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 (금)
(백) 부활 제6주간 금요일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강론자료

2016-06-05.....연중 제10주일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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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6-06-04 ㅣ No.2075

 

연중 제10주일 (다해)

1열왕기 17,17-24      갈라티아 1,11-19     루카 7,11-17

2016. 6. 5. 이태원

주제 : 사람을 살리는 것이 목적인 신앙(!)

개인에게 묻을 때 그 누구도 삶이 쉽다고 말하거나 내 삶에서 모든 일은 내 마음과 내 뜻대로 이루어진다고 말할 사람은 없지만,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삶을 무조건 어렵게만 여기면서 살지는 말아야 합니다. 그런 자세로 살아야 내게 다가오는 세상의 삶을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내 삶으로 긍정적인 의미를 남길 수도 있으며, 내 삶에 숨어서 내게 다가올 수도 있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오래된 격언이 담고 있는 의미도 같은 뜻입니다. 생각하고 말만 앞세운다고 해서 내 삶이 무조건 쉬워지는 것은 아니지만, 어렵다고 생각하고 힘들게 대할 때 그 삶에 쉬운 요소가 생기지 않는다는 이론과도 마찬 가지입니다.

 

삶에 대한 간단한 얘기는 아닌 내용으로 시작하는 오늘, 하느님은 과연 세상에서 우리 사람들이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겠는지 하느님의 뜻을 알아보고 실천할 것을 다짐할 시간입니다. 물론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찾는 것은 성경이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기를 바라실까요? 그리고 우리는 그 하느님의 뜻을 어떻게 이해하고 실천하는 사람이겠습니까? 사람이 배우고 익힌 지식으로,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의 의미를 다 해석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람이 이해하려는 태도는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가 드러낼 수 있는 삶에 대한 태도는 긍정적인 것도 있고 부정적인 것도 있습니다. 긍정적인 것이 내 삶에 좋은 영향을 남길 거라는 이론은 알고 있지만, 이론을 안다는 것과 실제로 내 삶이 그에 일치한다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사람이 생명을 누리고 살기를 바라시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오늘 열왕기상권의 독서와 루카복음서가 전하는 내용입니다. 하느님은 생명과 목숨을 인간에게 돌려주시는 이야기를 통해서 그 뜻을 드러냅니다. 이렇게 말을 시작하면, 사람도 다 그렇게 살지 않는가..... 하면서, 사람이 가진 뜻도 하느님의 뜻과 같거나 비슷하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개인에게 삶의 자세를 물으면 상상한 것과 똑같이 대답할 수는 있어도, 공동체나 집단으로 그 범위가 넓어지면 좋은 모습을 그 안에서 발견하는 것이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안타깝고도 딱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인이라는 마을에 가셨다가 과부의 죽은 아들을 만나셨고 그를 살려내시어 그가 그의 어머니와 다시 살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온 세상이 가물었던 때에 잘 피신해있던 어느 과부의 집에서 아들이 죽자, 엘리야예언자는 하느님께 간절한 청원을 바치고 과부의 아들을 살려내어 그가 어머니와 다시 살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이런 얘기를 말씀드리면, 우리가 원할 때마다 하느님께서 세상에 생명을 돌려주셔야 한다고 우길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삶에 대한 자세를 바르게 가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난 24일에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라는 법(2018-02-04시행)이 국회의원들의 결정으로 통과되었습니다. 이름이 길기 때문에 간단하게, 환자연명의료결정법이라고도 합니다. 명칭만 대해서는 어떤 내용이 담겨있는지 알아듣기가 어렵습니다. 이 법은, 1조에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보장하고 자기결정을 존중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적으면서, 사람에게 의학적인 치료를 중단하거나 중단을 요청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아주 묘한 내용을 담은 법입니다.

 

법이 가장 훌륭한 진실을 담을 것으로 우리는 흔히 생각하지만, 해석에 따라서 사람에게는 없는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사람이 정하는 법률의 맹점이기도 합니다. 이 시간에 생명에 관한 이러한 말씀을 드리는 것은, 세상에 살아있는 사람들 가운데 자기생명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 사람은 누구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법에서는 그 내용을 의료행위와 아주 묘하게 연결시켜서 특정한 시간이 되면 죽을 수 있는 시간을 내가 선택할 수 있고, 의사는 그대로 실행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것이 신앙의 정신과 충돌한다고 말하는 것이고, 이 법은 사람을 존중하는 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세상에서 언제까지 살아야 하고, 언제까지 살 수 있겠습니까? 개인이 그 시간을 정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고통때문에 내 의지로 삶의 길이를 짧게 정할 수 있는 권한이 사람에게는 없다는 것이 교회의 정신입니다. 사람더러 고통을 더 많이 당해야 하는 것이 교회의 정신이라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특정한 시간에 죽을 수 있다는 권리를 말하는 것보다는 사람이 삶의 의미를 더 충실히 드러내려고 애써야 한다는 것이 삶을 대하는 우리의 올바른 태도일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람에게 살 권리를 말하는데, 인간은 그에 반하여 죽을 권리를 말하는 세상이 된다면, 우리는 세상에서 어떤 기준을 따라 살아야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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