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25일 (금)
(녹) 연중 제25주간 금요일 예수님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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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자] 사제의 5가지 덕목과 모범 보인 사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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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6-16 ㅣ No.1204

사제의 5가지 덕목과 모범 보인 사제들


사제, 스스로의 삶 통해 예수 성심 세상에 드러내야

 

 

교회는 매년 예수 성심 대축일을 ‘사제 성화의 날’로 지낸다. 교황청 성직자성은 2020년 사제 성화의 날(6월 19일)을 맞아 발표한 묵상 자료를 통해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닌 사제들’이 되새겨야 할 5가지 덕목을 깊이 묵상할 것을 제안했다. 이 묵상 자료에 따라, 자기 삶을 통해 예수의 성심을 세상에 드러낸 사제들의 모범을 생각해본다.

 

묵상 자료는 사제들이 참된 사제로서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감사, 자비, 연민, 깨어 있음, 용기의 덕목을 제시했다. 이 5가지 덕목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9년 8월, 아르스의 본당 신부 요한 마리아 비안네 성인의 선종 160주년을 맞아 전세계 사제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언급한 표현들이다.

 

 

감사 – 모든 사제들

 

교황은 서한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쁨으로 자기 삶을 봉헌한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이 기쁨은…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에 대한 사랑으로 열린 마음이 되려고 여러 해에 걸쳐 노력하며 갈고 닦은 마음을 보여 줍니다. 이 마음은, 시간이 흐를수록 풍미가 더해지는 좋은 포도주와 같습니다.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교황은 “다른 이를 위한 봉사에 충실하고 너그럽게 자신의 삶을 바친 모든 사제에게는 감사드려야 마땅”하다며,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닌 모든 사제들’에게 감사를 표시했다. “그리스도의 성심을 따라 사제가 된다는 것은, 그분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지니게 되기까지 그리스도를 입는다는 것이고, 특별히 예수 성심은 여러 덕목 가운데에서도 감사에 열려 있다.”

 

예수는 당신의 놀라운 구원 업적과 하느님의 지혜를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신 하느님께 감사하셨다. (마태 11,25 참조) 그래서 감사는 특별히 ‘그리스도인의 자질’이고 ‘목자의 존재 방식’이다. 사제는 ‘감사’를 의미하는 ‘성찬례’의 거행을 통해 특별한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성심에 동화된다.

 

 

자비 –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

 

“사제는 삶의 모든 상황에서 모든 이에게 다다르시어 악에서 치유해 주고자 하시는 하느님 사랑의 표징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나약함과 죄의 심연 속으로 내려감으로써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으키시는 아버지의 자비로운 성심을 드러내 보이셨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화해의 성사 안에서 형제들을 환영하고 그들에게 귀 기울이며 그들과 동행할 줄 아는 자비로운 사제들”을 필요로 한다.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Joannes Maria Vianney, 1786~1859) 신부는 평생 아르스의 본당 주임 신부로 지내며 매일 18시간씩 고해를 들었다. 프랑스 전역에서 수많은 이들이 고해성사를 하기 위해서 모여들어, 아르스는 ‘영혼들의 위대한 병원’이 되었다.

 

비안네 신부는 다시 죄를 지을까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주님께서는 당신이 고백하기 이전에 이미 당신이 또 죄를 지으리라는 것을 알고 계시지만 그래도 여전히 당신을 용서해주십니다”라고 일렀다.

 

‘그리스도께 동화된 사제는 무엇보다도 자비와 화해의 봉사자’이다. 비안네 신부는 자신의 모든 삶과 행동 안에 깃든 하느님의 자비의 손길을 체험하고, 모든 이에게 그 사랑과 자비를 전한 자비의 사제였다.

 

 

연민 – 성 다미안 드 베스테르 신부

 

“자기 형제자매들의 상처를 직접 다가가 어루만지는 사제야말로 참으로 좋은 본보기입니다.”

 

예수는 지치고 억압받는 군중들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들곤 했다. 그리하여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연민으로 가득 차 형제들의 상처 입은 몸 앞에 멈추시어 상처를 낫게 해 주시고 치유해 주시며,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생생히 드러내 보여” 주었다.

