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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봉헌 생활의 해, 완전한 사랑26: 원죄 없으신 마리아 교육 선교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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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12-20 ㅣ No.553

[봉헌 생활의 해 - 완전한 사랑] (26) 원죄 없으신 마리아 교육 선교 수녀회


마른 아이들에게 한결같은 사랑 쏟아



수녀님~ 저도 같이 있으면 안 돼요?”

4일 서울 정릉로 원죄 없으신 마리아 교육 선교 수녀원.

민지(가명, 18세)가 강명옥 수녀의 수도복 자락을 잡고 계단을 내려왔다.

“안 돼, 민지야. 지금 수업 시간이잖아. 수녀님은 손님이랑 이야기 나눠야 하니까 올라가 있어. 알았지?”

“치이….”

입을 삐죽 내민 민지가 인사를 꾸벅 하고는 계단을 올라갔다. 낯선 손님의 방문에 엄마 옆에 있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는 어린아이처럼 민지는 수녀에게 투정을 부렸다.

“아이고, 죄송해요. 내려오다가 민지를 만났는데 같이 있고 싶어 해서 1층까지 함께 왔어요.”

강명옥 수녀가 말을 마치자마자 계단 쪽을 한번 쳐다봤다. 아이를 애써 떨어뜨려 놓고 걱정하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수녀원 3층의 특별한 학교

원죄 없으신 마리아 교육 선교 수녀원에는 7명의 청소년이 산다. 수녀원 3층이 아이들의 학교이자 기숙사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에 수줍은 미소를 머금은 아이들이 사실은 저마다 마음에 상처를 하나씩 간직하고 있단다. 말 못할 사정으로 가정과 학교의 울타리에서 나오게 된 청소년이다.

“밖에서는 우리 아이들을 보고 ‘위기 청소년’이라고 부르지만, 저는 이 말이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위기 상황은 어른들이 만든 건데 왜 아이들이 위기 청소년이라고 불려야겠어요?”

강명옥 수녀는 가정과 학교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한 아이들이 그 이유를 자신에게로 돌리는 게 마음 아프다고 했다. 그래서 수녀들이 가장 신경을 쓰는 것도 아이들의 정서 안정과 자존감을 심어주는 교육이다.

수녀회가 운영하는 자오나학교(교장 강명옥 수녀)는 학교 밖 청소년, 특히 미혼모 청소년을 위해 지난해 10월 수녀회가 설립한 기숙형 대안학교다. ‘자오나’는 ‘자캐오가 오른 나무’를 줄인 것으로, 성경 속에 등장하는 키 작은 자캐오가 나무에 올라 예수님을 만난 일화에서 따왔다.

중ㆍ고등학생 나이의 아이들은 수녀원에서 함께 먹고 자며 교육을 받는다. 책 속의 지식을 머리에 집어넣는 교육이 아니라 한 명의 건강한 사회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치는 교육이다. 강 수녀는 “비인가 학교여서 정식 졸업장을 주지는 못하지만, 검정고시를 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아이들 각자의 상황과 눈높이에 맞춰 맞춤형 수업을 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우리한테 왜 잘해줘요?”

각자 다른 환경에서 지내던 아이들이 한곳에 모이다 보니 처음에는 서로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경찰서나 보육시설을 통해서 이곳에 오게 된 아이들은 수녀들에게 반항도 많이 했다. “우리한테 왜 이렇게 잘 해주냐”며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봤다.

지난 8월 자오나학교에 들어온 정윤(가명, 18)이도 수녀들에게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복잡한 가정사를 겪다 보니 어른을 잘 믿지 못했어요. 천주교 신자도 아니어서 수녀님들과 함께 있는 게 어색했죠.”

하지만 한결같이 자신을 믿어주고 보살펴주는 수녀들의 모습에 정윤이도 점점 마음을 열게 됐다.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다 보니 또래 친구들과도 어울릴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자오나학교의 청소년 7명 중 2명은 아이를 키운다. 엄마가 수업 중일 때는 수녀와 자원봉사자들이 아이를 대신 봐준다. 기숙사의 군기반장은 사감 김지연 수녀. 공동체에 질서가 유지되도록 가끔은 악역도 담당한다.

“아이들이 자립할 수 있게 돕는 게 저희의 역할이잖아요. 잔소리하지 않아도 설거지와 청소, 육아를 제대로 해낼 수 있게 가르치는 거죠. 그러기 위해서 가끔 소리도 지르고 혼도 낸답니다.” 김 수녀가 말했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들과 함께 살다 보니 웃고 지낼 수만은 없다. 때로는 울고, 떼쓰고, 화도 내며 아이들은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운다.

수녀들은 온종일 아이들과 함께 지내며 애정을 쏟는다. 가정과 학교의 울타리에서 나온 아이들에게 수녀들은 든든한 울타리다.

수녀들은 말한다. “아이들에게 주고 싶은 거요? 단 한 가지예요. 바로 ‘사랑’입니다.”


원죄 없으신 마리아 교육 선교 수녀회는

원죄 없으신 마리아 교육 선교 수녀회는 스페인의 까르멘 살레스(1848~1911, 사진) 성녀가 1892년 설립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지방 빅에서 태어난 성녀는 산업혁명과 내란으로 혼란스러웠던 당시 스페인 사회에서 교육의 중요성에 눈을 떴다. 성녀는 가난과 전염병으로 교육 시스템이 붕괴된 시기에 교육사도직에 투신하고자 1892년 원죄 없으신 마리아를 교육 모델로 수녀회를 세웠다.

성녀는 어린이와 청소년 교육에 헌신하며 일생 동안 13개의 학교를 세우고 1911년 7월 25일 선종했다. “교육은 사랑”이라고 말한 성녀의 가르침에 따라 수녀회는 ‘교육’뿐 아니라 아이들을 사랑으로 ‘양육’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1984년 진출해 유치원과 여대생 기숙사를 운영해 왔으며, 2012년 까르멘 수녀의 시성을 계기로 수도회의 카리스마를 심화시키기 위해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사도직에 뛰어들었다. 청소년 중에서도 특히 미혼모 청소년을 이 시대 가장 소외된 이들로 식별하고, 지난해 10월 미혼모 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를 개교해 운영하고 있다.

원죄 없으신 마리아 교육선교 수녀회는 국내에서 수녀 20명이 활동하고 있으며, 전 세계 17개국에서 사도직 활동을 하고 있다.

[평화신문, 2015년 12월 20일,
글ㆍ사진=김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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