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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유럽 수도원 기행: 독일 플랑슈테텐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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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11-13 ㅣ No.549

[유럽 수도원 기행] 독일 플랑슈테텐 수도원



유난히 더운 여름을 보냈다. 한국에서 아프리카보다 덥다느니 호들갑을 떠는 모습이 가소로웠다. 마음만 먹으면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언제라도 맞을 수 있지 않는가. 하루종일 달구어진 방에서 선풍기조차 없이 지내야 하는 유학생의 고충을 그들이 알기나 할까. 학기말 시험공부를 하다가 본원에서 연락을 받았다. 방학 중에 며칠 말미를 내어 플랑슈테텐(Plankstetten) 수도원을 다녀와서 글을 써달라는 짧막한 문자 메시지였다. 방학을 하고 뮌스터슈바르작 수도원으로 돌아오자마자 방문 요청 이메일을 보냈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결국 일주일이 지나도 답장은 오지 않았다. 방문하기로 마음 먹은 날이 당장 열흘 앞인데 무작정 찾아가야 하나 걱정하는데, 옆에서 한 형제가 그런다. 플랑슈테텐 수도원의 보니파치우스 부원장 신부가 뮌스터슈바르작 수도원에서 제빵 마이스터 실습을 하느라 몇 년간 같이 살아서 서로 잘 아는 사이니까 소개시켜 주겠다고. 이메일을 보내니 몇 시간도 안 되어 답이 온다. 역시나 한 다리 건너더라도 인연이 있는 사람들을 통하니까 문제가 금세 해결되는구나.

 

 

맥주로 대동단결, 바이에른 연합회

1박 2일간의 짧은 방문이라 수도원 역사나 분위기는 자세히 알아보지 못했다. 대신 독일에서 생태와 친환경 농·목축업으로 유명한 수도원인만큼, 이 부분을 자세히 보고 듣고 싶다고 처음부터 부탁했더니, 부원장 신부가 농장 담당 수사와 살림 담당 수사를 이틀내내 붙여주었다. 수도원의 역사는 1129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여느 수도원들과 마찬가지로 역사의 부침이 있었고, 1904년에 베네딕도회 샤이언(Scheyern) 수도원에서 수도자들이 파견되면서 다시 이루어진 수도공동체는 현재 베네딕도회 바이에른(바바리아) 연합회에 속해 있다. 몇 군데 다녀보진 않았지만, 바이에른 연합회는 독일 바이에른주에 있는 베네딕도회 수도원들이란 것 말고는 딱히 구심점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수도원마다 개성이 워낙 강하다. 지난번에 방문했던 니더알타이히 수도원은 동방 전례와 공존을 모색하는 곳이고, 그 바로 인근에 있는 메텐 수도원은 한때 뮌스터슈바르작 수도원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과 함께 그레고리오 성가 부흥으로 유명했고, 이곳 플랑슈테텐 수도원은 생태 친환경적인 실천으로 유명하다. 굳이 하나의 공통점을 찾는다면 맥주로 대동단결한다는 점이랄까. 벨텐부르크 수도원과 안덱스 수도원을 중심으로 바이에른 연합회에 속한 수도원에서 생산되는 맥주는 맥주의 본향인 독일에서도 주당들에게 선호도 1순위를 차지한다.


리카르트 수사의 신토불이 이론

처음 수도원에 도착했을 때 문간 담당 신부가 바이에른 특유의 추임새, “Ja Mei(여 마이)”를 연발하며 무언가 열심히 설명해주었다. 하지만 본인도 분명히 잘 모른다고 하면서 꽤 횡설수설했고, 바이에른 사투리보다 더 심한 오버팔츠 사투리인지라 나 역시 그리 많이 알아 듣지 못했다. 이후에는 부원장이 나를 데리고 다니면서 수도원 안에 있는 바이오 마트, 우리말로 하면 친환경 농산물 매장과 자신이 책임자로 있는 제빵소와 소시지 제조실을 구경시켜주었다. 흥미롭게도 바이오 마트에서는 수도원에서 직접 생산하거나 인근 주민들이 만든 것만을 취급한다는 점이다. 끝기도가 끝난 후에 농장담당 리카르트(Richard) 수사가 이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이 수도원의 친환경 생태 활동은 사람이 땅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생태는 돌고 돌아. 내가 나고 자란 이 땅이 화학물질에 의존해 쉼 없이 소출을 내게끔 강요 받으면, 결국 농작물도 땅의 피로를 물려받고, 그걸 먹는 우리도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게 되지. 또 그걸 먹은 소, 돼지, 양의 고기로 만든 소시지를 통해 간접적으로 땅의 피로는 계속 우리 몸안에 누적되는 거야.”

수도원 농장에서는 주작물 10종류와 부작물 6종류를 재배한다. 하지만 연속해서 농사를 짓는 게 아니라 4년을 경작하고 나서 2년간은 땅이 쉬면서 원기를 회복할 수 있도록 휴경지로 놔둔다고 한다. 물론 농경지가 워낙에 넓으니, 그 사이에 다른 땅에서 나는 소출로도 충분하단다. 부작물은 주작물 수확이 끝난 다음 다음해의 주작물을 심기 전에 심는 것으로 소출도 내지만 동시에 땅의 기력을 회복시키는 역할을 한다.