 

몰로카이섬에서 평생을 나환자들을 돌보며 살다가 그들과 똑같은 병에 걸려 그들의 곁에 묻혔던 다미안 신부(Joseph de Veuster, 1840~1889년). 그는 고통 받는 형제자매들에 깊은 연민을 느껴 그들의 곁에 “실제로 가까이 다가가 곁에 있어주는 친밀함”을 보여주었다.

 

의사였던 그는 1863년 하와이 선교를 자원, 1873년 하와이 군도 몰로카이섬으로 들어갔다. 그는 700명이 넘는 한센병 환자들의 집을 지어주고, 그들의 고름을 짜주고, 환부를 씻어 붕대를 갈아주었으며, 죽어가는 이들을 위해 관을 만들고 무덤을 파 장례를 치러줬다. 사람들의 고통과 괴로움에 온전히 동참한 그는 예수님이 보여주신 연민의 마음을 그대로 드러냈다.

 

“주님, 저에게도 같은 나병을 허락하시어 저들의 고통에 동참하게 해주소서!”

 

 

깨어 있음 – 성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

 

“현실에, 교회에, 또는 우리 자신에 대하여 실망했을 때, 우리는 달콤한 슬픔에 젖어 들고자 하는 유혹에 빠질 수 있습니다. 슬픔은 불만과 적의를 품게해 변화와 회개를 위한 모든 노력을 수포로 만들어 버립니다.”

 

우리는 타성에 젖은 행동 방식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이 현실이 부활하신 주님의 살아 있으며 힘 있는 말씀으로 변화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1980년 미사 도중 피살된 성 오스카 로메로(Oscar Romero, 1917~1980) 대주교는 1970~80년대 남미 군부 독재 저항운동의 상징이다. 그가 1977년 산살바도르 대교구의 교구장 대주교로 임명되었을 당시 엘살바도르는 정권의 비호 아래 소수 가문이 전체 경작지의 60%를 소유했다. 이들에게 방해가 되는 이들은 학살당하기 일쑤였다.

 

그는 시대의 아픔, 백성들의 아픔에 눈을 떠,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 편에 섰고, 빈곤의 문제와 사회 정의에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결국 1980년 3월 24일 저녁, 산살바도르의 ‘하느님 섭리의 병원 성당’에서 거행된 미사 도중 강론을 마치고 제단 중앙에 섰을 때, 군사 정권의 사주를 받은 무장괴한으로부터 가슴에 총을 맞고 숨을 거두었다.

 

 

용기 – 최양업 신부

 

“용기 있는 마음을 지켜 나가려면 우리의 정체성을 이루는 두 가지 유대를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첫째, 우리가 예수님과 이루는 유대입니다.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또 다른 유대는 우리와 우리의 양 떼가 이루는 관계입니다.”

 

예수와의 유대를 잃은 모든 활동은 빛이 바랜다. 양 떼와 사제단, 공동체와 떨어지고 폐쇄적이고 엘리트주의적 집단에 갇히면 그것은 ‘영혼을 질식시키는 독’이 된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닌 사제는, 자기 삶을 봉헌한 주님과 자신이 섬기도록 부름받은 백성 사이에서 사는 사람이다.

 

최양업 신부(1821~1861)는 ‘땀의 순교자’로 불리운다. 28세였던 1849년 4월 15일 상해에서, 두 번째 한국인 사제로 사제품을 받은 최양업 신부는 같은 해 겨울 압록강을 건너 입국, 12년 동안 해마다 7000여 리를, 파수꾼들의 눈길을 피할 수 있는 험한 산길을 택해 양떼들을 찾아다녔다.

 

그는 자신의 모든 생각과 행동에서 하느님과의 일치를 추구했다. 그는 서한에서 “하느님은 우리의 위로, 희망, 원의이시니,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죽습니다”라고 적었다. 그는 또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의 고통을 함께 하고자 노력하면서, “지독한 가난에 찌든 사람들… 저들을 도와줄 수 없는 저의 초라한 꼴을 보고 한없이 가슴이 미어집니다”라고 한탄했다. 하느님과 형제자매들과의 친교와 일치는 ‘땀의 순교’에 이르기까지 한 순간도 용맹함을 잃지 않았던 힘의 원천이었다.

 

[가톨릭신문, 2020년 6월 14일, 박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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