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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가톨릭 문화산책: 영화 (6) 맨 오브 스틸 - 대중 문화 속 하느님 구원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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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8-13 ㅣ No.690

[가톨릭 문화산책] <28> 영화 (6) 맨 오브 스틸(Man of Steel) - 대중 문화 속 하느님 구원 역사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악 물리치는 '구원자' 그려


맨 오브 스틸(Man of Steel, 2013)
감독 : 잭 스나이더
상영 시간 : 148분
장르 : 액션ㆍ모험ㆍ판타지ㆍSF
등급 : 12세 이상


과학자들은 지구에 위기가 찾아왔다고 경고한다. 오존층이 파괴되고, 열대림은 소멸하며, 지구 온난화와 산성비 등 가시적 변화가 지구촌 도처에서 나타난다. 남극과 북극해를 뒤덮은 얼음은 예상보다 빠르게 녹아 해수면이 점점 상승한다. 홍수와 가뭄, 혹한이 정상적 기상 흐름을 잃은 지 오래다.

근대문명의 발달로 사용가치보다는 교환가치가 부상했고 자본과 권력은 신자유주의를 낳았다. 생명윤리를 외면한 유전자 조작과 생명 복제라는 비윤리적 생명공학이 현대 과학문명의 괴물로 자리를 틀고 있다.

블록버스터 액션 영화인 '맨 오브 스틸'에서 말하고자 하는 파멸된 크립톤 행성 이야기는 이런 맥락에서 읽어내야 할 경고가 아닐까 싶다.


줄거리

무차별적 자원 개발로 멸망 위기에 처한 크립톤 행성. 이 행성 최고의 과학자 조엘은 그래서 갓 태어난 아들 칼엘을 지구로 보낸다. 자신의 존재를 모른 채 지구에서 클라크라는 이름으로 자란 칼엘은 남다른 능력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소외를 당한다. 하지만 아버지로부터 자신의 탄생과 성장 과정의 비밀을 듣게 되면서 혼란에 빠진다.

 

- 사제를 찾아가 고민을 털어놓는 칼엘.

 

 

한편 크립톤 행성의 반란군 조드 장군은 파괴된 행성을 다시 재건할 수 있는 모든 유전자 정보가 담긴 코덱스(codex)가 칼엘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그를 찾아 부하들을 이끌고 지구에 온다. 이제 칼엘은 자신을 외면하던 사람들이 사는 지구의 보루가 돼 최강의 적 조드 장군과 피할 수 없는 운명의 전쟁을 시작한다.

 

 

새로운 시작
 
영화는 한 생명이 태어나는 장면에서 비롯된다. 수백 년 만에 산고를 겪으며 자연출산한 아이는 엘(EL) 가문의 아들이었다. 이름은 칼엘(Kal EL). 아버지 이름은 조엘(Jor EL)이었다. 'EL'은 엘로힘의 고대어로, 하느님과 같은 보통 명사이며 일반적으로 신성(神性)을 뜻하고, 동시에 고유명사로서 단 한 분뿐인 하느님을 지칭하기도 한다. 조엘과 칼엘은 하느님을 은유한다.

크립톤인들은 행성 표면의 자원을 모두 고갈시킨 후 그것도 모자라 행성의 중심핵까지 파내려가 결국 행성이 붕괴직전까지 간다. 이같은 급박함에도 조엘은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크립톤 종족을 유지하기 위해, 지구인들이 자신의 행성과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아들을 지구로 보낸다. 크립톤 행성의 파괴는 오늘날의 생태계와 환경호르몬으로 죽음의 위기를 겪는 지구를 보여주는 비유(metaphor)이기도 하다.

조엘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칼엘에게 말한다. "가슴의 'S' 마크는 '엘'가문의 상징인 '희망'을 의미하지. 그 안에 믿음이 있어. 선해질 수 있다는 믿음을 네가 그들에게 가져다 줄 수 있음을 믿어라"하고 말한다. 어머니 라라도 칼엘에게 이보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달라고 한다. 새롭게 재생될 믿음과 희망을 암시하는 시작이다.

 

- 크립톤 행성에서 몇백 년 만에 자연 출산을 한 칼엘의 부모 조엘과 라라.

 

 

공존의 길 

크립톤 행성의 대장 조드는 크립톤 행성만 살리는 데 목숨을 건다. 그는 힘을 앞세워 살상과 반란의 칼을 휘두른다. 조드는 자신의 종족을 구하고 영원히 번영하기 위해 열등한 혈족은 제거하고 우열족만을 살리려 한다.

한편 북극에서 만난 칼엘에게 조엘은 이렇게 말한다.

"10만 년 동안 번영했었지…. 기적을 일궈냈던 거지…. 인위적으로 인구 조절을 했고, 아이들은 사회에서의 역할이 정해졌지. 노동자와 군인, 지도자 전부 말이야. 네 어머니와 나는 뭔가 중요한 걸 잃었다고 생각했지. 선택의 자유와 기회의 평등, 소중한 가치를…."

