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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영화에 대해 그리스도인이 보이는 반응: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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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9-09 ㅣ No.642

[서석희 신부의 영화 속 복음 여행] (16) 영화에 대해 그리스도인이 보이는 반응 -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

참혹한 전쟁터에서 인간 생명의 숭고함 외치다


밀러 대위와 대원들.
 

1. 미국 신학자이자 영화 평론가인 로버트 존스톤은 그의 저서 「영화와 영성(Real Spirituality-theology and film in dialogue)」에서 그리스도인이 영화 속 이미지나 상징적 표현들을 통해 만들어지는 이야기의 의미를 찾다보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신을 드러내시는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그는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영화를 감상하면서 점차적으로 보이는 반응과 태도를 5단계로 구분한다.
 
우선 영화를 보다가 '더 이상 이런 영화를 볼 가치가 없다'며 영화 자체를 거부하는 ①'회피(avoidance)', 영화를 보더라도 조심스럽게 봐야 하며 윤리적이고 신학적 입장에서 영화가 바람직한지 아닌지 판단하면서 봐야 한다는 ②'경계(caution)'에 이어, 그 다음으로 영화를 윤리적이고 신학적 입장에서 보기보다 먼저 영화 자체가 지닌 예술적 입장에서 영화를 존중하며 바라보는 ③'대화(dialogue)'의 태도가 나온다. 이 대화 단계를 지나면 영화가 가진 미학적 특성과 가치를 보다 폭넓게 ④'수용(appropriation)'하게 되는데, 이 시점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영적 시선과 묵상이 이뤄질 때 영화를 통한 ⑤'신적 만남(divine encounter)', '거룩함의 체험', '영적 대화'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이 영화에 대해 '회피→경계→대화→수용→신적 만남'의 단계별로 반응하는 것을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Saving Private Ryan, 1998)를 통해 분석해 보자.
 
집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하는 라이언 일병.
 

2.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치열한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있었던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이 영화는 누가 이기고 지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라기보다는 전쟁이란 참혹한 상황에서 공포에 떨며 벌이는 군인들의 즉흥적이고 본능적 행동, 그 때문에 총 한 번 제대로 쏘지 못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생생한 광경들을 다큐멘터리 기법을 통해 극대화시킨 영화다. 때문에 여느 전쟁영화와는 달리 종횡무진 활약하며 용케도 총알을 잘 피해 다니는 영웅도 없고, 화나게 하는 적군을 화려하게 몰살시키는 통쾌한 장면도 없다. 다만 '애국'과 '충성'이라는 대의명분에 목숨을 걸었던 병사들이 너무도 허망하게 쓰러지는 장면과 참혹한 광경에서 병사들이 공포에 떠는 처참한 장면을 여과 없이 보여줌으로써 '아, 전쟁은 실제 이런 것이구나'를 관객들에게 실감하게 한다.
 
이 영화는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수없이 쓰러져가는 병사들 중 '한 사람의 병사, 라이언 일병'을 구해야 하는 병사 8명의 임무를 기록으로 보여주면서 생명의 가치는 숫자로 계산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여러 사람의 합의에 의해서도 가치가 매겨질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으로 치닫는 가운데 병사들 죽음을 가족들에게 통보해야 하는 미국 행정부는 라이언이라는 성을 가진 세 명의 형제가 며칠 시간차를 두고 차례로 전사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들 라이언 형제들에겐 홀어머니가 있었고,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막내 제임스 라이언은 참전한 상태였다. 3형제의 죽음을 동시에 통보해야 했던 미행정부는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막내인 라이언 일병을 즉시 어머니께 되돌려 보내라는 명령을 군대에 내리게 된다.
 
한편 존 밀러 대위는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맡은 바 임무를 겨우 완성한 다음 지쳐 있을즈음에 군사령부로부터 그로서는 특별하고도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임무를 받게 된다.'한 명을 살리기 위해 여덟 명이 목숨을 거는' 임무였다.
 
하지만 밀러 대위는 대원 6명과 통역병 한 명으로 분대를 구성해 라이언 일병을 구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라이언의 행방을 찾아 위험을 무릅쓰고 적군과 아군이 공존하는 최전방을 뒤지는 과정에서 의외로 라이언 일병을 쉽게 찾는 기쁨도 잠시 라이언과 성이 같은 다른 인물로 밝혀지는 허탈함을 경험할 뿐 아니라 도중에 적군과 전투를 치르는 과정에서 두 대원이 목숨을 잃고 만다.
 
이렇게 라이언 일병 한 명을 구하는 임무 때문에 자신들 동료가 죽어나가는 과정에서 밀러 대위와 부하들은 '과연 라이언 일병 한 명의 생명이 여덟 명의 생명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것인가'에 대해 혼란을 느낀다.
 
하지만 밀러 대위는 부하들을 설득하며 라이언 일병이 있는 곳을 찾아간다. 마침내 밀러 대위와 대원들은 그들이 찾던 제임스 라이언 일병이 라멜 지역이라는 곳의 다리를 사수하기 위해 작전에 투입됐고, 현재는 독일군 사이에 고립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도중에 간헐적 전투를 치르면서 천신만고 끝에 라이언 일병을 찾아낸다.
 
