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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자] 본당신부의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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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3 ㅣ No.167

본당 신부의 영성

 

 

올해 연중 피정을 준비하면서 필자는 교구-본당 신부들의 영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필자는 프란치스코 영성, 이냐시오 영성과 관상 기도에 익숙하다. 그러나 본당 신부의 영성이라고 하면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수도회의 영성은 본당 신부들의 영성 생활에 원천이 되어 왔으며, 교구 신학교에서는 여전히 이를 영성의 모델로 삼고 있다. 그러나 교구 신부의 영성을 위해서 수도원에 가라고 하는 것은 역설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 본질적 문제가 내재한다. 신학교에서는 성무일도를 함께 바치며, 묵상법과 영적 독서를 배우고, 가르멜, 이냐시오, 베네딕토를 포함하여 여러 영성 수련 방법들을 접한다. 그러나 정작 본당에 나가서는 이러한 방법으로 영성 생활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본당 사목을 하면서 성무일도를 성실히 바치는 것도 쉽지 않으며, 교구 사제들의 공동 기도 모임을 갖기도 어렵다. 대부분의 신부들은 혼자서 살아가고, 동료 신부들의 도움을 받기에는 거리상으로 너무 멀다. 그러다 보면 신부들의 영성은 일상 교역을 수행하는 가운데 흔들리게 된다.

 

이번 피정에서 필자는 ?교구 신부의 영성?(Donald B. Cozzens, The Spirituality of the Diocesan Priest, The Liturgical Press, 1997년)을 묵상 자료로 삼았다. 이 책은 신부, 주교, 본당 직원, 신학교 교수들의 수필들을 모아 놓은 것인데, 다양한 내용과 생각, 관점들을 담고 있으며 실용적인 글과 이론적인 글이 혼합되어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제목이 시사하는 것과는 달리 교구 신부의 영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정의 내리지 못하고 있다.

 

영성에 대해 정의를 내리는 것은 쉽지 않다. 이를 정의 내리려 하는 순간 그것은 성장을 멈춘다. 우리는 단지 정의를 내리기 위한 길에 나설 수 있을 뿐이다. 여정 자체가 영성적인 것이다.

 

이 글에서는 본당 신부로서의 개인적 경험, 동료 사제와 영성 지도 신부들의 이야기, 그리고 ?교구 신부의 영성?의 필자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교구-본당 신부들의 영성에 대해 세 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해 보겠다.

 

첫째, 영성이 곧 기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기도는 영성을 풍부하게 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기도하는 삶과 영성의 삶은 서로 구별되는 두 개의 실체이다. 매일 제시간에 성무일도를 바치는 사람도 여전히 영적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런 일은 신부나 평신도나 비슷하게 겪는다. 매일 미사에 참석하는 사람들 중에 성체성사가 얼마나 의미 있는 것인지 의구심에 빠지는 경우가 있으며, 마찬가지로 신부도 매일 어렵게 규칙적으로 성무일도를 바치면서 과연 이러한 방법이 하느님께 이르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여기서 문제 해결의 열쇠는 기도가 아니라 성령을 향한 열린 마음이다. 오직 이 열린 마음으로부터 기도가 흘러나오도록 해야 한다. 기도는 영성을 표현한다.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는다.

 

영성은 또한 삶 전체와 연관되어 있어야 한다. 영성은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나온다. 기도가 그 대화를 계속 유지시키기는 하지만 이 관계가 가장 우선적인 것이다. 사람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이 관계에 접근한다. 영성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우리 자신에게 “나와 예수님은 어떠한 관계인가?”, “나와 이웃과의 관계는 보통 어떻게 발전하는가?” 하고 자문해 보아야 한다. 이러한 질문들은 우리 자신의 영성을 이해하는 데 열쇠가 될 것이다.

