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 (금)
(백) 부활 제6주간 금요일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강론자료

2016-06-14.....연중 제11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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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6-06-14 ㅣ No.2082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 짝수 해

1열왕기 21,17-29               마태오 5,43-48

2016. 6. 14. 이태원

주제 : 마음을 돌린다는 것의 힘

예언자들의 선언이나, 임금들의 행동을 벌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전하는 구약성경을 읽으면서, 하느님을 아주 무섭게 평가하는 소리가 있습니다. 신약에 예수님을 통해서 드러난 하느님을 자비의 하느님이라고 말하면서, 구약의 하느님을 징벌과 심판의 하느님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말해도 괜찮을까요? 사람들이 하는 이 판단이 옳으려면, 행동은 같고 하느님이 적용하는 기준이 달라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판단이 잘못됐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려면, 나에게 자비를 보여주시는 하느님과 단호함을 넘어 징벌을 드러내시는 하느님을 향해서 내가 일관된 삶을 살았다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이와는 달리 내가 과거에는 악하게 살아서 혼날만한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회개하여 선하게 사는 사람이라고 할 때, 내 삶이 달라졌으니 당연히 나에 대한 하느님의 판단도 달라진다면, 그때는 하느님이 잘못된 것이 아니고 내가 드러내는 삶의 자세가 달라졌다고 해야 합니다.

 

사람이 하느님의 앞에서 일관성이 있는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이론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른데, 그에 대해서 나에게 느껴지는 하느님을 잘못된 눈으로 보는 사람이 얼마나 옳으냐는 것입니다. 질문하기도 쉽지 않지만 대답도 어렵습니다.

 

아합은 임금으로서 자기 가정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기에 파멸의 길을 갑니다. 그런데 심판의 순간이 되었을 때, 그가 자신을 낮추었다는 소리에 하느님께서 벌을 내리시는 것을 미루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하느님을 어떻게 봐야하느냐는 것입니다.

 

산상설교의 한 부분을 읽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늘 아는 대로 살지는 말 것을 말씀하십니다. 원수를 미워하는 것은 우리가 가진 일종의 권리(!)인데, 예수님은 미워하는 대신 그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얼마나 가능한 소리이겠습니까?

 

선행은 내가 해야 하는 일이고, 심판을 실행하고 벌을 주는 것은 내가 할 일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로 남겨두어야 한다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기는 하지만, 사람이 그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세상의 모습은 달라집니다. 하느님을 왜곡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태도로 대하면서,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모습이 세상에 드러나게 하는데, 나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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