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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완전한 사형폐지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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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12-10 ㅣ No.886

[세상살이 복음살이] 완전한 사형폐지 가능한가 - 법률상 사형 폐지, 국가적 결단 필요


지난 11월 30일 ‘세계사형반대의 날’, 천주교를 비롯한 범종교·시민단체들이 사형폐지를 호소했다.

또 12월 30일 우리나라는 사형집행중단 14주년을 맞는다.

‘사실상 사형폐지국’인 우리나라는 지난 9월 8일에는 사형집행중단 5000일을 맞아 세계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오랜 기간 사형이 집행되지 않아 마치 완전히 사형이 사라진 것인 양 느껴진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언제 집행될 지 모르는 사형을 기다리는 60여 명의 미집행 사형수가 있다.

지난 2010년 2월에는 헌법재판소 재판관 5:4(합헌5 위헌4)의 의견으로 사형제도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선고하기도 해 법률상 사형을 존치하는 현실을 더욱 굳건히 하기도 했다.

과연 완전한 사형제 폐지는 가능한 것인가.
 

사형제도 필요한가

국가인권위원회가 사형제도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구하기 위해 가장 최근 실시한 의식조사(2004년) 결과 일반 국민의 경우 65.9%가 사형존치에, 34.1%가 사형폐지에 각각 찬성했다. 우리나라 국민의 절반 이상이 사형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형존치론의 근거에는 사형의 범죄예방 효과, 살인자는 사형시켜야 한다는 국민의 법감정, 사회안전을 위한 극악 인물의 완전한 제거 등이 제시된다.

특히 이 중 가장 힘을 얻는 논리가 사형의 범죄예방 효과다. 이것이 인정되지 않으면 사형은 인간의 존엄성 및 기본권을 불필요하게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난해 2월 헌법재판소의 사형제도 합헌결정에서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해 합헌 판결이 났다.

판결은 났지만 사형에 범죄예방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 합헌 논증에서 사형에는 “일반적 범죄예방 효과가 있다고 볼 수 있다”고 했으나 어떤 실증적 자료나 연구결과는 제시되지 않았다.

2002년 유엔이 발표한 ‘사형제와 살인의 비율’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사형제가 종신형에 비해 살인 범죄억제 효과가 높다고 주장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국가기관에서도 사형의 범죄예방에 관한 유의미한 결과를 담은 자료가 공표된 일이 없고 기타 기관 및 개인의 연구 결과 또한 찾기 어렵다.

사형의 범죄예방 실효성은 증명되지 않은 반면, 세계적 추세는 사형폐지를 말한다. 사형을 폐지하거나 10년 이상 집행하지 않은 국가는 전 세계 197개 국 중 139개 국으로, 사형을 존치하고 있는 58개 국 중 실제로 사형을 집행한 국가는 단 23개 국가뿐이다. 또한 해마다 2~3개의 국가가 사형제를 폐지하고 있다. 이는 사형제에 실효성이 없음을 방증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교회에서 바라본 사형제도

“살인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교회의 사형제도에 대한 입장은 명백하다. 사형은 곧 살인인 것이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인간은 그분의 피조물 가운데 가장 존귀한 존재로서 그 생명 또한 존엄하다. 따라서 창조주가 아닌 어느 누구도 인간의 고귀한 생명을 박탈할 권리는 없다.

이에 교회는 끊임없이 사형폐지를 강조해오고 있다.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세계평화의 날 담화를 통해 “악행을 저지른 자들이라 하더라도 어떠한 형벌이든 범죄자들의 양도할 수 없는 존엄성을 절대 말살할 수는 없다”면서 “회개와 갱생의 모든 기회가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교회 역시 사형폐지운동의 선두에서 노력하고 있다. 생명존중은 모든 종교의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지만 사형폐지를 위한 전문적 위원회를 만들고 사형폐지운동을 주도하는 종교는 천주교뿐이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도 “국가나 다른 어떤 ‘권위’에 의해서 사형제도가 존속해 오는 현실은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죽음의 문화임에 틀림없다”며 사형폐지를 촉구했다.

또한 주교회의 사형폐지소위원회, 천주교인권위원회, 각 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 등은 범종교?시민단체가 연합한 사형폐지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특히 지난 2006년 사형폐지 특별 법안 발의를 위해 단 2주 만에 11만 명의 서명을 모은 것은 타 종단에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성과다.
 

완전한 사형폐지국 가능한가

- <모든 범죄에 대한 사형폐지국 수의 추이> (출처 : 국제엠네스티 연례 사형 현황보고서 「2010 사형선고와 사형집행」)


우리나라는 현재 ‘사실상 사형폐지국’이지만 방심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다. 타이완과 미국의 경우 각각 5년, 10년 가까이 없었던 사형이 한 번의 집행으로 이후에도 계속됐다. 법률상 사형폐지국만이 완전한 사형제 폐지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법률상 사형폐지를 이룬 국가의 형태를 보면 크게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결이 나는 경우와 사형폐지법을 만들어 없어지는 경우로 나뉜다. 전자의 경우 이미 지난 2월 합헌 판결이 나왔기 때문에 성사되기 어렵다.

