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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종교철학ㅣ사상

뜨겁게 만나다: 루이 에블리 신부의 사람에게 비는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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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5-02 ㅣ No.156

[뜨겁게 만나다] 칠흑의 밤에 새벽빛을 만나다

 

 

하느님을 만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 때문이었다. 감히 누가 이렇게 말할 수 있겠는가? 그때 만난 나의 하느님은 일곱 번을 일흔 번이 넘도록 끝없이 용서하시는 하느님, 가난한 이를 배려하시는 따뜻하신 하느님, 떠난 이를 기다리시는 사랑의 하느님이셨다.

 

 

답을 찾아 헤맨 10년 동안의 방황

 

환희와 감사로 시작된 나의 신앙생활은 곧 흔들리기 시작했다. 교회법에 묶여 문밖에서 떨고 있는 이들을 만나면서, 하느님을 지옥과 천국으로 편 가르는 무서운 분으로 세뇌시키는 강론을 들으면서, 기도서를 달달 외우는 열심신자들의 비그리스도적인 행태들을 대하면서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오만이었지만 당시의 내게는 신앙생활을 흔들기에 충분한 이유들이었다.

 

1970년대의 직장은 수당도 없이 평일야근에 주일근무를 밥 먹듯이 하던 시절이었다. 주일미사마저 궐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흔들리던 신앙생활은 자연히 냉담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하지만 나의 하느님, 내가 만난 하느님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진실로 신을 찾고자 하는 사람에게만 신은 대답하신다.”는 카알 힐티의 말을 믿고 순례의 길을 떠나는 심정으로 머리맡에 신앙서적들을 쌓아두고 밤마다 읽기 시작했다.

 

어느 신학자가 한 말인지 기억할 수는 없지만 10여 년간 냉담의 길에서 헤매고 있을 때 내게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해준 말이 있다. “회의(懷疑)하지 않으면 신앙은 자라지 않는다.”

 

그때 캄캄한 터널 안의 내게 여명의 빛을 비춰준 분이 떼이야르 드 샤르댕 신부, 한스 큉 신부였다. 가톨릭계에 이런 신부님들이 있었다니! 뒤늦게 알게 된 나의 무지몽매가 부끄러웠으며 가톨릭을 선택한 것에 위안과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다.

 

 

어느 겨울밤의 만남, 나를 일으켜 세우다

 

냉담 10여 년, 어느 겨울밤에 루이 에블리 신부의 「사람에게 비는 하느님」을 만났다. 그것은 은총이었고 어둠의 세월을 한순간에 밀어내는 섬광 같은 손길이었다. 그때의 뜨거웠던 심정을 표현하려면 톨스토이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세상의 삶 속에서 헛되이 행복을 찾아 헤매다가 지치고 피곤한 손을 신에게 내미는 순간 그가 느끼는 기쁨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톨스토이의 말 그대로였다. 에블리 신부를 만난 것은 기쁨인 동시에 충격이었다. 그의 다음 말은 시인이고자 했던 내게는 영혼을 뒤흔드는 말이었다.

 

“언제쯤 돼야 시편은 순화될 것인가? 교회가 계시에 뒤떨어진 기도를 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유감스런 일이 아니겠는가.”

 

신앙생활 초년생이었던 나로서는 그 시절 기도의 형태들이 교회가 원하는 방법인지 아니면 버려야 할 낡은 전통에 안주하고 있는 평신도의 안일함 때문인지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갈등하고 있던 내게 에블리 신부는 명료하게 답을 제시해 주었다.

 

“기도란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호소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듣는 것이다.”

 

기도에 대한 나의 갈증을 해소하기에는 위의 구절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이 말은 시작일 뿐이었다. 에블리 신부는 나를 뜨거운 참회와 고백의 눈물을 쏟으며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게 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빌고 계시다니!

 

기도에 대한 그의 말은 단호하게 계속되었다. 우리는 흔히 가난한 이를 위해 빵을 내려달라고, 나를 위해 온갖 것을 해결해 주십사고 하느님을 조르는데, 그보다 더 잘못된 기도는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을 교묘하게도 하느님더러 해달라고 하는 책임 회피”에 속하는 것이니 당장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기도는 “만일 빵을 주시는 분이 하느님이라면 그것을 주지 않는 분도 하느님이 되게 하는 기도”라니 참으로 간담을 서늘케 하는 말이었다.

 

오늘도, 인도, 아프리카, 내 이웃에 끼니를 거르는 이들이 있다. 이들에게 하느님이 골고루 먹을 수 있도록 빵을 내려주시려면 그 유일한 방법은 우리의 행동을 통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말에 한없이 부끄러웠다. 우리의 나눔을 통하지 않고는 ‘사랑의 하느님’이 되실 수 없는 하느님, 너희가 하느님이 되라고 끊임없이 재촉하고 계신 하느님의 소리를 듣지 못한 채 하느님을 ‘무능한 전능자’로 만든 나의 무지와 무심에 심한 죄책감을 느꼈다.

 

“하느님은 아무도 벌하시지 않고 심판하시지 않으며 지옥으로 보내지도 않는다.”고 알려준 에블리 신부를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지금까지도 지옥과 천국의 갈림길에서 떨고 있었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그 모습과 뜻을 전부 보여주시는 과정에 있는 유일한 장애는 우리 자신”이라고 충고해 준 에블리 신부를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아직도 냉담자로 성전을 기웃거리며 문밖에서 서성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오만하지만 한없이 겸손하신 하느님, 우리는 강하지만 한없이 약하신 하느님으로 “우리에게 빌고 계신 하느님”을 알게 해준 에블리 신부. 그를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지금까지도 어둠의 터널에 갇혀있었거나, 하느님의 협력자가 되어야 할 신앙인으로서의 소명을 깨닫지 못한 채 “무능한 하느님의 숭배자”로 살고 있었을 것이다.

 

* 이정옥 베아타 - 시인. 가톨릭문인회, 한국문인협회, 문학의집서울 회원이다.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숙명여대 국문과를 졸업, 동아일보 여성동아부 기자와 음악동아부 차장을 지냈다. 「채워지지 않은 잔이 더 아름답다」, 「아름다운 포구에 닻을」 등의 시집과 「행복한 자기사랑」,「반만 버려도 행복하다」 등의 수필집을 냈다.

 

* 박순배 젤마나 - 경희대학교 ·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2005년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 등 여러 차례 입상하였고, 개인전 11회와 국내외 초대전 · 단체전 200여 회에 참여했다. 한국미협, 한국수채화협회 회원으로 춘천가톨릭미술인회 회장을 지냈다.

 

[경향잡지, 2013년 1월호, 글 이정옥 · 그림 박순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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