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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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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2-25 ㅣ No.348

[교황님 이야기] 하느님의 종들의 종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마태 16,18)

 

사도들의 으뜸, 베드로의 후계자, 그리스도의 대리자, 로마의 주교, 보편 교회의 최고 대사제, 이탈리아의 수석 대주교, 로마 관구의 관구장 대주교, 바티칸 시국의 원수, 하느님의 종들의 종 등으로 표현되는 교황님은 세계 주교단의 단장으로서 현세 교회의 최고 사목자이십니다.

 

초대 교황이신 사도 베드로 성인 이후 현재 266대 교황님으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재임하고 계십니다.

 

‘교황’(敎皇)이라고 번역되는 라틴어 ‘파파’(Papa)는 본래 그리스어로 ‘아버지’를 뜻하는 단어 ‘파파스’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이 용어는 본래 지역 교회의 최고 장상(주교, 대수도원장, 총주교)을 부르던 말인데 중세기 초부터 차츰 로마의 주교, 곧, 교황님에게만 사용되기 시작하여 그레고리오 7세 교황님 때부터 교황님에게만 독점적으로 부여되었습니다.

 

역대 교황님 가운데 성인이 되신 교황님은 모두 80분이십니다. 특히 초대 교황 베드로 사도부터 35대 교황 율리오 1세(재위 337~352)까지는 모두 성인품에 오르셨고, 지난 2104년 4월 27일에는 가톨릭 역사상 최초로 요한 23세 교황님과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동시에 시성이 되셨습니다. 복자로는 2014년에 시복되신 바오로 6세(재위 1963~1978)를 비롯해 모두 9분이 계십니다.

 

가장 오랫동안 재위하신 교황님으로는 초대 교황님이신 성 베드로 사도를 제외하고 255대 비오 4세(재위 1846~1878) 교황님께서 31년 7개월 3주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반면 최단기간 재위하신 교황님으로는 228대 우르바노 7세 교황님이신데 1590년 9월 15일부터 27일까지 12일간 재위한 후 선종하셨습니다.

 

대교황 칭호를 받으신 분으로는 45대 성 레오 1세(재위 440~461) 교황님과 64대 성 그레고리오 1세(재위 590~604) 교황님 두 분 뿐이십니다. 또한 3번이나 교황님이 되신 분도 계시는데 바로 145대, 147대, 150대 교황님이신 베네딕토 9세로 이에 따라 실제 교황직에 오르신 분은 전임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까지 263분이십니다. [2016년 1월 24일 연중 제3주일 대구주보 5면]

 

 

[교황님 이야기] 교황님의 이름

 

 

교황선거에서 차기 교황으로 선출된 새 교황님은 교황직의 수락 의사를 밝히면서 지금까지 사용하던 이름을 버리고 평소 존경하던 성인이나 전임 교황의 이름을 골라 교황명으로 삼아 공표하십니다. 그러나 원래부터 개명(改名)하는 전통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첫 교황님이신 성 베드로 사도 이후 1000년간 교황님들은 거의 대부분 본인의 세례명을 그대로 쓰셨습니다. 이 시기에 새로이 교황명을 정하신 교황님은 요한 2세(533~535년), 요한 12세(955~964년), 세르지오 4세(1009~1012년) 교황님 3분에 불과한데 본래 이름이 이교도 신을 지칭하거나 또는 정치적 부담을 느끼게 하거나, 괴상한 뜻을 지녔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본격적으로 개명하는 관습이 정착된 것은 클레멘스 2세(1046~1047년) 교황님 이후였습니다. 교황명 개칭 관습에는 베드로좌에 오르신 새 교황님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 지상 최고의 다리를 놓는 새 사람이 되셨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아울러 로마 주교 수위권이 강화되고 교황직무가 강조되면서 다른 교구장 주교와 차별을 두려는 취지도 담겨 있습니다.

 

이 같은 방식으로 역대 교황명 가운데 가장 많이 선택된 이름은 ‘요한’으로 지금까지 통틀어 21분의 교황님께서 이 이름을 선택하셨습니다. 그 다음이 ‘그레고리오’(16분), ‘베네딕토’(15분), ‘클레멘스’(15분), ‘레오’(13분), ‘인노첸시오’(13분), ‘비오’(12분) 등입니다.

