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목)
(백)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너희 기쁨이 충만하도록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살레시오 성인이 답하다4: 두 개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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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7-25 ㅣ No.1843

[김용은 수녀가 묻고 살레시오 성인이 답하다] 4. 두 개의 마음


‘내로남불’ 두 마음 어떻게 화해하며 살 수 있나요

 

 

물건을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의 마음이 다르지만, 상대의 처지를 고려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사랑하올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께

 

안녕하세요. 요즘 우리 사회에서 ‘내로남불’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참 듣기도 거북한 말이긴 합니다. 그러나 부끄럽지만, 저 역시 나에겐 관대하게 타인에겐 엄격하게 두 개의 잣대가 작동될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 과속을 하면 ‘성질 급하구먼’ 하고, 제가 과속을 하면 ‘너무 바빠서’라고 합니다. 누군가 화를 내면 ‘그것도 못 참나’ 하는데 제가 화를 내면 ‘오죽하면’이라고 합니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지는 못해도 이웃의 처지에서 이해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성인께서는 자신에게는 아주 엄격하게 타인에게 정말로 관대하게 대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본능적으로 나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나요? 그렇기에 나에게는 친절하고 타인에게는 완고한 두 개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나 봅니다. 어떻게 하면 저의 이 두 개의 마음이 서로 화해하면서 성인처럼 살 수 있을까요?

 

성인의 마음을 닮고 싶은 김 수녀 드림

 

 

사랑하는 김 수녀와 독자들에게

 

무더위에 잘 지내시나요? 내로남불, 한마디로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 그런 뜻일까요? 한국에만 있는 말 같은데요. 타인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다가 자신에게 너그러운 그런 인간의 두 마음을 의미하겠지요. 어쩌면 그저 인간의 본성이려니 하겠지만, 자칫 악으로 기울어질 수도 있기에 마음 돌봄이 필요해요. 무엇보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멈춰 생각해볼까요?

 

거리에서 물건을 팔고 사는 사람끼리 실랑이가 벌어졌어요. 왜 그럴까요? 파는 사람은 비싸게, 사는 사람은 싸게 사려고 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다가 둘의 처지가 바뀌었어요. 그러면 또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그때의 처지를 잊고 팔던 사람이 사려고 할 때 싸게 사려고 하고, 사던 사람이 팔려고 할 때는 비싸게 팔려고 하겠지요. 같은 사람이지만 처지에 따라 잣대가 달라진 것인데요. 이때 나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평소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의 작은 결점이 아주 크게 보여 비난하게 돼요. 그런데 그것보다 더 큰 나의 잘못은 작게 보고 변명하기에 급급하고요. 다른 사람에게는 정확하게 원칙을 들이대고 따지면서 자신에게는 자비와 동정을 베풀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겠지요. 나라면 이 상황에 어떠했을까요?

 

또 이런 사람도 있어요. 다른 사람의 거친 발언에는 아주 예민하게 반응하지만, 자신의 과격한 말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이해해주길 바라요. 다른 사람이 자기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불쾌한 내색을 보이는데, 다른 사람이 나에게 무언가 요구하면 귀찮아하면서 화까지 낼 때도 있고요. 때론 나와 친한 사람이 규칙을 어기면 너그럽게 넘어가다가 평소 못마땅한 사람의 작은 실수에는 책망하기도 해요. 나라면 정말 어떻게 했을 것 같은가요?

 

또한, 자신의 권리는 강하게 주장하고, 남의 권리는 양보해주길 바라요. 자신은 오만하게 행동하면서 겸손하고 공손하게 행동하는 사람을 좋아해요. 남에게는 쉽게 불만을 터뜨리지만, 자신은 어떤 비난도 받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해준 일은 대단한 것처럼 여기면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은 호의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도 하고요. 나는 어떤 사람일까요?

 

어떻게 해서든 자신에게 이로운 일을 하려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야박하고 그를 나쁜 상황으로 몰고 가기도 해요. 자기 자신에게는 친절하고 관대한 마음으로 대하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엄격하고 완고한 마음을 지니고 살아가기 때문이지요. 과연 나의 마음은 어떠한가요?

 

두 마음이라는 것은 받을 때는 무게가 많이 나가게 하는 저울추를, 그리고 줄 때는 무게가 적게 나가게 하는 저울추를 사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저울추를 사용하는 것을 우리 하느님께서는 매우 싫어하십니다.

 

김 수녀와 독자 여러분, 공평하고 올바르게 행동하며 살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서로의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는 마음을 가져야겠습니다. 물건을 살 때는 파는 사람의 입장을 헤아리고, 팔 때는 사는 사람의 처지를 고려한다면 부정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베푼 적이 있는지 자주 성찰하세요. 그렇게 하다 보면 하나의 마음에 한 분이신 주님을 모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으로 사시길(Live Jesus!)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씀.

 

[가톨릭평화신문, 2022년 7월 24일, 김용은(제오르지오, 살레시오 수녀회)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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