그런데 정작 라이언 일병은 다리를 사수해야 하는 그의 동료들과 끝까지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며 집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하는 딱한 상황이 발생한다. 결국 라이언을 반드시 집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밀러 대위 일행도 함께 독일군과 전투를 벌이다가 밀러 대위를 비롯한 거의 모든 대원들이 죽게 된다. 다행히 다리는 사수했고, 밀러 대위와 대원들이 죽어가면서도 끝까지 엄호했던 라이언 일병은 살아남아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밀러 대위 묘지를 찾은 먼 훗날의 라이언 일병.
 

3. 앞에서 제시한 존스톤의 모델을 근거로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분석해 보자. 어떤 관객들은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첫 전투 장면, 25분이란 시간에서 잔혹한 부상과 시체들이 너무나 생생하게 묘사되었기에 이 영화에 대해 부정적 생각을 갖게 된다.
 
더구나 끔찍한 전투 장면뿐아니라 간간히 튀어나오는 저속한 언어와 욕설은 이 영화를 보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까지 들게 할 수 있다. 어떤 관객들에겐 군인들의 이러한 말투가 과연 저속한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지 모르지만 어떤 이들에겐 영화 속의 언어가 혐오감을 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이런 영화는 내용은 둘째 치고, 봐서는 안 될 영화로 간주된다. 이것이 바로 1)회피의 태도이다. 반면 어떤 관객들은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생생한 묘사의 사실성을 인정하지만 영화가 시작되면서 25분 동안 계속되는 전투 장면은 다소 지나친 것 같다며 2)경계의 태도를 취할 수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 어떤 관객들은 영화의 중심인물로 여겨지는 밀러 대위에 대해선 호감을 느낄 것이다. 그는 마치 외부에서 제자들과 함께 사랑과 자비의 임무를 띠고 들어와 마침내 자신의 생명을 바쳐 한 생명을 구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해하는 것은 영화와 조심스럽게 3)대화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또 굳이 그리스도교와 연결시키지 않더라도 전쟁에 대해, 전쟁이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가에 대해 진정한 대화의 기회를 주기에 이 영화를 괜찮은 영화로 여기는 관객이 있다면, 이것 또한 대화 자세이다.
 
나아가 '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 여덟 명의 생명을 위험에 처하게 할 수 있는가?' 그리고 "한 사람씩 죽일 때마다 고향에서 점점 더 멀어지는 것을 느낀다"는 밀러 대위의 말을 곱씹게 될 때 이 영화에 대한 반응은 좀 더 긍정적이 된다. 즉 이 영화에서 묘사된 밀러 대위의 임무는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을 구하는 것이다. 결국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인간 생명의 소중함과 가족의 유대와 연속성이 갖는 가치이다.

한편 어떤 관객들은 전쟁의 참화 속에 묘사된 인간의 모습을 통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혹은 월남전이나 이라크전 등 전쟁에서 돌아왔지만 전쟁이 혐오스러워 자신들의 끔찍한 체험을 차마 말하지 못하는 참전 용사들의 아픔과 후유증을 이해할 수도 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통해 이러한 휴머니티의 본성을 체험할 수 있다면 이것은 영화를 깊이 4)수용하는 차원이다.
 
마지막으로 "참호 속에는 무신론자가 없다"는 영화의 대사를 통해, 혹은 영화의 전체 내용을 통해 '아흔아홉 마리 양을 두고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선 목자'(마태 18,12)의 심정을 생각할 수 있다면 5)신적 만남이나 영적 대화에 가까이 간 것이다. 물론 영화 속 그들의 희생과 헌신이 신적 만남을 느끼게 하는 경외감과 경이감까지 준다고는 볼 수 없다. 모든 영화에 대해 반응하는 '수용'의 단계 다음에 반드시 '신적 만남'이나 '영적 묵상'에 이르게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인간의 본성이 무엇이기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한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가에 대해 인간 생명의 가치는 인간의 논리와 계산을 초월한 신의 영역임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영적 대화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4. 영화는 2시간 50분이라는 긴 시간 속에서 관객들에게도 여덟명의 병사가 겪은 혼란을 함께 겪게 한다. '병사 한 명을 구하기 위해 병사 8명이 희생되는 것이 과연 옳은가?'에 대한 의문이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이제는 노인이 된 라이언 일병이 가족들을 데리고 자신의 생명을 구해 준 사람들의 무덤을 찾는다. 그는 울면서 자신이 이 사람들의 죽음을 정당화할 수 있을 만큼 훌륭하게 살았는가 하고 묻는다.
 
또 영화는 그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그를 구하려 파견된 사람들 대부분이 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는가를 관객들에게 물으며, 그 대답은 관객들 몫으로 돌리고 있다.

[평화신문, 2012년 9월 9일, 서석희 신부(전주교구, 서강대 영상대학원 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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