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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신학ㅣ사회사목

[본당사목] 커피 한 잔으로 본당을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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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2-06 ㅣ No.607

[이런 사목 어때요] 커피 한 잔으로 본당을 바꾸다


‘하랑’, 서울 동작구 흑석동본당 안에 있는 카페 이름이다. 평일 오전 10시 미사가 끝나자 70여 석을 갖춘 카페가 문을 연다. “원두커피 두 잔 나왔습니다.” 봉사자들이 익숙한 솜씨로 커피를 뽑아내고 주문한 이를 부른다.

여느 카페보다 값이 싸지만 맛은 뛰어나다. 원두커피 1,500원, 카페라테 2,000원, 이 작은 봉헌금은 불우이웃 돕기와 주일학교 후원금으로 쓴다.


본당 환경이 집보다는 나아야 한다

“이제 50년을 기점으로 본당사목은 저 큰 문을 열고, 복음화하는 일이라면 최선의 방법, 다양한 방법, 복음적이고 창의적이며 도전적인 모든 방안을 수용하고 활용하여 하느님 나라 건설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또한 이 지역과 이 교회의 미래가 복음의 중심지로서, 지역문화에도 기여할 것이다. 이 지역 청소년 요람과 이웃 중앙대학교에 걸맞은 종교교육의 중심지로서 역할도 해낼 것이다.”

서울대교구 흑석동본당 설립 50주년(2004년)의 다짐이다. 이 해에 성당 1층에 유골 6,000기를 수용하는 ‘평화의 쉼터’라는 납골당을 만들었다. 어디나 그렇듯 성당 주변 주민들이 혐오시설이 들어오면 집값이 떨어진다며 신부 화형식까지 할 정도로 반대가 극심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잠잠해졌다. 당연히 집값도 떨어지지 않았다.

2009년 9월, 안상인 요셉 신부에 이어 이경훈 바르톨로메오 신부가 부임했다. 납골당은 있지만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한 부대시설이 없고, 지하 회합실들은 낡고 냉난방이 잘 안 되었다. 본당 환경이 집보다는 나아야 한다고 생각한 이 신부는, 납골당과 가깝고 성당에서 내려오면 지나게 되는 자리에 있는 회합실 두 개를 터서 대화와 만남의 방을 꾸몄다.

대화를 하려면 차라도 한 잔 있어야 한다. 전문가가 만드는 커피가 있는 카페를 생각했다. 대중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뒤 믹스커피를 주기만 해도 대단하게 여기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즉석에서 커피를 전문적으로 만들어주는 바리스타가 있는 커피 전문점을 찾는 시대이다. 젊은이들은 특히 그러하기 때문이었다.


생각을 바꾸면 길이 보인다

카페를 운영하려면 봉사자가 필요하다. 당시는 초중고 주일학교 통합 자모회가 하나, 회원은 10여 명, 그래도 자모회를 분리했다. 아이들을 키우느라 봉사를 못한다는 어머니들이 많지만,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는 게 부모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본당신부와 초등회장, 중등회장, 통합 자모회장, 여성총구역장 해서 모두 5명이 전문가를 찾아가 바리스타 교육을 받았다.

그러고는 기술을 전수했다. 대개는 물품 판매 등으로 주일학교 기금을 마련하는데, 젊은 엄마들은 차별화된 ‘럭셔리한 봉사’를 좋아한다는 점에 착안했다. 2년이 지난 지금 자모회원들은 130여 명(초등부 90명, 중고등부 40명)으로 늘었다. 그 가운데 30여 명의 젊은 엄마들이 카페 봉사자로 일한다.

점심때가 되자, 근처 직장인들이 커피를 마시러 온다. 성당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을 텐데 질 좋고 값싼 커피가 있으니 자연스레 들르게 된다. 신자들의 사랑방은 물론, 자모회 활성화, 불우이웃 돕기에 간접선교까지, 일석사조(?)인 셈이다. “지금도 회합실이 부족한데…, 고작 10명으로 무슨 일을 ….” 하던 신자들도 있었지만“생각을 바꾸면 길이 보인다.”고 이 신부는 힘주어 말한다.


본당이 밝고 활기차졌어요

봉사자들은 전문가로서 자부심과 보람을 느낀다. 성지순례 때 이탈리아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셔봤는데 우리 본당 커피가 더 맛있다고 입을 모았단다. 커피 값으로 받은 봉헌금 가운데 3분의 1은 무조건 불우이웃을 돕는 데 쓴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중고생들에게는 장학금을 준다. 장학사업이 꿈이었다는 50대 후반의 여교우는 이곳에서 봉사하며 간접적으로 꿈을 이루었다고 기뻐했단다.

흑석동본당이 서서울지역 제13동작지구 지구장좌 본당이라 다른 본당의구역장과 반장들이 드나들면서 카페 ‘하랑’은 입소문이 났다. 서초동, 행운동, 신내동, 홍제동, 노량진, 종암동본당 등 여기서 교육을 받고 본당에다 카페를 연 곳이 열 곳도 더 된단다. 전국에서도 카페 운영방법을 배우러 견학을 온다. 이 신부가 직접 나서서 교육을 하는데 한 주에 2-3시간으로 10주를 한다.

“본당 주보 공지를 보고 신청했는데, 제게 맞는 시간대를 찾아 봉사하면서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고 있어요.” 장은미 데레사 씨는 본당이 좀 중후하고 무거운 분위기였는데 카페가 생기면서 밝고 활기차졌다며 눈을 빛낸다. 초창기부터 고락을 함께해 온 카페장 김미선 마멜다 씨는 교육받은 사람들 가운데 카페를 창업한 이들도 있다고 귀띔한다.


요소요소에 가톨릭 카페를 만들자

처음에는 오후 2시까지, 지금은 오후 5시까지 카페 문을 연다. 금요일 오후는 본당신부가 당번이다. 이 신부가 ‘커피로 선교한 사연’을 들려준다.

“어느 날 저녁미사를 끝내고 수단을 입고 카페에 있는데 마당에 낯선 젊은 여성이 보여요. 근처에 사는데 지나다가 들렀다고 하여 커피 한 잔을 만들어주면서 커피 이야기를 했죠. 그랬더니 자신은 개신교 신자 의사라며 일터의 애환을 이야기하더군요. 물론 나중에 교우가 되었지요. 납골당을 찾는 비신자들도 차 한 잔으로 마음을 열고 갖가지 사연들을 털어놓습니다.”

카페를 운영하다 보니 욕심이 생긴다는 이 신부는, 새해에는 가톨릭바리스타협회를 설립하여, 교육 수료증도 수여하고 가톨릭 바리스타 대회도 열 것이라고 의욕을 보인다.

“가톨릭 선교 방법은 수동적이에요. 기다리는 선교지요. 일반인들이 성당을 찾아오기란 쉽지 않습니다. 노량진 고시촌 등 요소요소에 가톨릭 카페를 만들면 좋겠어요. 커피도 팔고 신앙서적도 놓아두고, 은퇴사제를 모셔서 신앙상담도 하고 고해성사도 줄 수 있는 공간 말입니다. 이런 미래를 생각하며 ‘하랑’을 상표등록을 했습니다.”

‘하랑’ 곧 ‘하느님 사랑’을 널리 전하려는 중견사제의 뜨거운 사목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경향잡지, 2012년 1월호, 글 배봉한 편집장, 사진 김민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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