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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해성사] 고해성사, 그 예식과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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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7-02 ㅣ No.134

[전례와 상징] 고해성사, 그 예식과 상징

 

 

죄는 지켜야 할 하느님의 뜻을 고의로 자유로이 거역하고 창조주와 그 지시를 자만과 이기심 때문에 저버리는 것이다. 죄인이 벌을 받는 것은 화해의 일면이다. 사람은 누구나 대소의 차이는 있지만 죄를 범하고 있다. 작은 죄를 소죄라 하고 큰 죄를 대죄라 한다. 소죄나 대죄 모두 먼저 하느님께 대한 배반이고 다음엔 교회, 그 다음엔 자기 자신에 대한 배반이다. 이렇게 삼중의 배반자인 죄인은 세 영역에서 화해를 이루어 다시 온전한 사람으로 돌아와야 한다. 즉 하느님 영역, 교회 영역, 자기 영역이다.

 

하느님과의 관계는 자각과 지조와 마음의 쇄신으로 하느님을 경외(敬畏)하고 기도를 통한 대화로 회복하게 된다. 이 기도의 열매가 회개이다. 완전한 회개는 하느님 앞에서 “주여 불쌍한 죄인을 용서 하소서” 하고 부르짖는 자세이다. 하느님에 대한 진정한 사랑에서 나온 통회는 대죄까지도 사함을 받는다.

 

죄는 또한 사회적인 연대성을 가진다. 죄는 인간 사회의 기초와 법질서를 자의로 파괴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 사회적인 관점은 성화(聖化)를 목표로 하는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와 관련되어 있다. 선자의 대죄는 모두 생활력과 신앙의 품위를 손상시키고 복음 전파의 큰 장애 요인이 된다.

 

교회의 영역은 구세주께서 사도들과 후계자들에게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주셨기 때문에 여려 세기에 걸쳐 고해성사로 화해하도록 하는 것이다. “성령을 받아라.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19-23 참조). 죄의 성향을 지닌 인간에 대한 주님의 자비는 수난과 죽음을 통하여 화해의 핵심을 이룬다. 단 한 번의 화해 성업이지만 ‘죄를 사하기 위하여’ 주님이 몸을 바치고 피를 흘려 세운 성사(聖事)를 통해 화해는 계속되고 있다.

 

교회는 사랑과 기도와 성화의 모임이기에 죄로써 공동체에 끼친 상처는 화해로 치유되어야 한다. 초기 교회에서도 신도들의 고백이 있었다. “많은 신도들이 와서 자기들이 한 일을 숨김없이 자백하였다”(사도 19,18). 공동체가 점차 커지고 신자들끼리도 서로 모를 정도가 되면서 고해성사는 더욱 필요하게 되었다.

 

또한 초기 공동체에도 모임에서 제외되는 파문(excommunication)의 벌이 있었다. “그런 자들은 여러분의 모임에서 제거되어야 할 터인데도… 여러분 가운데 있는 그 악한 자를 쫓아내십시오”(1고린 5,1-13 참조). 큰 죄인은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로부터 회개하도록 일정한 기간 격리시켰고 일상적인 잘못에 대해 용서받기 위하여 보상될 만큼 기도, 단식, 자선과 다른 선행을 하였다. 그 후 중대한 죄 즉 배교, 살인, 간음 등은 공적인 속죄 방식을 취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속죄 기간이 여러 해 걸리거나 심지어 죽을 때까지 걸리는 것도 있었다. 로마에서는 교회와의 화해를 위하여 성목요일에 주교의 안수와 기도를 받도록 하였다. 보속이 일생 동안으로 정해지는 경우도 많았다.

 

초기 박해시대의 고해성사 예식에는 사죄의 말씀과 안수가 있었고 중세까지 계속되었다. 당시의 안수는 십자가 표시를 하면서 사죄경을 하였다. 950년경 중세의 예절에서는 고백자가 고백신부 앞에서 머리를 숙이면 기도해 주고 고백자의 지적 수준을 고려해 사제는 일종의 양심 성찰을 시켰다. 그것은 죄악의 열거만이 아니라 생활의 쇄신을 지시하는 데 있었다. 다음에 삼위일체의 신앙과 육신 부활과 심판에 대한 믿음, 잘못의 용서를 바라는 마음에 대하여 질문하였다. 이어서 고백의 기도를 하였고 고백자는 손을 벌린 채 사죄를 청하였다. 고백자가 엎드리면 사제가 보속을 주고 안수와 사죄경을 베풀었다.