 

특이한 것은 ‘베드로’라는 교황명은 초대 교황이신 베드로 사도 이후 단 한 분도 교황명으로 정한 적이 없다는 점인데 베드로 사도를 향한 주님의 명명(마태 16,18)을 존중하는 차원에서라고 합니다.

 

또한 두 분의 교황님 이름을 합쳐서 개명한 교황님은 요한 바오로 1세 교황님이 처음이신데 전임 요한 23세와 바오로 6세의 이름을 모두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도 전임 교황님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셨습니다.

 

현재 제266대 교황이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전임 교황들의 이름을 따르지 않으시고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을 본받아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할 것을 다짐하시면서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란 이름을 대신해 ‘프란치스코’로 교황명을 정하셨습니다. [2016년 2월 21일 사순 제2주일 대구주보 5면]

 

 

[교황님 이야기] 어부의 반지

 

 

반지는 예로부터 사랑, 계약, 권위 등을 상징합니다. 구약에서도 이집트의 파라오왕이 요셉에게 그 권위를 뜻하는 인장반지를 끼워주었습니다(창세 41,41-42). 오늘날 교황님과 추기경님, 그리고 주교님의 반지는 사목상의 계약과 동시에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권위를 나타냅니다.

 

특히 교황님의 공식도장이자 국새로 교황님의 상징물 중 하나인 교황님의 반지는 ‘어부의 반지’라고 불리는데 이는 교황님께서 어부 출신의 초대 교황님이신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이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와 다른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마태 4,19)고 하신 말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탈리아어로는 페스카토리오(Pescatorio)라고 부르는 이 반지는 보석을 전혀 박지 않고 금으로 만듭니다. 표면에는 베드로 사도가 배에서 그물을 던져 물고기를 낚는 모습이 새겨져 있으며 그 둘레에는 당대 교황님의 라틴어식 이름이 양각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13세기 이래 교황님께서 서명하시는 모든 공식문서들을 날인하는데 사용되어 왔으며 교황님을 알현하는 사람들은 경의를 표하는 의미에서 무릎을 꿇고 이 반지에 입을 맞추는 인사를 합니다.

 

매번 새로운 교황님께서 즉위하실 때마다 그에 맞춰 새로운 반지가 마련되는데 교황님께서는 선종 때까지 반지를 끼게 됩니다. 교황님께서 선종하시면 반지는 은망치로 파기되어 교황님의 유해와 함께 매장됩니다. 이는 교황님의 문서가 위조되는 것을 방지하고 그 권위와 통치가 종식되었음의 의미합니다.

 

현 교황님이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즉위하실 때 기존의 교황님들과는 달리 새로운 반지를 만들지 않으시고 바오로 6세 교황님께서 선물로 받으셨던 것을 재활용하셨습니다. 이미 전해져 오던 천국의 열쇠를 든 베드로 성인을 묘사한 디자인에 금이 아닌 은에 금도금을 한 반지를 교황님의 반지로 채택하셨습니다. [2016년 3월 20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대구주보 5면]

 

 

[교황님 이야기] 콘클라베(conclave)

 

 

교황은 일반적인 선거 방식과는 달리 콘클라베(conclave)라는 독특한 제도를 통해 선출됩니다. 새 교황을 선출하는 추기경단 회의를 콘클라베라고 하는데 라틴어의 쿰 클라비(cum clavi)에서 유래하는 말로 Con(With…와 함께)과 Clave(Key 열쇠)의 합성어로 ‘자물쇠가 채워진 방’이란 뜻으로 원래는 교황을 뽑는 선거 장소를 말합니다.