후자의 경우도 사정이 만만치 않다. 먼저 사형 찬성의 목소리가 높고 여론으로 사형폐지가 이뤄진 실례도 찾기 힘들다. 여론이 이렇다 보니 국회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범종교·시민단체의 노력으로 15대 국회에서부터 사형폐지특별법안이 발의됐지만 번번이 통과를 이루지 못하고 좌절돼왔고 현 18대 국회에서도 법안이 올라왔지만 성사되지 못한 채 임기가 끝나가고 있다.

하지만 비슷한 상황에서 완전한 사형폐지를 이룬 예가 있다. 바로 프랑스다. 프랑스도 여론의 60~70%가 사형을 찬성했지만, 1981년 프랑스 국민의회는 4분의 3이라는 압도적인 찬성으로 폐지를 확정했고, 지난 2007년에는 사형제 폐지를 헌법으로 승인했다. 정치인들이 여론만을 의식한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를 선택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가장 빠르게 사형폐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의 결단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정치인들의 결단을 촉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국민이다. 국제엠네스티 박진옥(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 캠페인사업팀) 팀장은 “15대에서 18대 국회에 이르기까지 사형폐지특별법안이 만들어졌지만 법제사법위에는 올라간 적이 한 번도 없었다”면서 “국민이 직접 편지를 쓰고 방문하는 등의 요구와 압력이 인권단체들의 활동보다도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이 역할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우리들의 소명이기도 하다. 우리가 사형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곧 하느님이 만드신 생명의 소중함과 죄인을 용서하러 오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하는 일과 맥을 함께하기 때문이다.
 

[인터뷰] 천주교 인권위원회 김덕진 사무국장 - “사회에 퍼지는 생명문화, 사형 폐지에 큰 힘 될 것”


김덕진 사무국장은 사형제 존치는 인권의 마지노선이 무너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형폐지운동’은 오래된 명제다. 사형제도를 폐지하자는 이 명제는 너무 당연하고 너무 오래된 이야기이기 때문에 세상의 화려한 조명을 받지 못한다. 하지만 천주교인권위원회 김덕진 사무국장은 이 사형폐지 운동이 인권의 ‘마지막 보루’라고 말한다.

“생명을 지키자는 거잖아요. 사형폐지는 토론의 여지가 없는 문제입니다. 사형제도와 범죄억제력에 대한 과학적 수치나 통계자료를 들면서 설득할 문제가 아니라, 그 자체로 너무나 당연한 인권의 ‘마지노선’입니다.”

김덕진 사무국장은 사형제도가 존치되고 사형이 집행된다면 인권의 마지노선이 무너지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범죄 자체를 용서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범죄에 대한 응보의 논리로 국가가 제도적으로 사형을 합법화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입니다. 이는 국민의 생명권을 보장해야 할 국가가 개인의 생명을 빼앗는 일이고, 범죄로부터 국민을 지키지 못한 책임을 개인에게 지우는 무책임한 일입니다.”

가톨릭교회는 한국사회에 사형폐지 운동이 일어났던 초창기부터 줄곧 사형폐지 운동의 선구자로서의 역할을 다해왔다. 강력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불거지는 사형집행요구 여론 속에서도 변함없이 사형제도 폐지를 외쳐왔다.

“평화를 지키기 위한 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살인을 살인으로 갚는다는 단순한 응보의 개념이 정당화될 수 있나요? 하느님이 주신 생명을 인간이 거둘 수는 없습니다. 여론의 움직임에 휘둘려서도 안 됩니다. 공지영 작가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열풍이 몰아쳤을 때는 사형제도 폐지에 찬성하는 사람이 60%가 넘었지만, 영화 ‘추격자’가 개봉하자 다시 역전됐습니다. 신앙인이라면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생명을 소중히 여기라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지켜야 하지 않을까요?”

김 국장은 교회의 사형폐지 노력은 언제가는 반드시 결실을 맺을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세상을 바꾸는 데에는 아주 작은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화’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고도 덧붙였다.

“사형제도 폐지는 사회 전반에 생명의 문화가 퍼지는 것과 동시에 옵니다. 생명문화를 만들어 가는 데에는 우리 신앙인들의 역할이 큽니다. 복음적 가치를 지켜가는 운동도 기도의 일종이라고 생각해요. 일상 속에서 사형제도 폐지나 4대강 문제, 제주 해군기지 문제 등 우리 사회를 엄습하고 있는 어둠의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 의견을 교환하고 생각을 공유하는 것, 그것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가톨릭신문, 2011년 12월 11일, 이승훈 기자 · 임양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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