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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신앙으로 현대문화읽기: 카카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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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11-18 ㅣ No.766

[신앙으로 현대 문화 읽기] 카카오톡

 

손바닥 안에서 이뤄지는 ‘톡’

 

 

처음엔 꽤나 거슬리더니, 이제는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들리는 ‘카톡~’ 하는 푸시알람에 그냥 무덤덤해진지 오래다.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는 “그거 한 번 검색해봐”라는 말을 간단히 “Google it! ”(구글해 봐) 이렇게 표현한다고 한다. 비슷한 언어용법이 한국에도 있다. 우리 또 “이야기 하자. 연락 좀 하고 살자” 등 이런 말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기 전에, 요즘은 그냥 “나중에 톡하자~”(나중에 카카오톡으로 이야기하자) 이렇게 (새롭게)간단히 말해버리고 마는 경우가 많다. 일상 조어법을 변화시킬 정도로 즉석 메시지 교환 앱(Instant messaging app) 카카오톡의 위력은 정밀하고 광대하다. 카톡은 이제 우리 삶 매우 깊숙한 층위에 터를 잡았다.

2013년 기준으로 한국인 가운데 약 73퍼센트가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고, 한국인 스마트폰 사용자중 무려 93퍼센트가 카카오톡을 이용한다고 한다. 2012년 한국인 카톡 사용자들은 하루 약 53분을 카톡 사용에 할애했다는 통계도 있다. “그거 그냥 한국에서만 인기 있는 것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카카오톡 측의 추산에 의하면, 2013년 기준 전 세계 230개국 1억 3천만명이 열다섯 개의 언어로 카톡을 이용하고 있고, 이들이 카톡으로 교환하는 메시지들이 하루에 무려 55억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카톡을 통해 ‘소통’과 ‘정’(情)만이 오고가는 것은 아니다. 카톡이 있는 곳에는 자본과 돈이 모인다. 2013년 카톡이 벌어들인 수익이 약 200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게 그냥 모두 운이 좋아서 생긴 결과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무려) 네 명의 개발자들이 식음을 전폐하고 어렵사리 세상에 카톡을 내놓은 것이 2010년 3월이었는데, 이는 인터넷 공룡 구글이 한국에 메신저 서비스를 선보인지 일 년이나 지난 뒤였다. 누가 봐도 구글에 내민 카톡의 도전장은 매우 무모한 것이었으나, 이게 어찌된 일인지 카톡은 당당히(?) 구글을 따돌리고 ‘국민메신저’의 왕좌를 차지한다. 여러 요인들이 있을 수 있으나 많은 사람들의 평을 종합해보면, 카톡의 승리는 ‘친구추가’의 과정을 매우 간단히 처리한-어떤 의미에서는 평범한 발상의 전환에 기인한 바 크다.

구글 메신저에 친구를 추가하려면 사용자는 일일이 친구의 이름을 등록해야 했다. 성미 급한 한국인에게 이게 통할 리 있겠는가… 구글과 달리, 카카오톡은 스마트폰에 카톡 앱을 설치하는 순간 전화기에 저장되어 있던 친구들의 목록을 자동으로 불러오도록 설계되었다. 그래서였을까? 스마트폰에 카톡을 설치하자마자 순식간에 등장하는 100명 이상의 친구와 ‘제안된 친구’를 보며 사람들은 아마도 소통을 위한 충분한 흥과 동기를 부여받았나보다. 많은 사용자들이 직관적으로 느끼는 바이지만, 카카오톡은 단순한 톡(Talk)이 아니다. 주로 ‘입’을 통해 이루어지던 ‘톡’이 손바닥 안에서 이루어진다. 카톡과 같은 장치들은 사람이 미디어를 ‘품는’ 국면의 새 장을 연다. 이름하여, 미디어의 일상화! 다음 호에서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자.

