들과 함께하시려는 성체로 다가오신다. 그래서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이자 그리스도의 몸이다.(에페 1,23) 그러니 ‘하느님의 집’과 ‘하느님 백성의 집’을 구분하는 것은 하느님 백성과 그리스도의 몸을 구분하는 것이다. 그리고 희생 제사인 성체성사와 공동체 음식인 성체성사는 다른 것이라고 잘못 구별하게 된다.

 

‘하느님의 집’과 ‘하느님 백성의 집’은 거룩한 공간을 분명히 바라보는 두 개의 렌즈일 뿐이지 상반된 것이 아니다. 영어 ‘church’가 “주님의” 또는 “주님에게 속하는”이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 ‘키리아코스(kriaks)’에서 나왔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니 주님께 속하는 ‘하느님이 집’은 주님께 속하는 ‘하느님의 백성의 집’이기도 하다. ‘Deus(하느님)’ 없이 ‘Ecclesia(교회)’가 있을 수 없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공동체는 상호작용했기 때문에 공동체가 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공동체가 먼저 만나 교회가 생긴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전례에 참여하도록 공동체를 모으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다. 다시 말해 교회 공동체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생겨났고, 성체성사로 이끄시는 하느님의 부름에 각자 응답하여 생긴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은 ‘하느님 백성’이 없는 ‘하느님의 집’의 궁극적 모델. 헤로데 성전 내부 3D 모델. 출처=holy_dive

 

 

하느님 백성이 주가 된 성당 건축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성당은 ‘하느님의 집’이요 ‘하느님 백성의 집’이라 하지만, 실제로 성당을 새로 지을 때는 하느님께서 ‘하느님의 집’을 통해 무엇을 말씀하시는가를 고심하여 설계하자는 말은 별로 듣지 못한다. 대부분의 관심은 하느님 백성의 ‘모임’에 집중된다. 사제나 건축위원회만이 아니라 평신도까지도 새 성당은 면적이 늘어야 하고 좌석 수도 지금보다는 많아야 한다, 작은 소성당이나 더 넓고 많은 교리실이 필요하다, 교우들의 교류를 위해 넉넉한 만남의 방을 만들자, 지하 강당은 혼인예식에 대비해 넓게 하고 하객의 주차도 넉넉히 고려해야겠다 등이 그렇다. 이렇게 ‘백성’이 주가 되는 ‘하느님 백성의 집’을 짓는 데 우리는 훨씬 더 관심이 많다.

 

그러면 ‘하느님의 집’과 ‘하느님 백성의 집’은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가? 하느님의 집’은 하느님께서 사람과 회중에 대하여, 회중은 개인과 하느님께 대하여 그리스도의 몸의 수직적인 관계가 이루어지는 성당을 말한다. 그리고 ‘하느님 백성의 집’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서 형제는 자매에 대하여, 성직자는 평신도에 대하여, 기도 공동체는 교구와 보편 교회에 대하여 수평적인 관계가 이루어지는 성당을 말한다.

 

성당을 짓고자 하는 이들이 모두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집으로 부르셔서 하느님 백성을 성사적 공동체로 이루셨음을 공간으로 구현하는 것이다. 또한,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를 불러 모으신 분은 하느님이심을 자각하는 감각을 장소로 구현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요구한 ‘능동적 참여’의 핵심이다. 이렇게 설명하니 어렵게 들리는가? 그만큼 믿는 이들에게 성당이 무엇이며 왜 지어야 하고 그 건축물은 어떻게 지어져야 하는가를 아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모두 성당 건축에 큰 관심을 두고 열심히 공부하자.

 

[가톨릭평화신문, 2023년 1월 15일, 김광현 안드레아(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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