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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수도회는 왜 가난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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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10-20 ㅣ No.545

[증언, 한국교회의 과제] 수도회는 왜 가난해야 하는가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방한 기간 중인 지난해 8월 16일 한국 남녀 수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청빈서원을 한 수도자가 가난하게 살지 않으면 신자들의 영혼에 상처를 입히고 교회를 해칩니다’(2014.8.16.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수도 공동체들과 만남 연설 참조).

교황님이 직접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오늘날 많은 수도회와 수도자들이 가난하게 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청빈서원한 수도자들이 가난하게 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수도자는 왜 청빈서원을 하는가?


가난의 의미

예수님께서는 수도자가 청빈서원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지는 않으셨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후대의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을 관찰하고 분석하여, 그분의 말씀대로 온전히 살아가는 데 가장 이상적인 삶의 방식이 바로 복음삼덕이라고 생각하여 지키기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예수님께서는 부자청년과 당신을 따르려는 사람들에게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셨다. 그리고 당신 자신도 머리 둘 곳조차 없이 가난하게 사셨다.

수도자들에게 가난이란, 무엇을 먹고 입을지 걱정하지 않고, 사람의 머리카락까지 다 헤아리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필요한 것을 알아서 마련해 주실 것이라는 절대적인 믿음의 행위이다.

또한 가난은 하느님만을 오롯이 선택하는 행위이다. 수도자는 돈을 좋아하면서 하느님을 섬길 수 없다. 수도회 창설자들은 철저히 가난하게 살았다. 물질을 추구하면 하느님과 형제들보다 돈이 먼저 보인다. 부자는 반기고 가난한 사람은 거들떠보지도 않게 된다.

잠깐 살펴본 것처럼 가난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철저히 따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필수적인 선택이다. 그런데도 수도자가 가난하게 살지 않는다는 것은 하느님과의 관계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정결과 순명에도 문제가 있을 것이며, 수도복만 입은 채 무늬만 수도자 행세를 하고 산다는 것이다.


가난하지 않은 수도회의 모습

요즈음 번듯한 큰 건물을 가지지 않은 수도회를 찾아보기 힘들다. 당연하다. 물질만능주의의 이 시대에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으니 모두들 하나라도 더 가지려고 한다. 그런 환경에서 성장한 지원자가 수도회에 입회하고 서원해서 장상도 되고 책임자가 되니 청빈서원을 하지만 실제적으로 가난하게 살기는 어렵다.

가난하게 살아본 적이 없는데 어찌 가난하게 살겠는가? 수도회의 건물이나 겉모습의 거대함은 필요에 따른 것이라 하더라도 마음까지 거만하게 커진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교회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 배가 고플 때 찾아가서 편하게 라면 하나라도 얻어먹을 수 있는 수도회가 있겠는가? 찌푸린 얼굴을 보게 되거나 푸대접을 받기 쉬울 것이다. 하물며 가난한 사람이 가서 무엇을 청한다는 것은 경찰에 잡혀갈 각오를 하지 않고서는 시도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가난하지 않은 수도자의 모습

가난하게 살던 사람도 수도회에 들어오면 맘껏 누리려고 한다. 밖에서는 먹어보지도 못한 건강 보조식품부터 수맥차단 돌침대와 각종 건강기구들, 그리고 좋은 옷과 신발…. ‘수도자는 가난해도 수도회는 부유하다.’는 말이 있듯이, ‘수도회는 가난해도 수도자는 부유하다.’는 말도 있다.

마더 데레사는 “우리는 휴가비를 줄 돈이 없어서 우리 수도회 수녀들은 휴가가 없다.”라는 말을 하였는데, 그런 수도회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아마 대부분의 수도자는 휴가비를 주지 않아도 휴가를 하고 올 수 있는 능력이 될 것이다.

휴가비가 부족해서인지 미리 휴가비 구할 데를 찾는 것 같다. 돈을 어디서 구하는지도 모르겠다. 남자 수도자들 가운데에는 사제들도 있으니 더 능력이 있을 것이다.

청빈서원에는 공동소유에 대한 약속도 당연히 포함되지만 말 그대로 100퍼센트 공동소유를 하는 수도자가 대한민국에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자기 것이 따로 있다.

어떤 물건이 외부에서 개인 이름으로 도착할 때 수도회 규칙대로 장상이 판단해서 임의대로 처분할 수 있는 수도원은 거의 없을 것이다. 개인 소유권은 수도원에서도 보장된다. 그렇지 않으면 아마 큰일이 날 것이다.

가난을 서원했어도 외적으로 문제될 것만 지킬 뿐이지 대부분의 것은 개인이 임의대로 판단해서 처리한다. 그러니 청빈서원은 실제로 명목만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수도회 쇄신의 제언

가난의 실천은, 지금까지 살아온 현실을 감안하여, 나눔의 연대와 청빈의 연대의식을 고취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만일 본디의 절대적 가난을 주장했다가는 수도회에서 난리가 날 것이기 때문이다.

- 수도회의 재산은 근본적으로 교회의 재산이다. 그러므로 선교와 인간에 대한 봉사와 관련 없는 사업을 과감하게 정리하여야 한다.