초대 교회 때의 교황선출은 로마에 거주하는 성직자와 평신도들을 중심으로 행해졌습니다. 그러나 외부의 간섭과 여러 가지 문제점들로 인해 1059년 이후 부터는 추기경단에서 교황의 선출 임무를 맡게 되는 교황선거법이 마련되었고 1179년 제3차 라테란 공의회에서는 3분의 2의 다수결 선출 방식이 결정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1268년에 클레멘스 4세 교황의 선종으로 이탈리아의 비테르보에서 교황 선출회의가 열렸는데 탁상공론만 계속된 채 3년 가까이 선거를 지연시키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비테르보 시민들은 선거자들이 회의장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급기야 출입문에 자물쇠를 채워 감금하고 최소한의 빵과 물만 제공했습니다. 이것이 콘클라베의 기원이 되었고 1271년 마침내 새 교황으로 선출된 그레고리오 10세 교황께서는 그 방법이 훌륭했음을 인정하고, 1274년 제2차 리옹 공의회에서 그것을 제도화했습니다.

오늘날 콘클라베는 바티칸 궁 내 시스틴성당에서 행해지는데 예전처럼 추기경들이 성당에서 갇혀 지내는 관례는 요한바오로 2세 교황의 사도헌장 『주님의 양떼』의 규정에 따라 폐지되고 대신 바티칸에 있는 숙소인 성 마르타의 집에 머물면서 투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콘클라베는 교황께서 사임하시거나 선종하신 후 15~20일 안에 열리게 되어 있으며 교황을 선출할 추기경단이 콘클라베에 임하게 되면 교황이 선출될 때까지 일체 외부와 단절되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완전히 비밀로 하며 기록은 교황청 고문서실에 보관하게 됩니다. 투표는 무기명 비밀투표로 후보는 따로 선발하지 않고 선거인 각자가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이름을 투표용지에 적게 됩니다. 매번 투표 후에 교황이 선출되지 않으면 투표용지를 태워 검은 연기를 내 보내고 새 교황이 정해지면 흰 연기와 함께 성 베드로 대성전의 타종 소리로 새로운 교황께서 선출되었음을 기다리는 신자들에게 알려줍니다.

역사상 가장 짧았던 콘클라베는 1503년 10월 31일 율리오 2세 교황 선출 때로 콘클라베가 열린지 몇 시간 만에 선출되어 최단기록을 세웠으며 그레고리오 10세 교황은 1268년부터 1270년까지 2년 9개월에 걸쳐 콘클라베가 열려 가장 길었던 교황선거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20세기 들어 소집된 콘클라베는 최소 이틀에서 최대 닷새 동안 열렸으며 현재 266대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틀간 5차례 투표 끝에 새 교황으로 탄생되셨습니다. [2016년 4월 17일 부활 제4주일(성소주일) 대구주보 5면]

 

 

[교황님 이야기] 두 분의 대(大)교황

 

 

교회 역사 안에서 대(大)교황이란 칭호를 받으신 분은 두 분이 계십니다.

 

 

로마교회 통치권의 기반을 확립하신 제45대 성 대 레오 1세 교황(재위 440~461년)

 

교황으로서는 처음으로 ‘대’(Magnus 大)라는 칭호를 받으신 성 레오 1세 교황님께서는 이탈리아 토스카나에서 태어나 440년 성 식스토 3세 교황님의 뒤를 이어 제45대 교황으로 추대 되셨습니다. 위대한 행정가, 신앙의 보존자, 고대 교회 초석을 놓은 교황님으로 요약되는 레오 1세 교황님께서는 신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서방에서 교황 역할의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훈족과 반달족의 침공을 받은 로마를 구하셨으며 교황의 수위권을 강조하시어 교회의 정통 교리를 더욱 견고케 하시고 교황권을 확립하셨습니다. 또한 단성론 이단을 물리치시기 위해 칼체돈 공의회를 소집하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인성(人性)과 신성(神性)의 두 본성을 온전하고 완전하게 지니셨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두 본성은 하나다’라는 가르침을 선언하고 확고하게 하셨습니다.

 

173편의 서간과 96편의 강론을 남기신 교황님께서는 교황으로서는 최초로 성 베드로 대성당 지하묘지에 안장되셨으며 1754년 베네딕토 14세 교황에 의해 ‘교회박사’(Doctor Ecclesiae)로 선포되셨습니다.