 

우리는 영성이 매우 깊은 사람을 종종 만나는데, 영성이 깊다는 것의 의미는 아주 명백하다. 그들 영성이 깊은 것은 기도를 많이 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모든 말과 행동이 하느님께 대한 사랑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음의 성서 구절을 마음에 새기고 있는 사람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을 찬양합시다. 그분은 인자하신 아버지이시며 모든 위로의 근원이 되시는 하느님으로서 우리가 어떤 환난을 당하더라도 위로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그와 같이 하느님의 위로를 받는 우리는 온갖 환난을 당하는 다른 사람들을 또한 위로해 줄 수가 있습니다”(2고린 1,3-4).

 

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나?”보다 “어떻게 기도가 나의 영혼을 풍요롭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한다.

 

둘째, 기도는 현재 자신이 있는 장소와 시간 바로 그 순간에 행해져야 한다. 우리는 기도를 지나치게 형식적인 것으로 생각해서 성당이나 방에 앉아 성무일도나 묵주기도를 바치는 것, 영적 독서나 묵상을 하는 것만이 기도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방법 역시 기도의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본당 신부들은 매우 바쁘기 때문에 이처럼 형식을 갖춘 기도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을 필요로 한다. 규칙적이고 형식적인 기도 생활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는 하지만, 실상 기도할 수 있는 기회는 늘 주위에 있는데, 우리가 그것을 놓치는 것이다.

 

신부들은 매일 미사를 어떻게 준비하는가? 강론과 기도 전에 말씀에 집중하기 위해 복음 내용을 묵상하는가? 좀 더 엄밀히 말해, 미사를 정말 기도하며 봉헌하는가, 아니면 단지 기도문을 읽을 뿐인가? 신부가 전례에 너무나 능숙해져서 진정한 개인 기도, 공동 기도의 시간을 가지지 못하면 이는 매우 위험하다. 진실로 하느님과 통교하는 시간을 얼마나 가지는가? 병자를 방문하러 가는 길에 차 안에서 기도하는가? 고통 속에 있는 사람과의 전화 면담 후 그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가? 이러한 순간순간마다, 곧 영성이 스스로 드러날 때, 사제의 교역을 통하여 영성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관상 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에 있는 수도자와는 다르게 본당 신부는 그 영성 생활의 뿌리를 사목 활동에 두어야 한다.

 

그러므로 기도가 요청되는 장소와 시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기도하는 것은 사제 교역의 소명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러다 때때로 좀 더 형식적인 기도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되면 그때 그러한 기도를 하면 된다.

 

마지막으로, 자기에게 알맞은 기도 방법을 선택하여 실천한다. 숲이나 공원을 산책하는 방법, 방안에서 촛불을 켜고 기도하는 방법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그 중에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방법을 택하여 실천하도록 한다. 동료 사제, 친구, 본당 신자 등 함께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도 좋다. 또한 적절한 피정 방법을 찾아 이에 몰입한다.

 

지금까지 말한 것을 반대로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곧 자신의 기도 방법이 자신의 영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과감히 그 방법을 버리고 다른 방법을 찾아 보는 것이다. 우리는 특정한 형식과 방법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 때문에 시간과 에너지를 지나치게 낭비하고 있다. 모든 기도는 훈련을 필요로 하지만, 그 결과가 좌절뿐이라면 이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신호이다.

 

뉴욕 알바니의 하워드 주교는 사제 수품자에게 기도에 관해서 한 강론에서 “자신의 기도 생활을 성찰하는 데 무엇을 위해 기도했는가보다 과연 기도하였는가 하는 질문이 더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우리 신부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영성의 모델이 될 것을 요청 받는다. 기도는 사목 활동을 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따로 기도의 시간을 내신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마태 14,23 참조). 그러나 본당 신부의 영성은 동시에 활동적인 것을 포함한다. 본당 신부에게 기도는 반드시, 우리에게 요청되는 일, 곧 사목과 연결되어야 한다. 사목을 하면서 그 상황에 따라 하는 기도가 교구-본당 사제의 건강한 영성에 출발점이 될 것이다.

 

* 원문:charles M. Wible, “Spirituality and the Parish Priest”, The Priest 56호(2000. 3.), 48-50면, 이준혜 편역.

 

[사목, 2002년 4월호, 찰스 위블(미국 메릴랜드주 하이드 천주교회 보좌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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