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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부활 제5주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수도 ㅣ 봉헌생활

봉헌 생활의 해, 완전한 사랑24: 선한 목자 예수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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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11-22 ㅣ No.550

[봉헌 생활의 해 - 완전한 사랑] (24) 선한 목자 예수 수녀회


본당 사목의 틈새 살뜰히 챙기는 ‘엄마 수녀들’

 


- 녹번동성당에서 이 크리스티나 수녀(가운데), 성 율리아나 수녀(왼쪽)가 본당 신자들과 이야기 나누고 있다.


“루치아, 어서 와! 요즘 왜 이렇게 안 보였어?”

바쁘다는 핑계로 한주 한주 미루다가 나간 주일 미사. 어디선가 반가운 목소리가 들린다. “왜 이렇게 오랜만이야? 통 안 보여서 걱정했네….”

쭈뼛거리며 성당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반색을 하며 맞아주는 사람이 있다. 머릿수건과 수도복이라는 낯선 복장을 하고도 그 누구보다 친근하게 신자들을 대하는 사람. 바로 본당 수녀들이다.

본당에 수녀를 파견하는 수도회야 많지만, ‘본당 사도직’에 전임하는 수녀회는 유일하다. ‘파스토렐레’(Pastorelle), 즉 ‘여성 목자’를 수도회의 카리스마로 삼고 있는 선한 목자 예수 수녀회(위임구장 안복녀 수녀)다.


수녀님, 수녀님, 우리 수녀님!

“눈빛만 보면 알 수 있어요. 마음이 아픈 사람을 보면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게 있거든요.”

10월 30일 서울 길음동 본원에서 만난 수녀들은 세상의 영혼을 돌보는 데 능숙해 보였다. 머리가 아닌 몸으로 부딪히면서 배운 것이라고 했다.

안복녀 수녀는 “본당에서 미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신자분들과 인사를 나눌 때였어요. 청년 한 명이 머쓱하게 제 앞을 지나가는데 평소랑 뭔가 다르더라고요”라며 당시를 회고했다.

- 서울 녹번동성당에서 이 크리스티나 수녀가 노인대학 어르신들과 함께 그룹 활동을 하고 있다.


무엇인가 말하고 싶은 게 있는데 망설인다는 느낌을 받은 안 수녀는 “차 한잔 하고 갈래?”라고 청년에게 물었다. 청년은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네, 수녀님!”이라며 달려왔다. 마음속의 고민을 털어놓고 싶었지만 먼저 다가갈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신자 중에서 우선적 관심이 필요한 이를 알아보는 데 수녀들은 예민한 감각을 발휘한다. 김정화 수녀는 “본당에서 복사단을 지도하다 보면 아이들의 가정사까지 알게 되는데, 복사단 형제의 엄마가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가정방문을 간 적이 있다”며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지만 몸이 불편한 자매님을 자주 찾아가 기도를 해주었고,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에게는 조금이나마 빈자리를 채워주기 위해 간식이라도 손수 챙겨주었다”고 말했다.

김 수녀의 행동은 본당 공동체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켰다. 본당 수녀가 직접 가정 방문을 가서 기도를 해주고 아이들을 챙기기 시작하자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도 가정 방문을 가기 시작한 것이다. 기도부터 시작해서 아이들 반찬이며 집 안 청소까지 하며 한 가정을 보살피는 것을 보면서 김 수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뿌듯함을 느꼈다고 한다.

김 수녀는 “신자들을 돌보면서 그중에서도 소외되고 어려운 이들을 발견하는 것, 그리고 이들에 대한 관심이 공동체 전체에 퍼지게 하는 것이 저희가 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 선한 목자 예수 수녀회 수녀가 노인대학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본당 맞춤형 수녀들

어린이부터 노인, 가난한 이부터 부유한 이, 마음이나 몸의 상처가 있는 이들…. 수녀들은 본당에서 직업도 나이도 환경도 제각각인 신자들을 만난다. 이들과 어떻게 어울릴 수 있는 걸까. 수녀들의 대답은 간단했다.

