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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해성사] 고해성사에 관해 궁금한 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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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7-24 ㅣ No.150

고해성사에 관해 궁금한 점들

 

 

“천주교 신자답게 살아가려니 걸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이것도 죄, 저것도 죄’라는 생각에 ‘사는 게 모두 죄인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게다가 죄를 지으면 반드시 고해성사를 보아야 한다니 부담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정치권 등 최근 우리 사회에서 ‘고해성사’라는 말이 하도 무분별하게 널리 쓰여 천주교 신자가 아닌 사림들조차도 비록 그 의미를 다 모른다 하더라도 꽤 익숙한 말이 되었다. 그렇다면 세례성사를 받은 신자들은 고해성사의 본질과 의미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가? 어느 신자의 고백처럼 “부담스럽기 짝이 없는” 크나큰 짐으로 여기지는 않는가?

 

사목자들과 그 조력자들을 위한 월간지 “사목”은 지난 6월 호 ‘특집’에서 고해성시에 대해 여러 방향으로 다루었다. 그 가운데 “고해성사에 관한 질문들”의 내용에서 많은 신자가 궁금해 하는 점들을 발췌하고, 교회의 가르침을 보충하여 다시 엮었다.

 

 

고해성사란?

 

고해성사는 천주교 신자들이 하느님과 교회 앞에서 참회하며 용서와 화해를 청하고, 보속으로써 하느님 자녀의 자유를 누리기 위한 것이다. 신자들은 이 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은총을 회복하고, 양심의 평화와 영적 위안을 얻는다. 따라서 고해성사는 고백만이 아니라 참회와 화해, 보속 등을 필수 조건으로 하고, 또 고백을 듣는 고해사제는 그 비밀을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하는 절대적인 비밀 준수를 요구한다.

 

많은 신자가 고해성사를 부담스러워하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 자신의 죄를 남(사제)에게 발설해야 한다는 두려움 또는 거부감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은 오로지 죄를 피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고해성사는 하느님이 참으로 자비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확신시키는 성사이다.

 

최근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자주 운위되었던 “고해성사”라는 말마디는 ‘솔직한 고백’이라는 뜻을 담은 정치적인 수사에 불과하다.

 

 

양심 성찰은 어떻게?

 

고해성사를 하기 전에 다음과 같은 점에 대하여 스스로 물어보는 것이 좋다.

 

첫째, 진정 회개하고, 생활을 개선하고, 하느님과 더욱 깊은 사랑을 맺으려는 뜻으로 이 성사에 참여하려고 하는가? 둘째, 지난 고해성사 때 잊어버렸거나 일부러 빠트린 큰 죄는 없는가? 셋째, 정해준 보속은 다 했는가? 남에게 끼친 손해를 기워 갚았는가? 생활을 개선하겠다던 결심을 실천하려고 노력했는가?

 

 

소죄 가운데 영성체를 할 수 있나?

 

영성체를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희생제물과 성찬의 희생제물은 하나의 단일한 희생제물이다. 따라서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합당하게 받을 때마다, 일상생활에서 약화되기 쉬운 사랑을 굳건하게 다질 수 있다. 이 사랑은 소죄를 없애준다. 단, 중한 죄를 지었다고 느끼는 사람은 성체를 모시기 전에 고해성사를 받아야 하며, 모든 신자는 성덕으로 부름받고 있기 때문에 소죄도 고백하도록 권고받는다.

 

 

일괄 사죄는 가능한가?

 

개별 고백이 없는 집단적인 일괄사죄는 화해를 위한 비상 방법으로서 교회법이 규정한 경우에만 가능하다. 이 경우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죽을 위험이 임박하고 한 사제나 여러 사제들이 각 참회자들의 고백을 들을 시간의 여유가 없을 때이다. 둘째는 중대한 필요가 있을 때, 곧 참회자들의 수에 비하여 적절한 시간 안에 각자가 개별 고백을 올바로 듣기에는 고해사제들의 수가 부족하기 때문에 참회자들이 자기들의 탓 없이 고해성사의 은총이나 영성체를 오랫동안 못하게 될 때이다. 그러나 큰 축제나 순례 때 참회자들의 회중이 많다는 이유만으로는 고해사제들이 부족하더라도 충분한 필요로 간주되지 아니한다.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전시나 천재지변 또는 많은 사람이 갑자기 동시에 죽을 위험이 있는 경우에 일괄적으로 죄를 사할 수 있고, 그 밖의 경우에는 교구장의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보속을 하지 않으면 성사의 효력이 없어지는가?

 

고해사제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죄를 선언함으로써 고해성사는 완성된다.

 

이미 보속의 수락만으로, 다시 말하면 아직 보속을 하지 않았더라도 사제가 사죄경을 함으로써 이미 죄는 용서받게 된다. 곧 보속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고해성사의 효력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용서’는 죄를 없애주지만 죄의 결과로 생긴 모든 폐해를 고쳐주지는 못한다. 죄에서 벗어난 사람은 완전한 영적 건강을 회복해야 하는데, 그 죄에 대한 결과, 곧 죄과를 갚으려면 보속을 해야 한다.

 

 

고해 장소는?

 

본래의 장소는 성당이나 경당이다. 전통적으로 사용되어 오는 고해소는 참회자와 고해사제 사이를 살창으로 격리시켜 놓은 곳이다. 이러한 고해소는 신자들이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된 장소에 설치해야 한다. 정당한 이유가 없는 한 고해소 밖에서는 고해성사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교회법에서 명시하고 있다.

 

정당한 이유의 예를 들면 환자, 야영지, 여행 중 등이다. 고해소는 고해성사 자체와 전혀 관계없는 다른 목적에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말하지 못하고 들을 수 없는 신자들은?

 

신자들은 교회의 법률과 관행에 따라 구두로 자신의 죄를 고백하여야한다(비밀 고백). 단, 물리적 또는 윤리적으로 불가능한 경우는 제외된다(예를 들어, 중병, 말을 금하는 물리적 상황, 언어장애 등). 따라서 말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은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다른 방법(글, 손짓 등)으로 고해성사를 받을 수 있다.

 

한국교회에서는 수화나 필탐으로도 고해성사를 하고 있는데, 말하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신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글을 모르는 상황이라, 더 많은 사제가 수화를 배울 필요가 있다.

 

 

판공성사란?

 

‘판공성사’라는 말은 한국교회의 특수한 용어이다. ‘판공(判功)’이란 ‘공로를 헤아려 판단한다.’는 뜻이 있다. 공로를 헤아린다는 것은 신자로서 마땅히 알아야 할 교리지식과 신앙생활의 진보 등을 헤아린다는 뜻이다.

 

가톨릭 교회의 가장 큰 축제인 부활과 성탄을 제대로 맞이하기 위한 마음의 준비로 신자들은 고해성사를 받는데, 이를 판공성사라 한다. 보편교회법에는 부활시기를 전후하여 적어도 일년에 한 번은 고해성사를 보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적어도 성탄시기와 부활시기에 한 번씩은 고해성사를 보도록 하고 있다.

 

물론 고해성사가 주일미사와 같이 정기적이고 의무적인 성사는 아니나, 자기 성찰과 더불어 하느님의 자녀에 맞갖은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므로 교회는 일 년에 두 번만이 아니라 잦은 고해성사를 권하는 것이다.

 

[경향잡지, 2004년 7월호, 정리 김진복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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