 

 

탁월한 행정능력 발휘하신 ‘하느님의 집정관’ 제64대 성 대 그레고리오 1세 교황(재위 590~604년)

 

성 암브로시오, 성 예로니모, 성 아우구스티노와 함께 서방교회의 4대 교회학자 가운데 한 분이신 그레고리오 1세 교황님은 베네딕토회 출신으로 수도자로서는 처음으로 베드로좌에 오르신 분이십니다. 교황을 일컫는 칭호인 ‘하느님의 종들의 종’이란 표현을 처음 사용하셨으며 신심 깊은 영성가, 탁월한 행정가, 정치가로 실천적이고 활동적인 교황님이셨습니다. 교회법령을 정비하고 무능한 성직자를 해임시켰으며 교황청 자산을 지혜롭게 관리하여 자선활동을 전개하는 등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는데 힘쓰셨습니다.

 

800여 통의 서한들 속에 담긴 교황님의 사상은 서방교회의 전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셨으며 유럽의 역사에도 큰 발자국을 남기셨습니다. 특히 지역마다 제 각각이었던 미사 전례곡들과 성무일도에 사용되던 시편, 응송, 찬미가들을 전례력에 맞춰 정리한 ‘그레고리오 성가집’을 편찬하시고 뛰어난 설교를 많이 남기셨습니다. 성 베드로 대성당에 있는 교황님의 묘비에는 ‘하느님의 집정관’(Consul Dei)이라고 적혀 있는데 교황님께서 사회와 교회 안에서 수행했던 역할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2016년 5월 15일 성령 강림 대축일 대구주보 5면]

 

 

[교황님 이야기] 교황 문장

 

 

주교가 되면 자신만의 고유한 마크를 갖게 됩니다. 이것을 문장(紋章)이라고 하는데 보통 소속 교구나 사목 방침을 상징하는 도안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상단의 모자, 방패, 십자가, 맨 밑에는 사목 표어, 그리고 양옆에 장식술이 들어가는데 주교는 3단, 대주교는 4단, 추기경은 5단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교황은 좀 다릅니다. 모자의 모양이 바뀌고 베드로의 열쇠가 교차하는 문양을 가지게 됩니다.

교황을 상징하는 고유한 문장인 교황 문장을 최초로 사용하신 분은 인노첸시오 4세(1243-1254) 교황님이십니다. 교황 문장의 형태는 바티칸 시국의 국기인 교황기에서 볼 수 있듯이 교황관을 가운데 두고 금 열쇠와 은 열쇠가 교차된 모습이 특징입니다. 여기서 열쇠는 하늘(금색)과 땅(은색)에서 죄와의 유대를 묶고 푸는 교황의 권한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6,18~19)라고 말씀하시며 베드로 사도에게 맡기신 천국의 열쇠에서 유래된 것으로 교황이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로서 지닌 영적인 권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또한 방패에는 교황이 속한 가문이나 교구의 문장 또는 교황 개인의 개성과 앞으로 교황직을 수행하면서 펼칠 계획들과 관련된 요소들을 나타내는 상징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추기경 시절의 문장을 계속 유지하거나 약간 변형하기도 합니다. 전임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는 교황을 상징하는 삼중관을 없애고 주교관과 팔리움을 포함시켰습니다. 그 대신 삼중관의 의미를 연상시키고자 주교관 그림에 교황의 세 가지 권한 즉, 성품권, 통치권, 교도권을 상징하는 세 줄의 금색 띠를 그려 넣고 이 세 띠가 중앙에서 만나 하나로 일치되어 있음을 나타냈습니다.

전통적으로 교황의 문장에는 방패 아래에 사목 표어를 새긴 리본을 집어넣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교황직이 향주삼덕(믿음, 희망, 사랑)에서 기인하는 모든 이상에 전적으로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예외적으로 주교 시절 당시의 사목 표어 ‘자비로이 부르시니(miserando atque eligendo)’를 교황 문장에 그대로 첨부하셨습니다. [2016년 6월 12일 연중 제11주일 대구주보 5면]

 

 

[교황님 이야기] 역사 속 위대한 교황 I

 

 

인노첸시오 3세(1198~1216)

제176대 교황이자 중세기 가장 위대한 교황 중 한 분으로 인정받는 인노첸시오 3세 교황은 세속 정치에 깊이 관여하며 교황권을 중세 국가와 권력의 중요 핵심으로 만든 인물입니다. 그분의 가장 큰 치적은 1215년 개최한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로, 이를 통해 교회의 광범위한 조직과 제도를 쇄신했습니다. 교회법에 정통했던 인노첸시오 3세 교황은 많은 법령들을 반포했으며 6000여 통의 서한을 보냈고 교회법 연구를 장려했습니다. 발트지역에 선교사를 파견하여 전교에도 힘을 썼으며, 특히 성 도미니코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에게 순회설교가로 활동할 수 있는 권한을 내렸습니다.

