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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해성사] 고해성사는 얼마나 자주 보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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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8-13 ㅣ No.158

고해성사는 얼마나 자주 보아야 하는가?

 

 

나이 들어 신자가 된 분이 있었습니다. "괜히 일찍(?) 신자가 된 것 같습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노상 죄를 짓게 마련인데, 천주교에는 고해성사라는 제도가 있어서 죄를 고하라 하니, 이것 참 부담스럽습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차라리 죽기 전에 신자가 될 걸 그랬어요." 하시는 그분의 말씀, 아마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은 대부분 그분의 말씀에 공감하실 것입니다.

 

 

고해성사의 대상이 되는 죄

 

이미 말씀드린 대로 죄란 우리 인간과 하느님 사이의 사랑의 관계를 파괴시킵니다. 사랑의 관계를 파괴시키는 효과를 가진다는 점에서는 큰 죄와 작은 죄가 다를 바 없습니다. 하지만 죄의 결과가 항상 같지는 않으니, 아무래도 하느님의 마음을 크게 상하게 하는 죄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느님의 가벼운 꾸지람을 들을 정도의 죄도 있을 것입니다. 이때문에 사람들은 하느님과의 관계를 완전히 파괴시키는 죄를 대죄(大罪)라 하고, 이밖에 일상적으로 짓는 사소한 죄를 소죄(小罪)라 하여 이 둘을 구분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소죄와 대죄를 구별하면서 고해성사의 대상이 되는 죄, 즉 고해성사를 통해서만 용서될 수 있는 죄는 대죄라는 것이 가톨릭 교회의 입장입니다.

 

 

소죄와 대죄?

 

이렇게 죄를 소죄와 대죄로 구분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무엇이 소죄이며 대죄인지 구체적으로 정하기란 사실상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나는 하느님을 믿지 않아"라는 말을 이성을 갖춘 어른이 하는 경우와 아직 지적 발달이 충분히 되지 않은 어린이가 하는 경우, 그 죄의 무겁고 가벼움이 결코 같지 않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되는 바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 소죄이며 무엇이 대죄이다라는 식으로 확정지어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하겠습니다. 때문에 현대의 많은 윤리신학자들은 이러한 이분법을 사용하는 대신 각 개인의 양심의 빛에 따른 판단을 중요시하는 경향을 보여줍니다.

 

 

양심성찰: 고해성사의 준비운동

 

고해성사는 우리에게 죄를 캐묻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죄의 짐을 덜어 주어 우리가 마음의 거리낌 없이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하느님이 베푸시는 은총의 순간입니다. 그렇다면 고해성사 때 무슨 죄를 고할까 고민하기보다는 내가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적은 없는가 하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반성하는 데 있어 기준이 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십계명입니다. 십계명의 조목 하나하나를 묵상하면서, 이에 빗대어 자신의 생활은 어떠했는가를 반성해 나간다면, 일단 고해성사 준비는 잘한 셈이라 하겠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다음, 십계명에 직접 저촉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자신의 양심에 크게 걸리는 것을 살펴본다면, 하느님과 화해하기 전의 준비운동은 충분하다고 하겠습니다.

 

 

소심할 필요는 없다

 

하느님은 우리의 죄를 캐물으시는 수사관이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짓는 가벼운 죄에 대해 그렇게 양심의 가책을 크게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바늘도둑이 소도둑이 된다는 속담처럼 아무리 가벼운 죄라도 그냥 넘어가면 양심이 무디어질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아무리 가벼운 습관적인 죄라 할지라도 진지하게 반성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소소한 죄까지 일일이 고해성사를 통해 용서받을 필요는 없고, 미사 시작 때 이루어지는 참회식("천주여, 나는 많은 죄를 지었나이다…")이나 양심성찰과 통회를 통해서 하느님과 화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나치게 소심한 것은 하느님을 아버지로 알기보다는 심판관으로 생각하고 두려워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서에서 예수님이 하느님을 인자하신 아버지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맙시다.

 

 

주기적인 양심성찰

 

교회법에서는 성년에 이른 가톨릭 신자는 누구나 일 년에 한 번은 성사를 보아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교회법 989조). 이 규정은 가톨릭 신자로서의 최소한의 의무를 말한 것이지, 이로써 우리의 영적 의무가 다 채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일 년에 한 번 자신의 양심을 살피고 죄를 고하는 것으로써 성숙한 신앙인의 자세를 유지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기 힘들 것입니다. 십계명과 자신의 양심에 크게 어긋나는 죄가 있다면 당연히 그때마다 고해성사를 보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큰 죄가 없다 하더라도 일 년에 네 번 정도 성사를 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제 개인 의견입니다. 주기적으로 자신의 양심을 돌아봄으로써, 자칫 무디어질 수도 있는 양심의 소리를 잃어버릴 위험을 최소화하기 때문입니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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