수도원은 지역민들과 뜻을 모아 생태 친환경 농사를 짓지만, 자기네가 생산하지 못하는 것들은 지역민들에게 투자하여 생산하는 식으로 서로 돕는다고 한다. 예를 들어 인근 맥주 공장에다가 수도원 농장에서 생산된 보리를 공급하고, 맥주공장에서는 ‘플랑슈테텐 바이오(Bio)’라는 상표를 붙여서 팔고, 우유 치즈 등 유제품은 인근 농가에서 사오기도 한다. 리카르트 수사의 신토불이(身土不二) 이론은 꽤 들을 만했다. “지금 독일 사람들은 큰 문제를 안고 있어. 이 땅에서 나고 자랐으면 그 땅에 있는 여러 가지 조건을 우리가 타고 났다는 거야. 그러니까 내가 사는 지역에서 나는 것들만 제대로 먹어도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을 수 있다는 거지. 지금 사람들은 해외에서 수입된 바나나와 키위를 먹고 있어. 화학물질로 처리되었지만 값이 아주 싸고 맛도 좋으니까 그걸 먹지. 그런데 바이에른에서 생산되는 사과의 50%가 그대로 버려지는 걸 모르고 있어. 독일 사람들한테 중요한 건 자동차지, 먹거리는 더 이상 우선 순위가 아니야. 좋은 차를 사기 위해 절약 절약 절약해야 하지.”

축산도 그렇다. 땅의 피로를 가축을 통해 간접적으로 받는 것도 문제이지만, 가축들도 행복하게 살도록 배려 받아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바이에른의 다른 축산 농가와 비교했을 때, 일반 농가가 1400마리의 돼지를 키우는 면적에 수도원에서는 400마리만 키운다. 돼지우리에 가 봤더니 깨끗하다. 돼지들이 원래 상당히 청결하다고 하더니 정말 그랬다. 적당한 공간만 확보되면 스스로 잠자는 곳, 먹는 곳, 배변을 하는 곳을 가린다. 소도 마찬가지다. 소의 경우, 면적당 사육 두수도 일반 농가보다 적고, 도축되는 소의 평균 연령도 월등히 높다. 일반 농가에서 평균 4살짜리 소를 잡는다면 이곳에서는 평균 9살짜리 소를 잡는다. 게다가 새끼를 낳은 소는 한동안 새끼와 함께 지낼 수 있도록 따로 자리도 마련해 준다.


에코와 바이오를 지향하는 수도원

수도공동체는 에너지 생산에도 상당한 관심을 기울인다. 가축의 분뇨를 이용한 바이오 가스 생산 시설을 지금 설치하고 있고, 수도원에 온수를 공급하기 위한 태양열 발전, 농장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위한 태양광 발전, 이산화탄소 배출 최소화를 하는 톱밥 화목 발전 등을 운영하고 있다. 그밖에 쓸데없는 에너지 손실을 막으려고 오래된 수도원 건물에 방마다 자연스럽게 환기가 되도록 구멍을 뚫어 놓았고, 농장에 새 건물을 짓거나 수도원 건물을 고치면서 옛 방식대로 화학물질이 들어간 자재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인근에서 나오는 천연 자재만 사용했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 때문에 독일에서 바이오 마트(Bio Markt)를 이용하는 사람들 숫자는 여전히 적다. 수도원에서 생산된 농산물이나 빵 소시지 등을 찾는 소비자도 마찬가지 실정이다. 생태 환경적 삶을 지향하는 이상을 실천하려면 건물을 유지보수하고 시설 투자를 하는 데에도 상당한 돈이 들어간다. 1994년부터 이 수도원을 에코(Oko)와 바이오(Bio), 즉 생태 친환경 쪽으로 향하게 한 인물은 전임 수도원장인 그레고어 마리아 항케(Gregor M. Hanke) 아빠스다. 능력이 너무나 뛰어나 수도원이 위치한 아이히슈태트(Eichstatt) 교구에서 교구장 주교로 모셔갔는데, 수도원의 형제들은 약간 불만이 있는 모양이었다. “아니, 전에 아빠스로 있을 땐, 사람이 딱딱 밀어부치는 맛이라도 있었는데, 교구장 주교로 가더니 서류에 도장만 찍어서 그런가, 조금 수도원하고 멀어지더라고. 조금만 힘써주면 교구랑 우리랑 공동으로 생태 친환경 운동을 잘 할 수 있을텐데 말이야. 이 근방에 교구가 운영하는 피정집을 세울 게 뭐람. 그런데 우리 수도원 음식이 더 맛있어서 거긴 손님이 별로 없어.”

 

이튿날 돌아오는 길에, 예전에 수도원에서 운영하던 학교 건물 중 하나에서 에너지 관련 특별 전시회를 한다고 보고 가란다. 한국에서는 제발 원자력, 아니 핵발전을 하지 말라고 한다. 조금만 불편하게 살 각오만 있어도 핵발전소 없이 충분히 우리가 살아갈 수 있다면서. 같은 땅에서 사는 모든 생명체가 서로 인연을 주고 받으며 순환하듯이, 지구 한쪽에서 일어난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사고의 여파가 지구 전체에 영향을 준다고 했다.

베다 손넨베르크(Beda Sonnenberg) 아빠스가 작별인사를 나누며 뮌헨에서 공부할 당시 알고 지내던 우리 수도형제 한 분의 안부를 묻는다. “선 라파엘 신부님 요즘 뭐해요?”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레겐스부르크에서 공부를 마치고 곧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유학생의 메시지를 받았다. “제 오랜 친구의 사촌이 왜관 수도원에 사는데, 혹시 이성근 신부님이라는 분 아세요?” 참 자연이나 사람이나 어쨌든 다 연결되어 있구나. 착하게 살아야겠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계간지 분도, 2015년 가을호(Vol. 31), 글 · 사진제공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 수도원 누리집 http://www.kloster-plankstette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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