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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나무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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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규 [mugeoul] 쪽지 캡슐

2001-03-07 ㅣ No.166

그토록 오랜 시간을

나자렛 고을에 숨어 지내시며,

목수 요셉의 아들인 예수께서

못질하고 톱질하며 나무 다듬으며 만드신 것은

나무 십자가,

갈바리아산 위에 세워질 십자가,

자신이 못 박혀 죽을 그 십자가였다.

 

순명의 뿌리는 이토록 깊고 그 열매는 이토록 놀랍다.

 

번제에 쓸 나무를 스스로 안고 모리아산을 올라간

아브라함의 외아들 이사악처럼,

그분은 십여년의 목수 생활을 통해

자신의 십자가를 준비하셨다.

그리고 "몸소 지고" 올라가셨다.

그분은 이 하나의 나무를 깎아 다듬는데

얼마나 오랜 시간을 바치고 또한 기다렸던가.

 

우리는 믿음과 사랑만을 너무 떠들다 보니,

희망을 간과하길 잘 하나,

위격적 존재인 하느님과의 인격적 관계인 참된 신앙은

반드시 기다림을 함께 한다.

"곧 가겠다!"하신 자가 오시지 않을 지라도

실망치 않고 꾸준히 기다릴 수 있는 신앙.

참된 믿음은 거기에서 태어나고 또 성숙된다.

하느님을 사랑하기에 믿고 기다리는 것,

이것이 이 현실 속에서의 진실된 신앙태도이다.

 

만일 초대 그리스도교회 공동체가

종말적 상황과 재림(再臨)에의 기대에 취하여

비현실적 신앙으로 빠져들었다면

결코 그리스도교회는 성립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처음부터 성숙된 신앙인의 자세인

’기다림의 삶’을 터득하고 있었기에

그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굳건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또한 그분은 오직 하나의 십자가만 계속 다듬어셨다.

그러했기에 그토록 무겁고 컸으며,

그러했기에 자신의 모든 걸 바쳐 맡겨도

부러지지 않을 만큼 튼튼하였다.

우리는 얼마나 쉽사리 다듬던 걸 내팽개치고

곧잘 다른 것에다 눈을 돌리는가.

그리하여 우리의 십자가는

우리 자신의 일부분도 내 맡길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이 보잘 것 없는 것이 되고 만다.

 

결국 하느님에의 사랑은 의지의 사랑이다.

그렇다고 그것을 ’불굴의 의지’라고 할 순 없으니,

왜냐면 우리는 수없이 쓰러지고

또한 하느님께로부터 떠나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지라도

마치 사랑하던 사람을 못 잊어 다시 찾아가듯

다시금 사랑에 돌아서는 그 사랑,

그 사랑이 바로 이 의지의 사랑이다.

 

다시 말해 이 의지란

인간적인 자신의 능력으로 바동대며 버티는

그런 억지 짓이 아니라,

탕자로 하여금 집으로 발길을 돌리게 한 그 마음,

결국은 하느님의 품에 뛰어드는 결단,

응답의 요구에 대한 응답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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