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 (금)
(백) 부활 제6주간 금요일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강론자료

루가복음 9,51-62 (2016. 6. 26. 연중 제13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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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충희 [korangpo] 쪽지 캡슐

2016-06-24 ㅣ No.2087

[성서는 대부분 비유로 되어있기 때문에 표면적인 논리를 따라가면 어불성설의 문장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성서는 아주 분명하게 영성적 사건을 지시합니다. 따라서 스스로 성서의 뜻을 분명하게 이해하는 사람만이 남들에게 성서를 강론할 자격이 있습니다.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것을 남에게 가르치는 것처럼 어리석은 행동은 없습니다. 주일복음을 강론하시는 분들은 이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라는 뜻이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메시아이건만 역설적이게도 이스라엘의 도성 예루살렘에서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다. 거짓 지도자는 참된 지도자를 용납하지 못하고 그를 박해하고 모욕하고 죽인다. ‘하늘로 올라갈 때는 예수가 육신의 죽음을 넘어서는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음을 가리킨다. 예수와 그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제자는 보이지 않는 영적 생명으로 살아있으므로 죽지 않는다.

 

예수는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왔다. 그러나 예수를 맞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제 행동으로 자신을 심판한다. 생명의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다. 야고보와 요한에게는 권력에 대한 집착이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징벌을 가하고 싶어 한다. 권력은 그 자체가 죽음의 힘이다. 권력자는 하느님을 믿지 않고 사람을 믿기 때문이다. 예수는 오직 하느님을 믿는 스승이므로 그들의 그릇된 믿음에 동조할 리가 없다.

 

여우의 굴은 재물, ‘새들의 보금자리는 명예를 가리킨다. 여우는 굴에 온갖 물건을 끌어다 모으며 제비는 높은 곳에 둥지를 틀고 세상을 굽어보는 것을 상상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예수의 제자가 되려면 재물과 명예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만 한다.

 

아버지의 장례는 자신의 아버지가 죽어있음을 나타낸다. 아버지가 죽어있다면 그의 아들 역시 죽어있다. 예수의 제자는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이므로 영원한 생명으로 살아있다. 그러므로 예수의 제자는 장례를 치르지 않는다. 장례는 죽어있는 사람들이 남들에게 체면치례 하느라 화려한 의식으로 죽음을 포장하는 행위이다. 예수의 제자는 죽어있는 사람들의 평판에 신경을 쓰지 않고 하느님의 칭찬을 받기 위해 힘쓴다.

 

인사는 서로 뜻이 소통하는 사람들이 아는 척하는 것이다. 가족과의 작별인사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에서 가족은 육적자아를 가리키는데 육적자아는 理性(마음, 兄弟), 感性(, 母子), 意志(, 父子)의 활동을 일으킨다. 그에 비해 영적 자아는 신덕, 망덕, 애덕의 활동을 일으킨다. 신덕, 망덕, 애덕은 각각 이성, 감성, 의지를 완전히 부정(否定)하는 일이므로 육적자아와 영적자아의 사이에는 공통점이 조금도 없다. 가족들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것은 육적자아에 굴복하여 계속 세상일에 관여하는 것을 가리킨다. 세상일이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영역에서 남들의 인정을 받거나 남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하늘나라의 일과 세상일을 병행하는 사람은 두 가지 일을 모두 망친다. 그러므로 예수의 제자는 오직 하늘나라의 일만 한다. , 늘 성령의 지혜를 받아들이면서 언제 어디서나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

 

누구든지 원하는 사람은 이처럼 차원이 드높은 진리를 얻을 수 있다. 예수는 이를 세상에 알리기 위하여 고통과 모욕을 당하고 육신의 죽음까지도 기꺼이 받아들이고자 한다. 예수의 제자는 마땅히 스승의 본보기를 따라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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