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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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십일조가 신자의 의무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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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7-02 ㅣ No.350

[사서함 16호] 십일조가 신자의 의무인가요?

 

 

본당 신부님이 가끔 봉헌금이나 성전 신축금, 교무금에 대해 강론하시면서 십일조를 내는 것이 신자들의 의무라고 말하십니다. 십일조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고 현대적인 의미에서 필요한 것인지요? 신자들은 교무금과 봉헌금 등의 형태로 십일조를 내는 것이라고 하는데 헌금의 의미와 십일조의 의미는 같은지요? 개신교 목사님들은 십일조를 낸다고 하는데 신부님들도 십일조를 내는지요?

 

 

십일조는 구약성서 모세 오경에 나오는 규정의 하나입니다. 그 유례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스라엘은 열두 지파로 된 민족이었습니다. 모세를 통해 야훼와 계약을 맺은 이후 그 가운데 한 지파인 레위 지파는 “만남의 장막”(민수 18,21), 즉 성전에서 예배에 봉사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생업을 할 수 없었고 그들의 생계는 나머지 열한 지파가 책임져야 했습니다. 열한 지파가 그 수입의 십분의 일씩을 각출하여 한 지파의 생활을 보장하는 합리적이고 공정한 제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했던 모든 규정을 하느님께서 주신 것으로 생각하였기에 십일조도 하느님의 법으로 신성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십일조가 오늘에도 적용되는가 물었는데 모세 오경을 보면 ‘먹을 수 있는 짐승과 먹을 수 없는 짐승”에 관한 규정(신명 14,3-21), “동족의 빚을 삭쳐 주는” 규정(신명 15,1-11), “해방절과 무교절”에 관한 규정(신명 16,1-8) 등 수없이 많은 규정들이 있지만 우리는 그 어느 것도 지키지 않습니다. 그런데 십일조에 대한 규정만 지켜야 한다면 문제가 있지 않겠습니까?

 

개신교 대부분의 교파에서는 십일조를 지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덕분에 교회도 많고 목사님들도 많습니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의욕이 넘치는 신부님들이 십일조를 요구하는 예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그리스도 신앙으로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십일조는 어디까지나 이스라엘 백성의 법입니다. 예수께서는 가난한 과부의 보잘것없는 헌금(마르 12,41-44)에는 감탄하셨지만 십일조를 비롯한 율법 준수를 철저히 하도록 권하시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이나 율법을 지키지 못하여 죄인으로 낙인찍히고 소외된 사람들과 어울리시면서 ‘너희가 이 지극히 작은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에게 해주었을 때마다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4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모금을 부탁하면서 고린토 교회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각자 마음 내키는 대로 이바지할 것이지, 마지못해 하거나 강요당해 해서는 안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기꺼이 내주는 이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2고린 9,7). 바오로 사도는 신자들의 자발적 기여를 부탁하면서 그들의 너그러움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십일조의 이야기는 전혀 없습니다.

 

기원후 150년경 신자들의 헌금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로마의 유스띠노 순교자가 남긴 글에 보면, 공동체가 모여 성찬을 집전한 다음 하는 헌금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부자들과 그 외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원하는 만큼 기부한다. 이렇게 모여진 것은 그 모임을 주관하는 이에게 바쳐지며, 그는 이것으로 고아들과 과부들, 병이나 다른 이유로 궁핍한 자들, 죄수들과 여행자들을 도와준다.”

 

이렇게 보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후 발생한 초대 교회에서는 유대인 율법의 폐기와 더불어 십일조도 당연히 폐기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신자들의 경제적 기여가 요구될 때는 그들의 자발적 참여를 호소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사를 보면 시대에 따라 변화가 많아 어떤 시기에는 십일조를 법으로 요구한 일도 있습니다만 우리가 본받아야 할 일은 아닙니다.

 

개신교에서 행하는 십일조나 가톨릭 일부 신부들이 과욕으로 십일조에 애착하는 것을 비판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서 그것을 정당화할 근거가 없다는 것을 말씀 드릴 뿐입니다. 돈이 있어야 하는 급박한 상황에서 가장 권위 있게 신자들한테 돈을 받아 내기 위해 흔히 강구되는 수단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십일조를 요구하는 신부들은 스스로도 십일조를 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십일조의 강요로 많은 신자들이 불쾌감을 느끼고 일부 신자들은 신앙 생활에서 멀어져 가는 현상이 있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입니다.

 

성당 신축을 위한 부지 확보, 신축, 본당 운영을 위해 신자들의 재정 지원이 없으면 교회는 유지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모금 방식과 정부 기관이나 사회 단체가 자금을 마련하는 길은 달라야 합니다. 교회가 계획한 일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얻어 성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느님께선 그런 일의 성공이 아닌 “지극히 작은 형제들” 안에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헌금 문제 때문에 어느 한 사람도 상처를 받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하느님은 사람이 상처받고 버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신자들은 돈 내고, 기도하고, 순종할 권리밖에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가톨릭 교회의 현실을 어느 정도 바로 표현한 말입니다. 교회 재정은 계획 단계에서부터 신자들의 참여와 충분한 토의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신자들한테 재정적 부담을 요구할 때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 대로 각자 마음 내키는 대로, 강요당하지 않고 기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그리스도교적이라 생각됩니다. 계획 단계에 신자들을 참여시키지 않기 때문에 신부들 혼자 짐을 지고 십일조와 같은 무리한 이론을 전개하면서 허덕이는 비극이 발생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경향잡지, 1994년 9월호, 서공석 요한(서강대학교 교수 ·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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