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월)
(백)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학자 기념일 아버지께서 보내실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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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헌 생활의 해, 완전한 사랑29: 성가소비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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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1-31 ㅣ No.556

[봉헌 생활의 해 - 완전한 사랑] (29 · 끝) 성가소비녀회


‘가장 작은 이’ 장애인과 더불어 살며 주님 사랑 실천



- 조명순 수녀가 밀알재활원의 한 장애인에게 강냉이를 입에 넣어주며 웃음짓고 있다.


“우리 마을엔 장애인 시설 절대 안 돼!”

20여 년 전 춘천교구 배종호(퇴계본당 주임) 신부가 춘천 신동면 혈동리에 지적 장애인 시설을 짓기 위해 동의를 구하러 다녔을 때 주민들은 언성부터 높였다. 그때만 해도 장애인을 ‘전염병 환자’ 취급하던 시절이었다. 배 신부는 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한 집씩 찾아가 하소연 끝에 어렵게 시설을 지을 수 있었다. 밀알재활원의 시작이었다.

장애인 14명을 수용하는 작은 시설이던 밀알재활원은 현재 20~60대 남녀 지적 장애인 48명이 거주하는 시설로 성장했다. 밀알재활원은 지적 장애인 가족들을 그리스도처럼 섬기며 이들이 보람된 삶을 살도록 인도하고 있다. 그리고 지역민과의 교류도 꾸준히 해 나갔다. 그 결과 혈동리에선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사라진 지 오래다. 1996년 성가소비녀회(총장 차진숙 수녀)가 춘천교구로부터 위탁 운영하는 이곳을 찾았다.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

밀알재활원장 조명순(캐서린) 수녀는 ‘데이케어 프로그램’이 한창인 재활원 곳곳으로 안내했다. 상담실을 겸한 북카페에서는 가족 5명이 모여 허브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이들의 이날 대화 주제는 ‘새해 소망’이었다. 운동 기구들을 갖춘 거실 한쪽에선 가족들이 컬링과 비슷한 ‘보치아’와 볼링 게임이 푹 빠져 있었다. 가족들이 볼링핀 하나만 맞춰 넘어트려도 옆에서 “우와~” 하고 옆에서 환호성을 질렀다. 조 수녀는 양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잘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불러주며 반갑게 인사한 조 수녀는 “재활원에선 장애인을 ‘가족’이라 부른다”고 말했다. 누군가를 부르거나 인사할 땐 항상 ‘~씨’하고 존칭을 붙였다. 모두 20세 이상 성인이니 무리 없는 호칭이다.

처음 보는 기자에게 가족들은 먼저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청해왔다. 인사한 뒤부턴 마치 오랜 친구를 대하듯 살갑게 대해줬다. 사람을 가리지 않고 진심으로 맞아들이고 활짝 웃는 가족들과 함께 있으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함께 있는 동안 평화롭고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조 수녀와 밀알재활원 사회복지사들은 장애인 가족을 가장 낮은 자리에 처한 그리스도로 섬기고 있다. 수녀들과 직원들은 가족들이 생활하고 재활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항상 그들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장애인 가족들이 늘 첫째다. 그래서 사회복지사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원장 수녀에게 “제발 우리에게도 관심을 좀 기울여 달라”고 애교 섞인 말을 할 정도다.

밀알재활원 장애인들이 조명순 수녀와 함께 볼링을 하면서 즐거워하고 있다.


지역민과 조화롭게

밀알재활원은 또한 지역민과의 연대와 동화를 중요한 사도직 활동으로 실천하고 있다. 삶의 자리에서 성가정의 가난과 겸손, 순명과 노동을 실천하라는 수도회 창립자 정신을 따르고자 함이다. 그래서 생태를 살리고 창조질서를 보전하는 ‘생명의 먹을거리’ 생산에도 힘쓰고 있다. 재활원 식자재도 가능한 친환경 유기농산물로 준비하고, 지역 농민들을 돕기 위해 수녀들이 직접 장터를 찾아가 장을 본다. 장을 볼 때도 농민들의 수고에 감사하는 마음에 값을 절대 깎지 않는다고 한다. 먹을거리 외에도 밀알재활원은 지역 사회 청소와 같은 연계 프로그램, 인권ㆍ보건 교육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 수녀들은 지적 장애인들과 함께 사는 이유에 대해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마태 25,40)이라는 예수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지체 장애인과 달리 자기 자신조차 보호하고 주장하지 못하는 지적 장애인을 ‘가장 작은 이’로 받아들인 것이다.


성가소비녀회는?

성가소비녀회는 파리외방전교회 피에르 셍제(한국명 성재덕, 1910~1992, 사진) 신부가 1943년 12월 25일 서울 백동성당(현 혜화동성당)에서 첫 번째 서울대교구립 수도회로 설립한 활동 수도회이다.

성가소비녀회는 “우리는 반드시 가난한 자들에게 내려가야만 한다”고 강조한 설립자의 정신에 따라 가난한 자와 병든 자, 장애인, 무의탁 어르신 등 사회적 약자들 삶의 자리에서 이들을 위한 사도직 활동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성가정의 작은 여종’을 뜻하는 성가소비녀들의 사도직은 언제나 ‘현장 중심’이다. 그래서 성가소비녀회의 사도직은 수도원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도심 한복판과 언제 철거될지 모르는 달동네, 신자들의 공동체인 본당, 외국 선교지 등 다양하다. 서울성가병원(현 성가복지병원)을 가난한 이웃을 위한 무료 병원으로 전환한 것, 제주 강정마을과 밀양 송전탑 건설 현장에서 지역민들과 함께한 것 등은 현장 중심의 사도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엔 세월호 참사로 고통받는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슬픔에 동참하기 위해 경기 안산에 공동체를 설립했다.

성가소비녀회는 총원 산하에 의정부와 인천 2개 관구를 두고 있다. 두 관구는 2008년에 설립됐다. 70주년인 2013년에는 제15차 총회를 통해 사도직의 주안점을 ‘JPIC’-정의(Justice)ㆍ평화(Peace)ㆍ창조보전(Integrity of Creation)으로 삼고 창조질서 회복을 위한 활동에 투신하고 있다.

수도회는 2015년 12월 말 현재 의정부ㆍ인천 2개 관구에 수도자 476명(유기서원 이상)이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서울ㆍ수원ㆍ의정부 교구 등 14개 교구에 91개소 분원이 있고, 볼리비아(9명)ㆍ베트남(3명)ㆍ아르헨티나(9명) 등 해외 7개국에 수도자 35명이 파견돼 있다.

[평화신문, 2016년 1월 31일, 글 · 사진=이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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