 

 

비오 9세(1846~1878)

제255대 교황인 비오 9세 교황은 박해상황의 조선교회를 배려하고 1857년 조선의 순교자 82명을 가경자로 선포하는 등 한국교회와도 깊은 인연을 맺은 교황입니다. 비오 9세 교황은 ‘제1차 바티칸 공의회’를 개최하고 교황의 수위권과 무류성이라는 두 의안을 통과시킴으로써 공의회를 세계사와 교회사에 중대한 사건으로 기록시킨 인물입니다. 비록 격변기 사회 상황 속에서 새로운 사상의 도전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고 세속권의 상실로 교황권이 치욕스런 국면을 맞는 시기에 직면하기도 했으나, 제1차 바티칸 공의회 등을 통해 19세기 재임교황 중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레오 13세(1878~1903)

제256대 교황이며 사회 문제에 관한 회칙 ‘노동헌장’(Rerum Novarum)으로 유명한 레오 13세 교황은 그리스도인들의 사회운동에 가장 강력한 자극을 준 교황입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걸친 재위기간 25년은 교황으로서 가장 의미 있는 업적을 남긴 기간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노예제도 폐지를 요구하는 2개의 칙서를 발표했으며 1881년에는 바티칸 문서고를 열어 사학자들이 연구할 수 있는 길을 터주었고, 1902년에는 교황청 성서위원회를 설립했습니다. 레오 13세 교황의 치적은 외교 분야에서 두드러지는데 정치 외교적으로 능란한 수완을 보인 교황은 동방교회와 슬라브교회의 일치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2016년 7월 10일 연중 제15주일 대구주보 5면]

 

 

[교황님 이야기] 역사 속 위대한 교황님들 II



요한 23세(1958~1963)

77세라는 고령의 나이에 제261대 교황으로 선출되신 요한 23세 교황님은 현대교회의 새로운 미래를 향한 길을 열어놓은 역사적인 교황님이십니다. “착하신 교황 요한”이란 별칭에서도 드러나듯 모든 계층의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받은 요한 23세 교황님께서는 최초로 로마에서 시노드를 열어 사목과 신앙생활에 새로운 자극을 제공하려고 노력하셨고, 교회법을 새롭게 편찬하셨습니다. 특히 교회쇄신과 세상을 향해 열린 교회를 선언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여신 분이십니다. 소탈한 성품으로 공장과 양로원, 감옥을 찾아다니시며 평범한 사람들과 어울리셨고 추기경단의 규모를 확대하기도 했습니다.

 

 

바오로 6세(1963~1978)

제262대 교황으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성공적인 결실을 이끌어 내신 바오로 6세 교황님은 동방 교회와의 만남을 통해 그리스도교의 일치와 평화를 위해 노력하신 분이십니다. ‘전례헌장’, ‘매스미디어에 관한 교령’을 제정 반포하셨으며, 영성체 전 공심재, 미사 때의 모국어 사용, 전례쇄신 등을 결정했습니다. 교황님께서는 비행기와 헬리콥터로 사목방문을 한 최초의 교황이시며, 세계 여러 나라를 방문한 첫 교황이십니다. 처음으로 팔레스티나 성지를 방문하셨으며, 아시아 지역을 찾고 UN 본부에서의 연설도 ‘처음’으로 시도하였습니다. 특히 추기경 숫자를 140여 명으로 늘려 교회의 보편성을 찾고자 하셨으며 우리나라의 순교자 24위를 추가로 시복하시고 한국인 최초의 추기경으로 김수환 추기경을 서임하셨습니다. 2014년 10월 19일 프란치스코 교황님에 의해 시복되셨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1978~2005)