- 수도회 설립의 정신에 따라 보편적 형제애의 표현인 무상의 원칙을 지키고자 수도회 재산을 정리할 때는 먼저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발전에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

- 수도회 재산은 교회법과 사회법을 존중하면서 복음적 증언 차원에서 투명하게 관리하여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2014년 3월 8일 로마에서 개최된 재무 관련 모임에서 권고하셨듯이, 수도회의 고유 정신과 영적인 측면을 고려해서 수도회 재산이 엉뚱한 곳에 낭비되지 않도록 수도회의 모든 사업 예산에 대한 재무제표는 회원들에게 공시되어야 한다.

- 마을이나 주위에 어울리지 않는 수도원의 큰 건물을 짓지 않는다.

- 여러 수도회가 연합하여 수도자들이 손쉽게 휴가나 개인피정을 할 수 있도록 공동의 집을 운영하고, 병원을 공유하여 불필요한 건축 공사비와 경비를 절약한다.

- 자기 수도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지역교회나 다른 수도회를 배려하여 사업을 나누거나 양도한다.

- 다른 수도회와 법무, 회계, 세무 분야의 전문가 집단을 공유하여 경비도 절감하고 연대도 튼튼히 한다.

- 장상들이 빈번히 모여 수도회 재산 사용과 공동협력 방안을 의논하여 청빈의 연대를 공고히 한다.

- 양성과정에서 청빈의 연대의식 고취를 위해 교육과 체험의 기회를 자주 갖는다.


수도자 쇄신의 제언

- 세상을 거슬러 불편을 감수하며 살 각오를 단단히 한다.

- 굉장한 속도로 발전하는 현대문명의 이기를 발 빠르게 수도회 안으로 끌고 들어오지 않는다.

- 심하지 않은 병이면 큰 병원에 가지 않는다.

- 건강 염려증에서 해방되어 건강을 위한 각종 경비를 줄인다.

- 경비를 스스로 절약하여, 동남아를 비롯한 하루 천원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더 기울이고 가난한 지역 사람들과 연대하며 돕는다.

- 고급 물품을 지양하는 가운데 공동체 전체의 재정상황을 파악하여 공동체의 어려움을 함께한다.

- 하느님께만 온전히 의탁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가난하지만 멋있는 수도자가 되도록 노력한다.


수도회의 역할

수도원은 만인의 휴식처이자 안식을 얻는 곳이어야 한다.

문전걸식 체험을 한 수도회의 수련생들은 사찰이나 개신교회보다 천주교회가 인심이 더 박하다고 하였다. 행색이 남루하면 아예 성당 근처에 발도 못 붙이게 한다고 하였다.

수도원은 하느님의 집이다. 누구든지 와서 쉬고 힘을 얻으며 먹을 것을 제공받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그러나 육중한 수도원의 문을 열고 들어와 쉴 자리를 청하거나 한 끼 식사를 달라고 쉽게 말할 수가 없다. 아니 거의 불가능하다. 수도원도 부자나 드나드는 곳이 되었다.

수도원들의 본디 규칙에 따르면, 수도원에 손님이 오면 장상들과 형제들이 모두 나와서 손님의 발을 씻어주고 기도와 평화의 인사를 나누며 식사도 같이 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이야기가 ‘전설따라 삼천리’가 되었다.

가난에 대해서 이야기하거나 학술 세미나를 하고 청빈서원을 하면 무엇하나? 가난한 사람들이 발도 못 붙이는 곳이 수도원이 되었는데! 수도원의 높은 문과 담을 허물어야 한다.

수도원의 거대한 시설과 도서관, 낙원 같은 정원을 사람들과 공유해야 한다. 도둑도 들고 손해 보는 일도 생기며 신변을 위협하는 사람도 들어올 것이다. 그러나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겠나? 더 아름답고 뜻있는 가치가 있는데 무엇을 두려워 하는가?


참수도자의 모습

하느님 섭리에 온전히 맡기는 수도자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돈 걱정이나 하는 수도자가 되지 말자.

참새 한 마리도 하느님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고, 들꽃들도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보다 화려하게 꾸미시는 분이 하느님이시다. 그분께 온전히 의지하며 청빈서원을 한 수도자의 입에서 돈타령이 웬 말이냐?

그런 걱정이라면 차라리 사회에서 돈이나 벌지 왜 수도자가 되었는가? 하느님께 온전히 의지하는 수도자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야 한다. 그래야 수도자들을 통하여 사람들이 하느님의 현존을 믿지 않겠는가?

낭비와 사치를 하지 않아야 한다. 수도자가 값싼 물건을 사용한다고 흉볼 사람은 아무도 없다.

수도자는 하느님의 현존을 존재로 증명하는 사람이다. 하느님 덕택으로만 살아가는, 절대적인 가난을 사는 수도자의 멋있는 모습을 통해 하느님을 보여주어야 한다.

* 유덕현 야고보 - 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 수도회 신부. 현재 이 수도회 원장을 맡고 있다.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원과 이탈리아 성 니콜라오대학 교회일치신학 전문대학원을 수료하였다.

[경향잡지, 2015년 10월호, 유덕현 야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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