“수녀원에서부터 훈련하는 거죠. 선배, 후배 수녀님들과 지지고 볶고 살면서요.”

규모가 큰 수도회의 경우 지원기, 청원기, 유기서원기 등 수련 단계의 수녀들끼리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한 수녀원에서 지낸다지만 정작 선배ㆍ후배 수녀들과 부대끼며 지낼 일은 많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선한 목자 예수 수녀회는 수련 단계와 상관없이 공동체가 한데 어울려 생활한다. 입회하자마자 생활 전선에도 곧장 투입된다.

김정화 수녀는 “수녀원에 들어와서 3개월 만에 수녀원 전체의 식사를 맡았다”며 “일주일 치 식단을 정하는 것부터 음식재료를 사고 요리 당번을 정하는 것까지 맡게 돼 애먹었던 기억이 난다”고 회고했다. 수녀회의 수련 방법은 본당 신자들이 어떻게 사는지 직접 피부로 느끼게 해주는 데 있다. 쌀이며 채소며 음식재료의 가격은 얼마인지, 한 가정의 살림을 하는 데 얼마나 많은 수고가 필요한지 수녀들은 막내 수녀 때부터 몸으로 직접 체험한다. 그래서인지 젊은 수녀들도 본당에 나가면 어르신 신자에게까지 “엄마 같다”는 말을 듣는다.

“다른 수녀회의 경우 본당을 꺼리는 수녀들이 많아요. 하지만 저희에게 본당은 ‘종합선물세트’ 같아요.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기쁨과 슬픔을 모두 느낄 수 있으니까요. 수도회가 존재하는 한 저희는 본당을 지킬 것입니다.”

본당에서 철수하는 수녀회가 많다. 성소자가 줄어드는 마당에 본당 사도직을 고수하기가 어려울 터다. 하지만 선한 목자 예수 수녀회 수녀들은 ‘세상 끝날까지 본당을 지키겠다’고 한다. 수녀들이 있어 신자들의 마음이 든든해진다.


선한 목자 예수 수녀회

선한 목자 예수 수녀회는 1938년 이탈리아에서 복자 야고보 알베리오네(1884~1971) 신부가 창립한 수도회로 성바오로 수도회, 성바오로딸 수도회, 스승 예수의 제자 수녀회, 사도의 모후 수녀회와 함께 알베리오네 신부의 정신을 따르는 바오로 가족이다.

알베리오네 신부는 사제생활 초기 본당에서 사제를 도와 그리스도의 사목적 직무에 협력할 본당 수녀들의 필요성을 느꼈다. 이에 “본당에서 어머니요, 자매요, 모든 이의 친구로서 빛과 기쁨의 원천”이 될 것을 바라며 선한 목자 예수 수녀회를 창립했다.

수녀회는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맡겨진 양들을 예수님께 인도하고 돌보는 것을 카리스마로 한다. ‘전 세계가 본당’이라는 정신으로 시대와 지역의 필요에 따라 복음화, 교리, 전례봉사, 사목 협력자 양성 등에 투신하고 있다.

현재 남미, 아프리카, 유럽 등 21개국에 진출해있으며 수녀 50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한국에는 1983년에 들어와 서울 · 춘천 · 안동교구에서 사도직을 수행하고 있다. 한국은 현재 위임구장이 총장의 권리를 일부 위임받아 공동체를 운영하는 위임구로 지정돼 있다. 위임구는 지부의 전 단계다.

국내에서는 전체 회원 중 절반 이상이 본당 사도직을 맡고 있다. 최근에는 이주노동자, 결혼이주여성 등 소외된 이웃을 돌보는 데도 힘을 쏟고 있다.

[평화신문, 2015년 11월 22일, 글 · 사진=김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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