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일 (수)
(백) 부활 제5주간 수요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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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살레시오 성인이 답하다6: 그리스도인으로서 희망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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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8-15 ㅣ No.1850

[김용은 수녀가 묻고 살레시오 성인이 답하다] 6. 그리스도인으로서 희망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희망은 열망 때문에 용감하게 바라고, 열망은 희망에 의해 겸손한 바람으로 변화”

 

 

우리는 희망하고 열망하는 존재다. 희망은 열망 때문에 용감하게 바라고, 열망은 희망에 의하여 겸손한 바람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신자들이 예루살렘 주님무덤 성당에서 기도하고 있다. [CNS 자료 사진]

 

 

사랑하올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께

 

안녕하세요. 지난 편지에서 어려운 이 시기에 저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희망할 수 있도록 안내해주셔서 감사해요. 그런데 어떻게 구체적으로 희망하며 살아가야 할지 다시 여쭙지 않을 수 없네요. 가끔은 희망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혼란스럽기도 하거든요. 우리 신앙인은 하느님을 믿고 희망하며 살아갑니다. 어떤 분은 ‘자녀가 건강하기를’, ‘집값이 오르기를’, ‘경제적으로 조금만 여유 있기를’하는 희망을 합니다. 건강하기를 바라고 경제적인 안녕을 바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우리 인간의 소망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인지 그런 바람들이 습관처럼 일상의 기도로 자주 하게 되고요. 그러나 바라는 대로 안 될 때도 참 많습니다. 그럴 때면 실망을 넘어 절망도 하고요.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희망하면서 기도하고 또 했는데 그 어떤 응답을 듣지 못할 때, 하느님이 어디 계시느냐며 원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진짜 희망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성인의 지혜를 얻고 싶습니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보고 싶은 김 수녀 드립니다.

 

 

사랑하는 김 수녀와 독자들에게

 

어떻게 희망하며 살아야 하는지, 진짜 무엇이 희망인지를 물었어요. 그리고 그렇게 희망하며 열심히 기도하고 또 했는데, 바람대로 되지 않을 때 절망하게 된다고요. 그런데 과연 그 바람이 진짜 희망이었을까요?

 

희망에는 닮은 듯 다른 이란성 쌍둥이가 있거든요. 바로 열망이란 것이에요. 희망과 열망은 다르지만 늘 함께 다녀요. 간단하게 말하자면, 열망(aspiration)한다는 것은 자신의 힘으로 무엇인가 성취되기를 기대하는 것이고요. 희망(hope)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도움에 의탁하며 믿는 마음이지요.

 

열망은 새로운 일을 기획할 때 기대감이 솟구쳐 올라요.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고 아침기도를 하면서 살짝 설레기도 하고요. 모든 것이 잘 이루어지리라 기대도 해요. 그러나 하룻밤을 자고 난 후, 이러한 수많은 열망이 하나둘 무너져요. 이것도 저것도 원하는 대로 잘되지 않는 거예요. 바라고 또 바라지만 결국 현실은 이를 허용해 주지 않았다는 원망과 분노가 올라오기도 하고요. 어쩌면 어떤 사람의 열망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시들어 사라질 수도 있어요. 그리고 사라진 열망으로 인해 마음속 작은 틈 사이에서 실망과 좌절, 그리고 분노의 기운이 올라오기도 해요.

 

왜 그럴까요? 열망, 그것은 누구의 것인지요? 온전히 ‘나’의 것이에요. 내 능력과 힘으로 뭔가를 이루려는 갈망에서 온 것이죠. 그래서 고요함이 무너지고 불안해져요. 내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서 자신을 질책하기도 하고요. 열망은 온전히 내가 주인이기에 잘 안되면 내 탓이라는 자책과 네 탓이라는 원망 사이를 오가면서 우울감에 빠지기도 해요.

 

그러나 희망은 달라요. 흔히 옛이야기의 주인공들은 괴나리봇짐 하나만 달랑 메고 용감하게 수천, 수만 리를 걷고 또 걸어서 목적지에 이르는데요. 대단한 능력도 없고, 그렇다고 치밀한 계획을 세운 것도 아닌데 수많은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하며 헤쳐나가요. 희망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수많은 사람과의 관계의 끈을 놓지 않고 그들과 시선을 맞추며 도움을 얻어내요. 절망의 순간에도요. 특히 놀라운 초월적인 신의 손길로 결국 희망을 완성해나가지요.

 

희망은 누군가의 ‘도움’에 신뢰하는 것이며, 이는 하느님의 은총을 믿는다는 것을 의미해요. 그래서 어둠의 터널에서도 희망은 유효해요.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희망의 너머에는 늘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내 마음은 고요하고 평화로울 수 있어요. 비록 당장 원하는 대로 잘 이루어지지 않아도요.

 

그렇다고 열망 없는 희망만으로 충분할까요? 아니요. 열망 없이 희망만 하려는 사람은 겁쟁이고 무책임할 수 있어요. 또한, 희망 없이 열망하는 사람은 성급하고 무례하며 교만할 수 있고요. 자신의 힘에 기대는 열망은 행동의 에너지이며 활력이에요. 그러므로 열망이 없는 희망은 가다가 지치면 주어진 현실을 잊고 책임을 회피해요. 반면에 희망 없이 열망하는 사람은 뜻대로 안 될 때 쉽게 분노와 울분의 나락에 빠져들기도 하고요.

 

열망해야 자신을 믿고 행동하며, 희망을 할 때 이웃과 세상을 만나면서 하느님의 은총에 기대게 되지요. 희망은 열망 때문에 용감하게 바라고, 열망은 희망에 의하여 겸손한 바람으로 변화되는 거지요.

 

힘든 시기를 살아가는 김 수녀와 독자 여러분, 그럼에도 희망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희망은 희망하는 사람의 것이니까요. 기억할 것은 희망의 형제인 열망도 꼭 챙기면서요.

 

예수님으로 사시길! Live Jesus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씀.

 

[가톨릭평화신문, 2022년 8월 14일, 김용은(제오르지오, 살레시오 수녀회)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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