 

 

새 고해성사 예식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예식서의 개정을 촉구하였다. “고해성사의 예절과 경문은 이 성사의 본질과 효과를 뚜렷이 표현하도록 개정되어야 한다”(전례헌장 72항). 그 후 새 고해성사 예식서가 1973년 12월 2일에 공포되었고 1977년 우리 말로 번역되었다. 이 책은 화해 예식을 네 개의 장으로 구분하여 기도와 해설을 넣었고 부록으로 여러 참회 예식과 자료를 첨부하였다. 제1장은 개별 고백자들의 화해 예식, 제2장은 개별 고백과 개별 사죄로 여러 참회자를 화해시키는 예식, 제3장은 공동 고백과 공동 사죄로 여러 참회자를 화해시키는 예식, 제4장은 화해 예식에 사용되는 독서와 기도문의 순서로 되어 있다.

 

신자들이 하느님과 교회와 화해하기 위한 유일하고 정상적인 방법은 개별적 고백과 개별적인 사죄이다. 그러나 특수 환경 때문에 개별 고백 없이 여러 참회자들에게 공동으로 사죄해 줄 수 있다. 언제 공동 사죄가 타당한지를 결정하는 권한은 주교에게 있다. 공동 사죄로 대죄의 사함을 받았더라도 불가능 상태가 아니면 1년 안으로 개별적 고해성사를 보아야 한다.

 

 

고해소

 

고해성사의 집전 장소는 어디인가. ‘교회법이 지정하는 장소와 자리’라고 하였다. “사목 지침서”(시안)에 보면 “성당마다 고해 사제와 참회자 사이에 칸막이가 있는 전통적 고해소가 설치되어야 하며, 대면식 참회 성사를 원하는 신자들을 위한 장소도 설치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였다.

 

고백 장소는 원래 성당의 의자 특히 주교좌 성당의 주교 의자를 의미한다. 사실상 고백은 주교의 자리에 속하였다. 이 의자는 제대의 뒤편에 있었고 옮겨 놓을 수 있게 되었다. 고딕(Gothic) 시대에는 밀실에 신부와 고백자의 의자를 두었다.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년) 이후에는 신부와 고백자 사이에 분리대와 창살을 만들어 놓고 고백자는 무릎을 꿇게 만들었다. 바로크형 건물에는 창살에 커튼을 달았으며 채광이 되도록 하고 마지막으로 창문을 반쯤 높게 만들었다. 지금도 의자는 한 ‘재판석’으로 남아 있다. 사제가 재판관처럼 앉아서 죄에 대한 심판을 하는 것이다.

 

고해성사 집전의 때는 신자가 합리적으로 요청한다면 언제나 거행하도록 하고 사제가 대기하고 있는 날과 시간을 공적으로 알리며 미사 시간 외에 정해진 시간을 이용하도록 하고 있다.

 

전례 의복은 교구장이 정하여 주도록 되었는데 “사목 지침서”(시안)에는 사제 고유 복장과 자색 영대를 착용하도록 하였다. 영대는 성직자의 직무 수행을 위한 표시와 상징이다.

 

 

안수

 

옛날 사죄경을 외울 때 손을 들고 하던 안수가 지금도 있다. 주님이 손을 나병 환자에게 갖다 대시며 “그렇게 해주마. 깨끗하게 되어라”(마태 8,3) 하시자 나병이 깨끗이 나았다. 그리고 예수님은 “아이의 손을 잡고 ‘탈리다 쿰’ 하고 말씀하셨다. … 그러자 소녀는 곧 일어나서 걸어다녔다”(마르 5,41-42).

 

새 예식서에서도 사제는 고백자의 기도가 끝난 다음 두 손을, 적어도 바른손을 고백자 위에 펴들고 사죄경을 왼다. 그리고 사죄경의 핵심인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이 교우의 죄를 사하나이다’라고 할 적에 십자표를 그어준다.

 

이 두 손은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벌린 자세이며 “모든 사람을 이끌어 나에게 오게 할 것이다”(요한 12,32)란 말씀의 재현 동작이다. 고해성사 때 안수하는 손은 예수님의 구원과 치유의 손길이다. 예수의 손은 잃어버린 아들을 잡아끈다. 실상 손을 들어 십자 표시를 할 적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의 손을 연상할 수 있다.

 

[경향잡지, 1988년 8월호, 안문기 프란치스꼬(대전 선화동본당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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