455년 만에 탄생한 비 이탈리아계 교황으로 제264대 교황님이 되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는 ‘냉전의 시대’에 대립과 대결의 종식에 결정적 역할을 하신 분이십니다. 처음으로 공산국가인 모국 폴란드를 방문하셨고, 소련 공산당 서기장 미하일 고르바초프와의 세기적 만남을 이뤄내기도 했습니다. ‘행동하는 교황’, ‘평화의 사도’로 불린 교황님께서는 재위 25년 동안 102회에 걸쳐 131개국을 방문하는 등 해외순방을 가장 많이 실현하셨으며, 가장 많은 성인을 시성한 교황으로 남아 있습니다. 사회정의와 윤리를 다지는 교회 가르침을 다수 발표하셨고, 특히 대희년을 기점으로 지난날 교회가 저지른 과오를 사과하는 역사적인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2014년 4월 27일 프란치스코 교황님에 의해 요한 23세 교황님과 함께 시성되셨습니다. [2016년 8월 7일 연중 제19주일 대구주보 5면]

 

 

[교황님 이야기] 교황님의 나라, 바티칸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 교황님에 의해 통치되는 신권국가인 바티칸은 이탈리아의 로마시 북서부에 있는 독립 시국(市國)으로 정식명칭은 바티칸시국(Stato della Citta del Vaticano)입니다. 교황님께서 머무르고 계신 곳으로 교황청(The Holy See)이라는 말과 혼용되는 바티칸은 전 세계 가톨릭교회의 상징이자 중심이며 신자들에게는 마음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면적은 0.44㎢이며 842명(2015년 현재)의 인구가 살고 있는 바티칸은 바티칸궁전, 성베드로대성당, 바티칸도서관, 바티칸박물관, 바티칸방송국 외에 교회행정과 학술, 문화, 과학 등을 관장하는 많은 건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원래 바티칸이란 이름은 길흉화복을 점치던 무당을 말하는 ‘바티’에서 유래되었는데 이들이 모여 살던 곳이 ‘바티들의 언덕(Mons Vaticanus)’이었고 고대 로마인들이 ‘점(占)치는 언덕’이라 부르며 오랫동안 신성하게 여겨오던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교들의 장소인 곳이 가톨릭 교회의 총 본산이 된 것은 이곳에 만들어진 거대한 원형 경기장에서 베드로 사도가 순교를 당하셨고 묻히셨기 때문입니다. 그 뒤 그리스도교가 공인되면서 베드로 사도의 묘지 위에 성베드로대성당이 세워졌고 5세기경에는 바티칸궁전이 건립되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역대 교황님들이 바티칸궁전 주변의 땅을 매입하였고, 8세기부터는 교황령을 통치하는 교황의 정식 주거지가 되었습니다. 번창하던 바티칸은 19세기 이탈리아가 통일되면서 교황령을 잃어버리게 되었으나 1929년 2월 11일 정치적 권위를 인정받으려는 무솔리니와 ‘라테란 조약’을 체결하면서 독립국가의 지위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행정권만 갖고 있으며 국방은 이탈리아에 위임하였고 교황님의 경호와 교황청의 경비는 과거 용병시절 맹활약을 떨친 스위스 근위병들이 맡고 있습니다.

바티칸이란 용어는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되는데 먼저 전 세계 모든 가톨릭교회를 총괄하고 대표하는 교황청으로서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의 최고 목자이신 교황님과 그분을 보필하는 기구가 있기 때문에 대외적인 국제 관계에서는 ‘성좌(The Holy See)’를 공식 국가명으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또한 국제법상 독립국가로서 교황령을 통치하는 정부라는 의미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로마교구의 교구청이라는 의미도 동시에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복합적인 의미를 가진 바티칸은 전 세계 교회뿐만 아니라 국가들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여 현재 100여개 이상의 나라들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와는 1963년에 12월 11일에 공식 수교를 맺었습니다. [2016년 9월 4일 연중 제23주일 대구주보 5면]

 

 

[교황님 이야기] 교황님의 문서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발표하신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 회칙 “찬미받으소서”, 칙서 “자비의 얼굴” 등을 통틀어 교황문서라고 하는데 각각 사용되는 용어에 따라 그 중요도를 달리하고 있습니다. 교황님이나 교황청의 공식문서들을 말하는 교황문서는 내용면에서 신앙과 도덕을 가르치기 위한 것과 교회와 신자들의 통치에 관한 규율적인 것 등으로 나뉩니다. 그리고 적용범위에 따라 전 세계 교회에 관한 보편적인 것과 특정인물이나 사건에 관한 개별적인 것 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교황문서는 다음과 같이 분류됩니다.

