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6일 (월)
(백) 부활 제6주간 월요일 진리의 영이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강론자료

2월 29일(주일)-사순 1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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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4-02-28 ㅣ No.600

사순 제 1 주일 (다해)

 

        신명기 26,4-10        로마 10,8-13        루가 4,1-13

    2004. 2. 29.

주제 : 봉헌을 위한 올바른 자세

 

한 주간 안녕하셨습니까?

오늘은 사순 첫 번째 주일입니다.  사순 시기는 인류에게 ‘구원이라는 선물’을 이루시기 위하여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수난을 기억하고 우리도 참여하기를 함께 노력하고 기도하는 시기입니다.  해마다 정해진 사순시기를 습관적으로 맞이하면서 우리가 기억하는 것만으로 끝낸다면, 그것은 사순절을 지내는 제대로 모르는 일이 될 것입니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다들 힘들다고 할 것입니다.  요즘은 대통령을 잘못 뽑아서 나라의 경제가 나락으로 굴러 떨어졌다는 말도 합니다.  그러나 말을 그렇게 한다고 해서 달라질 현상은 조금도 없습니다.  또한 경제상황이 좋았던  IMF 이전의 모습과 비교하면서 상대적인 박탈감 때문에 우리가 힘겹다고 생각하는 것은 더 클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현실을 돌아보면서 힘겹다고 말하는 것만으로 상황이 바뀔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돌아보는 일이 삶의 변화를 위한 시작은 될 수 있어도 완성에 이르는 효과적인 방법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대하여 안타까움을 말하는 것만으로 현실이 내 맘에 들도록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사순 첫째 주일에 들은 복음의 말씀은 힘겨움과 어려움을 이겨내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것처럼 예수님이 겪으신 유혹과 그것을 이겨내는 모습을 전하는 루가복음의 말을 들으면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하겠습니까?

 

하느님이셨고, 하느님의 속성을 그대로 간직하신 예수님이었지만, 인간으로 오신 그분에게 다가온 것은 악마의 유혹이었습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광야에서 머무는 40일간 유혹을 받았다고 루가복음서는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유혹하려던 자가 꺼낸 이야기가 무엇인지는 우리가 잘 알 것입니다.  ①육신(肉身)이 살아가는 데에 꼭 필요한 음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 빵, 즉 먹는 음식에 관한 이야기로 우리를 하느님에게서 떨어뜨려 놓으려는 것, ②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가지려고 애쓰는 지배욕과 소유에 대한 문제로 하느님과 대등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 ③현실의 내 모습과는 상관없이, 다른 사람들 앞에 내가 위대하고 용기 있는 사람으로 드러날 수 있도록 ‘보여주는 용기’인 만용(蠻勇)에 대한 문제가 그것입니다.

 

이런 유혹은 오래전 예수님에게 다가온 것뿐만이 아니라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그대로 똑같이 다가오는 것들입니다.  실제로 삶을 잘못된 곳으로 이끄는 이런 유혹 앞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굳이 다른 것을 생각한다면, 유혹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 정체를 알고 그것에 대한 올바른 대처방안을 준비하는 사람은 같은 유혹이나 힘겨움도 달리 대할 수 있다는 차이뿐입니다.  유혹에 대한 말씀을 드리면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어려움을 올바로 이겨내는 사람만이 행복에 즐거운 마음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만 위대하고 귀중한 줄로 생각하고, 내 안에 숨겨놓은 안하무인(眼下無人)의 자세를 부추기는 유혹은 자신을 겸손하게 돌아보는 자세가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것이 세상의 모습에서 안타까운 것입니다.  정말로 가져야 할 마음은 외면하고, 정말로 변화되어야할 사람들이 자신만큼은 그런 변화가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인 세상에서 말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만드는 행동이 만들어낼 결과가 무엇인지는 환한 불빛아래서 바라보듯[=明若觀火]한 일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올바른 것을 회복하는 방법으로 나오는 첫 번째 독서의 말씀은 우리에게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듣기 싫으면 귀를 막으면 되는 세상, 나와 뜻이 같지 않으면 자리를 피하거나 더 큰 목소리로 상대방을 눌러버리면 되는 세상, 말로 해서 안 되면 주먹을 들이밀고 폭력을 사용하여 상대방을 제압하면 되는 세상에서 ‘신명기 독서’에 나오는 것과 같은 겸손한 기도를 말하면 누가 알아듣고 실천하겠습니까?  

 

“주 하느님, 저의 조상은 당신 앞에서 별 볼 일없고, 보잘것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이곳에 자리를 잡고 살게 된 것도 주 하느님께서 저에게 베풀어주신 은덕이라는 것을 항상 잊지 않고 살게 해주십시오.  오늘 제가 겸손하게 당신 앞에 바치는 제물을 굽어보시고 겸손한 제 마음도 받아들이시어 당신을 참으로 두려워하고 사는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하느님이 원하시는 뜻, 자신의 삶을 겸손하게 뒤돌아보고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는 삶을 만들어야 할 일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 수 있는 것은 물론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입니다.  이 마음자세를 잊지 않음으로써 세상의 유혹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하느님의 자녀로 살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해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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