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일)
(백) 부활 제5주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수도 ㅣ 봉헌생활

봉헌 생활의 해, 완전한 사랑23: 프란치스칸 가족 수도회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11-07 ㅣ No.547

[봉헌 생활의 해 - 완전한 사랑] (23) 프란치스칸 가족 수도회

한 밑둥 5개 수도회와 재속회, 땀흘리며 일치 다져


 

우성농장에 파견된 프란치스칸 가족 수도자와 재속회원이 감 따기에 앞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임형택ㆍ정윤채 수사, 손명옥 수녀, 재속회원 이미숙씨.


“모든 형제는 행동으로 설교해야 한다”고 가르친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을 따르고자 프란치스칸 가족 수도회와 재속회 회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10월 30일부터 3일 동안 경남 산청에서 가난의 영성으로 내적 쇄신을 다지고 세상의 가난한 이웃과 연대하는 시간을 가졌다.

봉헌 생활의 해를 보내면서 프란치스칸 가족 봉사자 협의회에서 ‘농촌 일손돕기 운동’으로 마련한 이번 행사에는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ㆍ카푸친 작은 형제회ㆍ작은 형제회ㆍ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전교 수녀회ㆍ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 등 5개 수도회와 재속회 등 프란치스칸 31명이 참여했다. 프란치스칸 가족 회원들이 봉사 활동을 위해 자리를 함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은 나환우들의 집인 성심원에 머물면서 시천면과 단성면 일대 8개 곶감 생산 농가에서 감 따기 봉사 활동을 펼쳤다. 마지막 날인 1일에는 산청본당 덕산공소 신자들과 함께 주일 미사를 봉헌하고 수녀들이 준비한 떡국을 나눴다.


‘가족’의 이름으로 함께 세상을 바라보다

봉사 이틀째인 10월 31일 오전 6시 성심원. 어둠을 깨우는 새벽 종소리와 함께 프란치스칸 가족들은 일어나 기도방으로 모여 아침기도와 미사로 일과를 시작했다. 서둘러 아침 식사를 마친 이들은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2~5명이 짝을 이뤄 조별로 작업장을 향했다.

산청은 경북 상주와 함께 국내 대표 곶감 생산지로, 서리가 내리기 전인 요즘이 한창 수확 철이다. 요즘처럼 일손이 귀한 때가 없다. 8개 조로 나뉜 가족들은 성심원에서 차로 30~40분 떨어진 8개 농가로 흩어졌다.

시천면 원리 구곡산 기슭 우성농장에 도착했다. 60대 부부의 8000평 감나무밭을 본 가족들은 뜨악하며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가파른 비탈에 돌밭인 데다 마른 수풀이 우거져 작업이 녹록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작은형제회 임형택(요한 카시오)ㆍ정윤채(프란치스코 크로체) 수사와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전교 수녀회 손명옥(마리아) 수녀, 재속회원 이미숙(비젤타)씨는 감을 담는 커다란 주머니가 달린 앞치마를 입고 고무 목장갑과 감 수확 장대를 들고 주저 없이 감나무에 올랐다.

프란치스칸 가족봉사자 협의회가 마련한 농촌 일손돕기 운동에 참여한 수도자와 재속회원들이 10월 30일 새벽 미사에 참례하고 있다.


가족들은 전날보다 능숙하게 감을 땄다. 하루 새 감 따는 일이 몸에 익었나 보다. 감나무가 상할까 봐 조심스럽게 가지 사이로 손을 움직였다. 농장주가 일러준 대로 감 꼭지와 가지가 붙은 ‘T’자 모양의 잔가지를 눌러 감을 따낼 때마다 가족들은 프란치스코 성인 가장 사랑하셨던 ‘타우 십자가’를 보는 듯하다며 즐거워했다.

키 큰 감나무는 2m가 넘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하기에 자연스레 수사들 몫이 됐다. 가족들은 새들과 들짐승과 교감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던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나무마다 까치밥을 남겼다. 겨우내 배불리 먹을 까치들을 생각했는지 가족들은 서로 보며 함박웃음을 나눴다.

