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일)
(백) 부활 제5주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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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낯설고 캄캄한 동굴 속에 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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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규 [mugeoul] 쪽지 캡슐

2001-03-05 ㅣ No.160

하느님은 모든 인간,

곧 그 어떤 인간과도

인격적 신앙 관계를 지닐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보고 듣고 맡고 느끼고 하는 모든 감각이 마비되고

말할 수도 생각할 수도 없는 그런 자에게도

하느님은 접근하실 수 있으실까?

 

만일 그와 하느님 사이에 그런 관계가 맺어진다면

그것이야말로 참된 믿음이 아닐까?

자신이 지닌 것이란 오직 ’존재’ 그 자체뿐인,

정말 아무 것도 지니지 못한,

오직 하느님만의 것인 그이기에,

하느님의 모든 것은 그 안에서 가득 차지 않을까?

 

사실 우리는

자신이 지닌 그것만으로

하느님과 관계를 맺으려 한다.

 

우리가 눈을 지니자

"하느님이시여 모습을 나타내사 증거하소서!"한다.

 

우리가 귀를 가지자

"말씀하소서, 내가 믿으리이다!"한다.

 

우리가 느끼게 되자

"내가 만져 봐야만 당신이 계심을 믿겠나이다!"한다.

 

우리가 말할 수 있게 되자

기도는 소란스러워졌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게 되자

머리만으로 궁리하며 하느님과 관계하려 한다.

 

그리하여 완전한 믿음은 불가능하게 되고,

보고 듣고 만지지 않으면

도체 "특별한 느낌의 체험"이 없으면

참된 신앙을 얻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것은

필연적인 결과이지만

보고 듣고 만졌을지라도

믿음을 얻지 못하게 되는

상태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감각을 잠재우고

침묵을 지니고

생각을 멈추어야 한다.

그런 노력 속에

참된 믿음은 형성되어진다.

 

그대가

"전혀 낯선"

"캄캄한" 동굴 속에

"홀로" 던져졌다고 상상해보라.

 

그대는 완전히

"내가 잘못 움직여 죽을지라도

난 살기 위해 이렇게라도 움직일 수밖에 없어"하며

그 어떤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믿음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전혀 낯선" 곳이기에

과거의 온갖 관념을 버려야 하고,

"캄캄한" 곳이기에

모든 감각이 불필요하게 되고,

"홀로"있기에

침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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