* 성기헌 신부(서울 성모병원 영성부장 겸 가톨릭대 성의교정 교수) - 1
999년 서울대교구 사제로 서품됐으며 미국 위스콘신-메디슨대학교에서 ‘매스컴과 종교의 관계 연구’로 신문방송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가톨릭신문, 2014년 11월 16일, 성기헌 신부(서울 성모병원 영성부장 겸 가톨릭대 성의교정 교수)]

 

 

[신앙으로 현대 문화 읽기] 카카오톡, 뉴미디어

 

더 이상 단순 매개체가 아니다

 

 

카카오톡의 ‘톡’(talk)은 그저 단순한 톡이 아니다. 카카오톡이 설치된 스마트폰으로 사용자들은 시간을 보내는데 필요한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다.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에는 항상 ‘무엇으로’ 커뮤니케이션할 것인가의 문제가 따라온다. 우린 다른 사람과 문자를 통해 커뮤니케이션할 수 도 있고, 소리언어를 통해 커뮤니케이션할 수도 있다. 그뿐인가? 음악, 사진, 영상, 그림-사람이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무엇’ (신호들)의 종류는 끝이 없다.

카카오톡은, 바로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에 필요한) 대부분의 신호의 종류를 지원한다. 사람은 많은 시간 홀로 있게 되는데, 이때 역시 카카오톡이 사용된다. 수많은 종류의 게임이 카카오톡을 통해 유통되고, 게임 버튼을 재빨리 눌러대며 우린 혼자 있는 시간을 보낸다. 커뮤니케이션에 필요한 다양한 도구들과 홀로 있는 시간에 찾아오는 외로움을 쫓아버릴 놀잇거리들-때론 이런 것들이 사람이 절실하게 찾게 되는 장치들이며, 간단히 말해 바로 그러한 장치와 기능들이 곧 카카오톡이다. 이런 강력한 생활의 도구가 스마트폰과 결합되어 이제 카카오톡은, 아니 스마트폰은 우리의 손 한자리를 확고히 차지하게 되었다.

손바닥에 들어앉을 정도로 사람과 밀착된 미디어, 바로 그 밀착성-그게 또한 뉴미디어의 속성이기도 하다. 과거의 미디어, 예컨대 티브이를 생각해 보자. 우린 그것들과 거리를 두고 떨어져 앉아 있고, 그것들 또한 저 멀리에 꽤나 큰 몸집으로 중량감 있게 좌정(?)해 있다. 그러던 미디어기기들이 언제부턴가 슬금슬금 사람 곁으로 다가오기 시작하더니 이젠 (스마트폰처럼) 아예 사람 손바닥 안에 들어앉아 버렸다. 이런 첨단의 기기들은 여전히 바깥세상과 우리를 ‘매개’ (mediate)하는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지만 그 기능이 전부는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제 첨단의 뉴미디어는 인간의 부분적 연장이자 외화된 두뇌이며, 우리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고도로 진화한 미디어는 이제 ‘매개체’ 이상으로 사람의 일부가 된 존재들이다. 뉴미디어의 ‘뉴’에는 바로 이러한 미디어의 존재론에 대해 사람들이 느끼는 경이와 혼돈이 포함되어 있다. ‘뉴’미디어란 말은 미디어의 발생순서 이상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제 ‘미디어’라는 말을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할 때가 온 듯하다. 미디어라는 말은 매개체라는 의미이며, 매개체는 필연적으로 나와 매개되는 것 사이에, 즉 나의 바깥에 존재한다. 그런데, 이제 미디어가 사실상 사람의 연장(extension)이거나 일부와 다름없다면 어찌할 것인가. 뉴미디어의 속성에 대해 생각할수록, 우리가 현재 미디어라 지칭하는 것들에 대해 새로운 용어가 필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아이패드는 그냥 아이패드일 뿐이라는 스티브 잡스의 말이 떠오른다. [가톨릭신문, 2014년 12월 14일, 성기헌 신부(서울 성모병원 영성부장 겸 가톨릭대 성의교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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