정윤채 수사는 “해 질 무렵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면 언덕 아래 내려다보이는 감나무들 위로 석양이 비치는데 주황빛 감들이 반짝이는 모습이 장관이다. 감나무들을 바라보며 프란치스코 성인의 ‘태양의 찬가’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며 일하던 수도자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조용해졌다. ‘조금이라도 더 따야 한다’는 다짐이라도 한 것처럼 쉬지 않고 일하다 보니 목이 마르고 배도 고파왔다. 이때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점심들 들고 하이소!”


단순한 노동이 가져오는 행복

농가 봉사 활동이 마냥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첫날 한 농가 일터로 가던 차가 논에 빠지는 바람에 반나절을 허비했다. 또 한 농가에선 쌓아둔 감 상자를 땅에 쏟아 감을 다치게 하기도 했다. 나뭇가지에 얼굴과 팔이 긁히고 온몸에 담이 들어 모두 밤에는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육체에 난 상처보다 마음이 더 무거웠다. 일손이 모자라 애태우는 농촌 현실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봉헌생활의 해를 맞아 농어촌 공소 순회 운동을 하며 농촌 일손을 돕자는 가족들의 결정이 얼마나 가치 있고 중요한 ‘식별’이었는지 스스로 깨달을 수 있었다.

프란치스칸 가족들은 봉헌생활의 해 동안 △ 기도, 희생, 자비(애긍)의 ‘십일조 정신’ 실천 △ 느리고 작고 불편하게 살기 △ 사회적 약자의 아픔 함께 나누기 △ 농어촌공소 순회 봉사 등 내적 쇄신과 세상과의 연대를 위한 4가지 실천 운동을 펼쳐오고 있다.

재속회원 양동순(체칠리아)씨는 “이틀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지만 감을 따는 단순한 노동과 농민들과의 친교가 주는 소박한 기쁨을 체득했다”며 “함께 기도하고 일함으로써 프란치스칸의 공동체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한국관구장 윤종일(티토) 신부는 “교황님께서 봉헌 생활의 해를 마련하신 것은 교회 쇄신을 위해 수도자들에게 ‘기도의 힘’과 ‘일치의 힘’을 요청하기 위해서였다”며 “이번 봉사활동은 프란치스칸 가족 수도자들이 함께 모여 이러한 요청에 응답하고 실천하는 좋은 시간이었다”고 평가했다.


미니 인터뷰 - 프란치스칸 가족 봉사자 협의회장 윤말다(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전교 수녀회 한국관구장) 수녀

“손에 흙을 묻히니 순수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노동에서 오는 기쁨의 열매들을 체험하는 귀중한 시간이었지요.”

농촌 일손돕기 운동에 참여한 윤말다 수녀는 “봉사하러 오길 잘한 것 같다”며 이번 봉사를 통해 얻은 것이 많다고 했다. 수녀회 한국 관구장인 윤 수녀는 행정적인 업무가 많아 최근까지 참석 여부가 불투명했다. 그럼에도 봉헌 생활의 해에 ‘세상과의 연대’를 다짐한 협의회의 실천이 더 중요하다고 보고 이를 위해 자신의 소임을 잠시 미뤘다.

“농촌엔 연로한 어르신들만 계셨어요. 2박 3일 내내 그 점이 안타까웠습니다. 공소 어르신들은 영적으로도 목말라 하셨습니다. 어르신들께 ‘마지막 날 반나절이라도 일을 더 도와드릴까요?’하니 ‘주일 미사를 해달라’고 하시더군요.”

프란치스칸 가족 봉사자 협의회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정신을 계승하는 수도회들의 협의체다. 국내 진출한 프란치스칸 가족 수도회는 작은 형제회ㆍ꼰벤뚜알ㆍ성 글라라 수도회 등 20여 개에 이른다.

윤 수녀는 “부부가 기쁘게 일하는 모습을 통해 자연 안에서 노동을 통해 얻는 참 기쁨을 묵상했다”며 “앞으로 프란치스칸 가족들이 이러한 기회를 자주 얻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평화신문, 2015년 11월 8일, 글 사진=
이힘 기자]



2,269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