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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뜨겁게 만나다: 소노 아야코와 알폰스 데에켄 신부의 먼 길 떠나는 날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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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7-01 ㅣ No.170

[뜨겁게 만나다] 삶의 숙제를 푸는 길잡이

소노 아야코와 알폰스 데에켄 신부 「먼 길 떠나는 날 아침에」


초등학교 5학년 때 장티푸스로 몇 달을 앓았다. 전염병이라 마을 사람들이 불안과 긴장 속에 소문에 귀를 세우고 있었다. 그런 참에, 누군가가 “연순이가 죽었대.” 하는 바람에 선생님들이 죄달려오시고 마을 어른들도 속속 모여들었다. 유난히 나를 예뻐하시던 어머니 친구분은 “아이고, 연순아!” 하시며 대문귀서부터 눈물바람이셨다.

곧 이웃사촌 오빠가 벌인 만우절의 해프닝임이 밝혀지자 집안이 술렁이고 음식상이 차려지는 낌새가 있더니, “이제 연순이는 오래 살 겁니다.” 하면서 손님들이 돌아가는 것이었다. 바람이 든다고 내가 있는 방문은 열어보지 않고 나 들으란 듯 웃음기가 밴 목청을 돋우셨다. 무슨 주인공이 된 것처럼 기분이 썩 괜찮았다.


“서른둘이 천명”이라는 말

봄빛이 날로 따사로웠지만 나는 아직 마당에 내려서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회복기를 견디고 있었다.

희한하게도 살갗이 허물을 벗었다. 그날도 흰 습자지 같은 그것을 될수록 크게 벗겨서 거기에 난 실금과 털구멍을 밝은 쪽에 비춰보며 시간을 죽이는데, 밖에 스님이 오신 것 같았다. 어머니와 두런두런하더니 스님이 “막내 여식은 서른둘이 천명입니다.” 하시는 게 아닌가.

번개가 쳤다. ‘서른둘! 무척 오래 사는구나, 실컷 사는구나, 심심해서 어떡하지?’ 하고 생각했다. 열 살배기에게 서른둘은 까마득하게 멀어서 보이지도 않는 허공이었다.

그럼에도 그때부터 죽음이라는 것이 늘 나와 함께 있는 것을 느꼈고 그것을 관망하게 되었던 것 같다. 잦은 병치레에도 시간의 속도대로 나이를 먹고 결혼을 하고 남편의 인도로 영세를 했고 연년생으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1979년 나이 서른에 자궁암이 왔다. 초진한 의사의 오진과 처방으로 시간을 끄는 동안 쑥쑥 자라버린 그것과 4년을 밀고 달래면서 더불어 살았다. 의료진이 항암제가 듣지 않는 영문을 몰라 당황하는 가운데 고통은 점점 심해지고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져서 더 이상 치료를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길 떠날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딱히 도움 받을 데가 없었다. 지방과 서울을 오르내리며 입퇴원을 반복해야 했고 본당신부님마저 개인적인 고통에 휘말려 계셨다.

출발은 임박한데 준비가 없어 당황스럽고 초조했지만 남편에게조차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했다. 희망을 놓아버린다고 낙담할 것 같아서였다. 집안을 정리하고 버릴 것은 다 버렸다.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을 나서면서 현관에서 내 슬리퍼마저 쓰레기통에 던졌다.


‘주님 앞에 목욕이라도 하고 가야지’

단호하게 결심을 하고 입원실에 들어왔다고 생각했으나 여전히 허둥대고 있었다. 그 상태로는 하느님 뵈올 면목도 염치도 없어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엉망진창인 나를 그나마 좀 다듬어야지, 나의 주인이신 주님 앞에 목욕이라도 하고 가야지.’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내었다. 기억이 있는 처음부터 그러니까 네 살 즈음부터 연도별로 머릿속에 사람과 상황을 떠올리고 그 대상에 따라 감사와 용서와 화해의 묵주기도를 5단씩 올리기로 한 것이다. 나는 그 일을 ‘작업’이라 이름하고 누락되는 것이 없도록 나름 꼼꼼하고 진지하게 짚어나갔다.

어린 시절은 쉽게 지나가더니 머리가 클수록 복잡하고 건수도 많아졌다. 용서와 상처가, 화해와 원망이 엎치락뒤치락하는 가운데 마음의 통증을 이겨내기가 무척 힘이 들었다. 어떤 기억에는 며칠을 매달리기도 했다. 마음이 너무 아파서 울고 또 울었다.


‘주님! 살려주세요!’ 그리고 책을 만나다

그러던 어느 날, 오늘 밤을 넘기기 어렵겠다는 의료진의 귀엣말을 듣고 말았다. 순간 내 안에 백열등이 켜지고 시간의 엄중함이 가슴을 쳤다. 나는 필사적이 되었다. ‘주님! 살려주세요!’ 그 한마디 묵언을 외치고 또 외쳤다. 그리고 아침이 왔다. 그로부터 죽음의 준비는 삶의 숙제가 되었다.

수년 후에 일본의 여류 소설가 ‘소노 아야코’와 독일 태생으로 일본에 귀화한 가톨릭 사제이며 철학자인 ‘알폰스 데에켄’의 「먼 길 떠나는 날 아침에」를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은 두 사람이 죽음과 죽음의 준비를 주제로 하여 3년에 걸쳐 주고받은 편지를 묶은 것이다.

진작 만났더라면 하는 아쉬움으로 밑줄을 쳐가며 연거푸 읽었다. 뭐랄까, 내게 꼭 필요한, 정말 고대하던, 내게 꼭 맡는 참고서라고나 할까. 무겁고 두렵고 어두운 주제를 쉽고 친절하고 자상하게 이끌어서 희망으로 가득 차게 해주었다.

그만큼 밝고 가벼운 마음으로 죽음과 사귈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의 삶이 단순한 동물적인 죽음으로 끝난다면 삶도 사랑도 믿음까지도 얼마나 허망하겠는가.

소노 아야코는 “만약 삶의 보람이란 말이 존재한다면, 죽음의 보람이란 말도 존재할 것이고, 그 두 말이 똑같은 뜻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 놀라게 됩니다.”라고 말하는가 하면, 알폰스 데에켄 신부님은 “죽음은 인생에서 오직 하나의 절대적인 확실한 현실이며 사람이 사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의 인생을 애처롭게 여기며 남을 사랑하는 일의 귀중함을 깨닫게 된다.”고 말한다.

* 정연순 에우프라시아 - 국제 펜클럽과 가톨릭문인회 회원으로, 한양수필회 회장이다. 수필집 「살다보면 가끔은 부끄럽다」, 시집 「하느님 옷 한 벌 주시면 안 될까요」, 기도서 「하느님, 우리 아이를 돌보아주세요」, 「부부를 위한 십자가의 길」 등이 있다.

[경향잡지, 2013년 6월호, 글 정연순 · 그림 박순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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