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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그리스도교 철학자: 성 대 알베르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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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7-01 ㅣ No.169

[그리스도교 철학자] 성 대 알베르토


중세시대에 비범한 학자로 그 탁월함을 인정받아, ‘보편적 박사’라 부르는 알베르토 성인에게는 늘 ‘위대한(大, Magnus)’이라는 칭호가 따라다닙니다. 그 명성만큼이나 성인의 철학적 사상은 우리에게 여전히 위대한 전거(典據)로 남아있습니다.


여러 분야에 박식했던 위대한 주교학자

1200년 독일 남부 슈바벤 지역, 라우잉겐의 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성 대 알베르토는 1223/9년경에 독일 도미니코수도회에 입회합니다.

그리고 쾰른에서 공부한 뒤에, 파리(1243/44-1248년)와 쾰른(1248-1254년)에서 신학을 가르칩니다. 쾰른에서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를 학생으로 맞아 가르치기도 합니다.

그 뒤에 성인은 독일 도미니코수도회의 관구장(1254-1257년), 레겐스부르크의 주교(1260-1262년), 이어서 교황사절로 일하다가, 다시 쾰른의 교수로 돌아와 리옹 공의회(1274년)의 교부로 활동합니다.

성 대 알베르토는 학자로, 그리고 주교로 오랫동안 많은 활동을 하여 드높은 명성을 지닌 채, 1280년 하느님 안에 영면합니다. 그리고 1622년에 복자품에 오른 뒤 한참 지난 1931년 비오 11세 교황에 의해 성인품에 오르면서, ‘교회학자’ 칭호를 부여받습니다.

우리에게 철학자이자 신학자로, 그리고 당대에는 법률가이자 과학자로 이름을 날리며, 그야말로 여러 분야에 박식했던 위대한 성 알베르토는 70편이 넘는 논문과 저서를 남겼습니다. 그 저술의 양이 엄청나, 「동물학」(De Animalibus)과 「식물학」(De Plantis)에서부터 연금술과 관련된 「광물론」(De Mineralibus)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거의 모든 내용을 학문적으로 다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가운데 우리에게 중요한 저술들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그리스도교적 이해를 도우려고 행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에 대한 「주해집」들일 것입니다. 더불어 논리학과 물리학, 수학과 형이상학적 저술들만이 아니라, 신학적 저술들도 다수 포함됩니다.


신적 조명에 따른 형이상학

성 알베르토는 주로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이며,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스콜라철학을 준비시키는 성인으로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알베르토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전집을 주해하는 것에서는 그렇게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알베르토가 신학과 철학을 하는 데서는 오히려 플라톤과 성 아우구스티노의 전통에 가깝다는 사실입니다. 신의 조명에 따른 형이상학이 그렇습니다.

알베르토는 신플라톤주의의 유출설(최고의 일자[一者]에서 만물이 나온 것을 지칭하는 형이상학 이론으로 플로티누스가 대표적인 학자이다. - 필자 주)에 대한 사상을 분명히 발전시켜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곧 “신은 순수한 빛이시며, 빛들의 빛이시기에, 그 빛으로부터 모든 피조물이 발산됩니다.”라는 알베르토의 주장에서, 첫 번째 발산이 ‘보편적 존재’의 창조를 의미하는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이러한 발산이 단계적으로 정신적 존재를 넘어 질료적인 것에까지 내려가고 있음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우선 질료적 세계에서 알베르토에게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형상론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모든 사물은 질료와 형상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제1질료는 순수한 가능태가 아니라, 이미 첫 번째 실재로 형상이 그 안에 가능태로 놓여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는 알베르토의 사유가 아리스토텔레스(아리스토텔레스는 형상이 실재로 있는 것이 아니라, 개체화된 사물 안에 있다고 생각했다. - 필자 주)적이기보다는 플라톤적인 것이며,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 두 사람의 사유를 잘 연결하고 있음을 엿보게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을 조화시키려는 알베르토의 시도는 인간의 영혼에 대한 개념화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곧 플라톤은 영혼을 “인간의 육체를 움직이는 영적 실체”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육체의 형상”으로 그 의미를 규정하는데, 이를 알베르토는 결코 모순적이라 보지 않고, 두 정의가 영혼의 두 가지 상이한 측면을 제시한다고 보면서, “영혼은 그 자체에 관해서 플라톤의 의견과 일치하지만, 영혼이 육체를 움직이는 것은 육체의 형상으로서의 영혼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의견에 동의할 수 있다.”고 종합합니다.


‘신(神) 인식’에 대하여

알베르토는 철학과 신학을 이미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었습니다. 신학과 철학을 구분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이유는 철학과 신학이 의미 규정에서 다르다는 것을 제시하는 것을 통하여, 더 이상 신학의 보조학문으로서 철학이 아니라, 이론 학문으로 철학을 신학으로부터 분리하고, 철학자가 연구할 분야를 분명하게 특징지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하여 마치 모든 것을 신앙을 통하여 이해할 수 있을 것처럼 이성의 범위를 넘어 사유했던 당시의 철학적 사조에 경종을 울리고, 이성의 범위를 한정하려는 시도가 엿보입니다.

그리고 물론 이러한 이성의 한계 지음은 철학적 사유를 발전시켜 가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이제 알베르토는 그렇게 구분한 철학만을 통하여 ‘과연 신을 인식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던질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자연 이성으로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다고 긍정합니다.

그러나 ‘신은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 대답은 단지 규정하지 않는 방식으로만 인식이 가능하다고 제한합니다. 이는 곧 모든 범주적 한계 규정의 부정(否定)을 통하여, 다시 말해, 오직 불명확한 개념들에 따른 인식을 통하여서만 신에 대하여 말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부정신학의 문제를 다시 마주하게 됩니다. 또한 우리가 신을 절대적으로 개념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유비적 개념들을 통해서 신에 대한 인식을 해석할 수 있음을 인정하게 됩니다.


신(神) 존재 증명

‘신의 존재가 과연 증명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알베르토의 생각은 넓은 의미와 좁은 의미로 구분이 됩니다. 넓은 의미로 근거들을 제시하고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좁은 의미에서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고, 오직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을 통하여 부정적으로만 증명이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렇게 부정에 대한 불가능성을 통하여 알베르토는 신 존재에 대한 긍정을 요구합니다.

성 알베르토의 철학이 자신의 제자였던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만큼 독창적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정신사적인 면에서 그 위대한 영향력은 성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이어져,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플라톤과 성 아우구스티노에 의존하던 그리스도교 사상의 전통을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는 그리스도교 사유에로 전환시킬 수 있었던 것에서 그 의의를 충분히 찾아볼 수 있겠습니다.

* 허석훈 루카 - 서울대교구 신부. 1999년 사제품을 받고, 독일 뮌헨 예수회철학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교구 통합사목연구소 상임연구원을 지내고 지금 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있다.

[경향잡지, 2013년 6월호, 허석훈 루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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