 

교황령(Apostolic Constitutions)은 극히 중대한 사안에 대한 교황문서로 교황님의 이름으로 발표되는 문서 중 가장 장엄하고 최고의 권위를 지닙니다. 교황령은 교의를 정의할 수 있는 것은 물론 교회법을 고치거나 새로운 교회의 구조를 설립할 수 있습니다. 교황님의 인장인 ‘어부의 도장’을 찍어 봉인하는 칙서(bulla)의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자의교서(Motu Proprio)는 칙서 다음으로 중대한 사안에 대한 교황문서로 교황님 자신의 고유한 주도권을 가지고 내는 법령입니다. 대개 행정에 관한 문서로, 결정을 법제화 하거나 교회법을 바꿀 수 있습니다.


회칙(Encyclicals)은 교리나 규율에 관한 것으로 전 세계 교회에 대해 교황님께서 발표하시는 공식적인 사목교서를 말합니다. 주교들에게 보내는 형식을 취하지만 교의적 논점은 세계의 모든 신자들에게 권고하는 것입니다. 사회적 가르침을 주는 것으로 잘 알려진 대부분의 문헌들이 회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교황서한(Litterae Apostolicae)은 시성발표, 주교나 추기경의 서임, 교구 설정 등 행정에 관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청원에 답하는 문서들입니다


교황교서(Apostolic Letters)는 교황령이나 교령(Decretal Letters)에 비해 덜 장엄한 문서입니다. 보통 전체 교회가 아니라 특정한 사람들이나 단체에 주는 문서이며 법적 구속력은 거의 갖지 않습니다.


교황권고(Apostolic Exhortation)는 교황이 특정한 활동을 재촉하면서 어떤 공동체에 제시하는 격식 있는 가르침입니다. 법적 구속력을 지니기보다는 권면적인 성격을 띱니다. 따라서 권고는 교의를 규정하지 않기에 중요도 수준은 회칙이나 교황교서보다 낮습니다.


이 밖에도 교황문서에는 담화, 훈화, 연설, 강론, 메시지, 알현, 편지 등이 있습니다. [2016년 10월 9일 연중 제28주일 대구주보 5면]

 


[교황님 이야기] 교황님 기구 I



전 세계 모든 가톨릭교회를 총괄하고 대표하는 교황청에는 교황님과 그분을 보필하는 기구가 있습니다. 오늘날의 교황청 기구는 1967년 바오로 6세 교황님께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에 입각하여 대대적으로 개편한 후 1988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도 이 기구를 대폭 개편한 바 있으며 현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개편을 진행 중에 계십니다. 현재는 국무원, 9개 성(省), 법원, 12개 평의회, 사무처, 기타 기구로 되어 있습니다.

