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성무일도ㅣ독서기도

연중 제22주일: 주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6-20 ㅣ No.482

연중 제22주일

 

독서기도

 

제2독서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강론에서

(Sermo 23A,1-4: CCL 41,321-323)

 

주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우리가 듣고 노래하는 것을 또 실천에 옮길 때 참으로 행복합니다. 듣는 것은 씨를 뿌리는 것이고 실천에 옮기는 것은 열매를 맺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여러분에게 훈계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성당에 다닌 이후부터 아무 열매도 맺지 않으면, 즉 이렇게도 아름다운 진리를 들은 후에 선행을 하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사도가 말하는 것과 같이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하느님의 은총을 입고 그리스도를 믿어서 된 것이지 우리 자신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이 구원이야말로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이렇게 구원은 사람의 공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실상 과거 우리 생활에서는 하느님께서 좋아하시고 사랑하실 선행, 즉 “이 사람들의 생활은 선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가서 도와주자.”고 하실 그런 선행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생활을 좋아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행한 모든 일도 좋아하지 않으셨지만, 그러나 당신이 우리 안에서 행하신 바를 싫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우리가 행한 바를 단죄하실 것이고 당신이 창조하신 것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참으로 착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어 착한 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악한 이들을 위해서, 의로운 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의롭지 못한 이들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시려고 당신 아들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의롭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이에 더하여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옳은 사람을 위해서 죽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혹 착한 사람을 위해서는 죽겠다고 나설 사람이 더러 있을지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의로운 사람을 위해서 죽을 용기가 있는 사람을 혹시 찾아볼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의롭지 않은 사람들을 의화시킬 능력을 지니신 완전한 의인 그리스도가 아니라면, 누가 의롭지 않은 사람과 악한 사람과 죄 많은 사람을 위해 죽기를 원하겠습니까?

 

형제들이여, 우리는 선한 일을 조금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행한 일은 다 악한 일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행한 일은 이러하다 해도 하느님의 자비는 그들을 멀리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금이나 은이 아닌 당신 피의 값으로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 당신 아들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분은 흠 없는 어린 양처럼 허물로 물든 양들을 위해, 물들기만 했지 완전히 썩지는 않은 양들을 위해 도살자에게 끌려가셨습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는 이것입니다. 우리 생활이 이 은혜를 모독하지 않도록, 주어진 이 은혜에 따라 살도록 합시다. 참으로 위대하신 의사께서 우리에게 오시어 우리의 모든 죄를 없애 버리셨습니다. 우리가 다시 병에 걸리고 싶어한다면, 우리 자신에게 해가 될 뿐만 아니라 우리 의사께도 배은 망덕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이 우리에게 보여 주신 길, 특히 당신이 걸어가신 겸손의 길을 따라가기로 합시다. 그분은 참으로 당신의 가르침을 통해 그리고 우리를 위해 그 길을 고통 속에 걸어가심으로써 겸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불사 불멸이신 그분이 우리를 위해 죽으실 수 있도록,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머무르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실 수 있도록 또 당신의 죽음으로 우리 죽음을 멸하시기 위해, 불사 불멸께서 사멸성을 취하셨습니다.

 

주님은 이를 행하셨고 우리에게 이 은혜를 남겨 주셨습니다. 위대하신 그분은 자신을 낮추시고, 낮추심으로 죽임을 당하시고 죽으신 후에 부활하시어, 우리를 죽은 자로 지옥에 두지 않으시고 이 세상에서 신앙과 고백으로 들어 높여지신 것처럼, 죽은 이들의 부활로 우리를 당신과 함께 들어 높이시기 위해 들어 높임을 받으셨습니다. 이렇게 주님은 겸손의 길을 남겨 주셨습니다. 우리가 그 길을 따라가면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합당히 다음의 노래를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하나이다, 하느님, 감사하나이다. 당신 이름 부르는 우리, 묘하신 일들을 일컫나이다.”

 

 

응송  시편 85(86),12-13a; 117(118),28

 

◎ 하느님 내 주시여, 이 마음 다하여 감사하리이다. 영원토록 당신 이름을 찬양하오리니, * 내게 베푸신 자비가 너무 크시기 때문이오이다.

○ 당신은 내 하느님, 감사하나이다. 내 하느님, 당신을 높이 기리나이다.

◎ 내게.



721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