태어난 아이가 자신의 운명을 선택할 수 있다는 믿음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 칼엘이라고 말한다.

조엘은 모든 생명체의 공존, 크립톤 종족과 지구인, 모두의 중요성을 칼엘에게 말한다. "넌 크립톤의 자식이자 지구의 자식이기도 해. 네가 원한다면 두 세상의 자식이 되어 다오." 그리고 두 종족 간에 다리가 돼 구원자의 역할을 하길 바란 것이다. 지구인들은 또한 거대 문명의 지배 속에서 충분히 폭력적이었고, 생태계를 파괴한 결과로 멸망 위기를 겪고 있다. 새로운 지구 건설은 모든 생명체가 함께 나누고 누리며 숨 쉬는 세계여야 한다는 메시지를 그는 던진다.

칼엘은 캔자스 주 스몰빌에 내려와 클라크라는 이름으로 산다. 신적 능력을 간직하고 있지만, 자신의 때를 기다리며 소박한 지구의 삶을 지구 부모에게 습득한다. 지구 아버지 켄트는 아들이 감정을 절제하고 분별력있게, 또 능력을 균형 있게 활용하라고 조언하며 신뢰로 동반한다.

그러나 칼엘은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왜 지구에 살고 있는지 의문을 품는다. 켄트는 클라크에게 칼엘의 현존 자체가 기적이고, 지구 외에도 생명체가 존재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해준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이유를 알게 될 때를 기다리게 한다. 열등한 인종도, 우열한 인종도, 심지어 미생물까지도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칼엘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때가 도래해야 함을 말한다.

 
새로운 세상을 위한 투신


- 지구 아버지 켄트에게 감정 절제와 분별력, 능력의 균형 있는 활용 등에 대해 배우는 칼엘.

 

 

칼엘은 자신의 초능력을 감추고 살아가지만 위험에 처한 약자들을 위해 흘러넘치는 사랑을 숨기지 못한다. 통학버스가 강에 빠지자 어린이를 구해 주고, 유조선이 폭발하자 초능력으로 철근을 막아낸다. 그의 사명은 악만 빼고 누구든지 살리는 일이다.

드디어 그의 때가 왔다. 칼엘은 북극에 숨겨진 크립톤 비행선에서 아버지 조엘을 만나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한 뒤 그의 눈빛과 몸에서 초능력을 감지한다. 이때 조드 장군이 지구를 찾아와 크립톤 행성의 유전자 정보가 담긴 코덱스를 24시간 안에 찾아오라고 명령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구를 멸망시키겠다고 위협한다. 이 급박한 상황에서 칼엘은 "넌 평범하지 않아. 언젠가 선택의 날이 올 거야"라는 아버지의 말을 떠올린다.

칼엘은 신부를 찾아가 자신의 번민을 털어 놓는다. 등 뒤로 보이는 겟세마니 예수님 그림은 고뇌하는 칼엘의 심정과 겹치는 상징이다. 신부는 오로지 믿음에 따라 행동할 것을 권한다. 칼엘은 지구와 인류를 위해 투쟁할 것을 결심한다. 둘 중 하나가 반드시 죽어야 하는 결전에 나선다. 싸움 중 조드가 칼엘에게 한 말을 기억해보자. "네가 받아들인 인간들을 고통받게 해 주마. 인간을 그렇게까지 사랑한다면 그들 죽음에 눈물이나 흘려." 불을 뿜어대는 악의 상징이다. 칼엘은 죽어가는 인간을 바라보며 그의 말대로 눈물을 흘린다. 천신만고 끝에 칼엘은 승리한다. 여기서 마지막 장면의 중요성을 말하고 싶다. 평범하지 않는 메시지가 담겨 있음을 주시해야겠다.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는 칼엘의 모습. 드러나지 않지만 누룩과도 같은 존재, 오늘날 구석구석에서 선을 퍼뜨리는 또 다른 우리 중의 누구를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맨 오브 스틸'은 전형적인 미국 블록버스터 액션 영화다. 따라서 미국적 강인함과 불굴의 영웅상을 연출했다. 이 영웅상은 타 문화에 대한 개방과 위기를 극복하려는 미국의 노력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된 메시지가 도드라진다. 그래선지 웅장하고 화려한 서사 구조와 극적인 장면들은 다소 지루해 보이기도 하고, 무자비하게 그려진다. 진정한 관용이 어디쯤에서 발휘돼야 할지 묻고 싶어지는 부분이 적잖은 영화다.

그룹대화
1. 생명공학을 앞세워 파괴되는 지구 환경과 유전자 조작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2. 나는 주체적으로 지구 위기를 막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나?
3. 유전자 조작을 막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나?

성경구절
"나는 또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첫 번째 하늘과 첫 번째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더 이상 없었습니다"(묵시 21,1).

[평화신문, 2013년 8월 4일, 이복순 수녀(성 바오로딸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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