국무원(Segreteria di Stato)은 교황님과 그 직무 수행을 측근에서 보좌하는 별도 기구입니다. 여러 산하 기관에 대하여 특별권한을 행사하는 두 개의 부서로 확대 개편되어 있는데, 교황님과 교황청의 일반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국무부, 그리고 교회와 국가 간의 외교 업무를 수행하는 부서인 외무부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국무원 산하기구로는 사도좌(교황청) 관보, 교황청 연감, 교황청 통계처, 국무원 외무 자문위원회가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성(省)들은 교회의 일상 업무를 처리하는 부서로서 특별한 법적 지위를 누려 왔지만, 1988년 교황청 개편으로 모든 부서가 동등한 법률적 지위를 갖게 되었습니다. 신앙, 도덕, 사상 등을 감독하고 교리에 맞는지를 감시하는 신앙교리성(Congregatio de Doctrina Fidei)과 동방 교회의 규율, 전례, 인사문제 등 동방 교회 신자들을 위한 동방교회성(Congregatio pro Ecclesiis Orientalibus), 교회 전례, 칠성사에 관한 업무와 규율을 담당하는 경신성사성(Congregatio de Cultu Divino et Disciplina Sacramentorum)(지난 10월 28일 우리 대구대교구 장신호 요한 보스코 보좌주교님이 위원으로 임명되셨습니다), 시복 시성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시성성(Congregatio de Causis Sanctorum), 완전한 교계제도를 갖춘 지역 교회를 관장하는 주교성(Congregatio pro Episcopis), 정식 교계제도 설정이 안 된 전교 지역으로 선교 지역을 그 대상으로 하는 인류 복음화성(Congregatio pro Gentium Evangelizatione), 교구의 사제, 부제들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는 성직자성(Congregatio pro Clericis), 축성 수도회와 사도 생활단의 업무를 관장하는 봉헌생활회와 사도생활단성(Congregatio pro Institutis Vitae Consecratae et Societatibus Vitae Apostolicae)(약칭 수도회성), 신학교와 가톨릭 교육 기관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가톨릭교육성(Congregatio de Seminariis atque Studiorum Institutis)까지 아홉 개의 성(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2016년 11월 13일 연중 제33주일 대구주보 5면]

 

 

[교황님 이야기] 교황님 기구 II



교황님은 가톨릭 세계의 최고 재판관이십니다. 교황님은 몸소 또는 사도좌의 통상 법원이나 당신께서 위임한 재판관들을 통하여 재판을 하십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외적 법정에 관련된 법원 뿐만 아니라 내적 법정에 관련된 법원도 갖고 있습니다.

법원(法院)은 세 개의 원(院)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양심의 비밀, 사죄, 면제와 같은 내적 법정과 대사(大赦)에 관한 업무를 관할하는 내사원(內赦院), 한 국가의 대법원과 비슷한 교회의 최고 법원인 대심원(大審院), 고등 법원으로 1, 2심, 그 이상의 재판을 담당하는 공소원(控訴院)으로 나뉩니다.

12개의 평의회(評議會)는 평신도평의회, 그리스도인일치촉진평의회, 가정평의회, 정의평화평의회, 사회사목평의회, 이주사목평의회, 보건사목평의회, 교회법해석평의회, 종교간대화평의회, 문화평의회, 사회홍보평의회, 새복음화촉진평의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또한 사무처는 사도좌 공석시 세습 자산과 권리를 특별법에 따라 관리하는 교황궁무처, 교황청의 임무 수행에 필요한 경비 지출을 위해 지정된 사도좌의 고유한 재산을 관리하는 사도좌재산 관리처, 성좌에 종속되어 있는 부서들의 재산 관리를 조정, 지도하고 예결산 심의를 비롯한 재무관리 계획을 감독하며 주요 사업 계획을 심사 판정하는 성좌재무심의처까지 세 개의 사무처가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기타 부서로는 교황궁 안의 모든 업무를 총괄하며 교황 알현 및 의전 절차 등을 관장하는 교황궁내원을 비롯해 교황님이 집전하거나 교황님의 이름으로 거행되는 모든 전례를 비롯해 기타 거룩한 예식 거행에 필요한 모든 것, 추기경 서임, 주교 서품, 대수도원장의 축복식을 준비하고 교황 선출까지 주관하는 교황전례원이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에 의해 신설된 부서로, 교황청 기구와 사도좌 관련 단체들 그리고 바티칸 시국의 부서들의 재무를 관리 감독하는 사도좌재무원과 교황청 사회홍보평의회, 교황청 공보실, 바티칸 통신, 바티칸 라디오 방송국, 바티칸 텔레비전 방송국,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바티칸 인쇄소, 사진부, 바티칸 출판사가 포함된 모든 커뮤니케이션 관련 기구들을 하나의 부서로 통합한 홍보처가 있습니다.

이 밖에도 다른 많은 기구와 세계 주교 대의원회, 세계 주교 협의회 등과 같은 각종 위원회와 연구 기관들이 있습니다. [2016년 12월 11일 대림 제3주일(자선주일) 대구주보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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