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 (금)
(백) 부활 제6주간 금요일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강론자료

2016-07-31.....연중 제18주일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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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6-07-30 ㅣ No.2117

 

연중 제18주일 (다해)

코헬렛 1,2; 2,21-23       콜로새 3,1-5.9-11      루카 12,13-21

2016. 7. 31. 이태원

주제 : 나를 위한 올바른 자세

더위를 피해서, 바다나 산의 시원한 곳으로 찾아가는 때가 되었습니다. 오늘 미사에 오신 여러분도 그런 계획을 세우겠지만, 그 시간에도 신앙에 대한 마음의 자세를 소홀히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더위를 피하는 일 외에도, 사람은 여러 가지 일을 합니다. 드러나는 일의 종류는 다양하겠지만, 그것을 요약하면 자기 자신을 위한 행동일 것입니다. 사람이 자신을 위해서 움직인다고 하는 행동과 신앙인으로서 하느님을 기억하면서 하는 행동에서, 어느 쪽을 더 우선해야 하느냐고 질문할 것은 아니지만, 두 가지를 충실하게 다 할 수 있으면 더 좋을 것이고, 한 가지를 우선하더라도 조화는 필요한 일입니다.

 

하느님을 공경하는 결과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은 사람의 삶에도 이익이 될 수 있는 행동을 합니다. 이 표현은 반대로도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이 표현은 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 효과적인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구별하고 올바르게 사는 사람이라야, 하느님께도 영광이 되고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는 결과를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말씀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는 어떤 것이겠습니까? 성경을 읽으면서 우리가 윤리적인 가르침만을 찾아낼 수도 있고, 도덕적인 경고만을 얻어낼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순수하게 윤리와 도덕에 대한 가르침은 성경이 아닌 세상의 여러 가지 학문에서도 배우고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니, 성경을 읽으면서 도덕과 윤리만을 찾아내면서 내가 할 일을 다 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중요한 자세를 빠뜨린 행동이 됩니다.

 

한 사람이 다가와, “스승님, 제 형더러 저에게 아버지의 유산을 나누어주라고 일러주십시오.”하고 예수님께 부탁했습니다. 이렇게 청한 사람은 자신의 부탁을 들으면 예수님이 그렇게 해주실 것이고, 예수님께서 충고하시는 말씀을 들으면 자기 형이 그 말대로 움직일 것이며, 그 결과로서 자신에게는 아버지의 유산이 분배될 거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당신에게 도움을 청한 사람의 부탁대로 움직이지 않으셨습니다. 이 사람의 요청을 예수님이 거절했다는 것은 이 사람의 형이 한 행동이 옳은 것이었다고 인정한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서 이분법에 빠져 사는 우리가 범하기 쉬운 판단착오입니다. 예수님께서 동생의 청원을 이해하여, 그 사람의 형을 향해서 당신아버지의 유산을 동생과 나누십시오라고 말할 수는 있었겠지만, 그렇게 되기를 바란 일도 다른 욕심이나 재물에 대한 집착에서 나온 소리인지 구별해야 한다는 뜻이었을 것입니다. 물론 아버지의 유산을 받지 못했다고 여길 동생의 입장에서는 예수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몸으로 드러내야 할 올바른 길을 아는 사람이 제대로 살지 않으면, 실제로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이 느끼는 세상에 대한 감정은 허무하고 박탈된 느낌이 가득하게 됩니다. 세상에서 성공했다고 말하는 사람들과 높은 직책을 가진 사람들이 드러내는 모습도 이런 기준에서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높은 직책을 이용하여 백억 원이 넘는 돈을 아주 쉽게 벌어들인 검사나, 다른 이들의 목숨이나 권리를 내 맘대로 결정할 수 있다고 여기는 행정관이 자신이 하는 일을 돈을 버는 수단으로 생각하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세상의 일을 진단하는 이러한 일은 우리 신앙공동체에서 움직이는 내가 드러내는 삶의 자세를 뒤돌아보게 합니다. 주보에 쓰는 교무금을 봉헌하는 일에 내가 얼마나 협조하는지에 대한 얘기나 매주 토요일이면 구역별로 실행하는 본당의 청소에 대한 아쉬운 모습들이 세상을 대하는 행동과 똑같은 판단을 할 수 있는 일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세상을 향해서 내가 드러낼 자세는 그저 허무하다고 말하는 것이어야 할까요? 현실의 벽이 크다고 생각하고, 내 힘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것이라고 여긴다면 포기하는 말을 하는 것으로 끝낼 수도 있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으로서는 세상이 바뀌지 않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앞에서 내가 무너지고 마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은 세상의 일을 통해서 하느님의 앞에서 부유하게 되는 것을 목표로 삼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우리가 사용할 방법은 여러 가지이겠지만, 실망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것이 첫 번째 자세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드러내는 내 모습으로 내가 할 일을 다 했다고 말할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과 함께 살 것을 생각하는 부활의 삶을 바라는 존재들이기에 판단기준이 달라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 대한 자세, 재물에 자세, 공동체에 대한 나의 자세는 과연 어떠한지 돌아볼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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