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일)
(백) 부활 제5주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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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세마니의 주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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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규 [mugeoul] 쪽지 캡슐

2001-03-05 ㅣ No.155

수난의 전날

체포당하시던 밤

그 어둠의 겟세마니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시면서까지 성부께 드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는

바로 그분 자신이 제자들께 가르쳐 주신 기도,

곧 ’주의 기도’였다.

 

"아버지,

온갖 영예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온 누리에 거룩히 빛나게 하소서.

아버지,

아버지께서 함께 하시는 그 나라 임하게 하소서.

아버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아버지,

오늘도 모든 일에 함께 하여 주소서.

아버지,

나를 지켜 주시어 유혹에 빠져들지 않게 하소서.

아버지,

온갖 어려움에서 감사로이 구해 주소서.

아버지,

때가 왔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뜻을 드러내소서."

 

하지만 고난의 잔은 치워지지 않았고,

그의 간절한 간구는

그의 지극한 순명의지 앞에 온전히 포기되어야 했다.

 

사실

"아버지, 이 잔을 거두소서.

하오나 제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와 같은

이런 기도는 참으로 두려운 기도이다.

왜냐면 그럴 경우 잔은 반드시 내려지고 마는 것이니,

참으로 굳은 각오없인 함부로 드릴 기도가 못된다.

어쩌면 죽음이 올지도 모를!

그러기에 그것은

자기신앙의 과시나 믿음을 드러내려고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죽음의 공포 그 예감 속에서 던진 말이다.

 

그토록 신뢰되던 그분이 그토록 믿음치 않게 보여지다니,

웬일일까 하필이면 이 때에!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무섭기조차 했다.

하지만 그 옛날을, 그 놀라웠던 일들하며

이젠 기억에만 남아 전혀 체감되지 않는 당신의

믿음의 그 손길을 믿고 내 모든 것을 맡깁니다.

그런 속에서 주님은 "당신 뜻대로 하옵소서!" 했다.

그것은

"이제 모든 것은 다 끊겼지만

나는 오직 당신을 믿으며 저를 맡깁니다!"라는

어둔 밤의 기막힌 봉헌이다.

그 간절한 간구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수난의 하루 동안 하느님은 그분을 완전하게 떠나가시어

그분은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으셨다.

수난 동안 예수 그리스도께서

타인이 보기에 이상할 만큼 지나치게 침묵하셨던 사실도

바로 이 ’성부(聖父) 하느님의 떠나심’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신앙인이 자신에게서 하느님께서 떠나갔음을 느낄 때,

그 끔찍하고 두렵고 공허한 시간에

신앙인은 눈과 귀가 캄캄해지고 손발이 저려 아파 오면서

한 마디 말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온 존재가 마비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하여 그때부터

갈바리아 산상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까지

그분을 지탱시켜 준 것은 아무 것도 없었고,

오직 그분 스스로 지니신

아버지에 대한 사랑의 의지인 믿음뿐이었다.

 

불신과 회의에의 유혹은 광야에서보다 더 참으로 격심했으나,

그분은 아버지를 믿으셨다.

다시 말해 하느님은 그분을 떠나가 버리셨으나,

하느님은 그분을 돌보아 지켜 주셨던 것이다.

왜냐면 믿음은 하느님의 은총적 선물이고,

무엇보다 하느님이 지켜 구해 주시지 않으면

그 누구도 신앙적 유혹에서 이길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하느님께서 신앙인을 떠난다는 것은

아버지가 아들 뒤로 물러나 후견인처럼 돌봐 주는 것과 같다.

그런 까닭에 유혹을 이겨내는 유일 최선의 길은

하느님은 결코 자신을 버리지 않는다는 걸

억지로라도 믿으며 버티어 나가는 것이다.

 

그럴 때 최소한의 생존권을 확보해주는 차원에서

사회로부터 복지체제의 지지가 주어지는 것 것처럼,

(물론 이것은 앞에서도 말했듯

하느님께서 후견인처럼 뒤로 물러나 계시기에

신앙인 자신도 눈치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어쨌든 신앙의 세계에서도

믿음의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토대가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져 신앙인을 지켜 주고 살려 나간다.

그건 참으로 부인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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