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2일 (일)
(백)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강론자료

5월 26일(수)-부활 7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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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4-05-25 ㅣ No.658

부활 7 주간 수요일

 

        사도행전 20,28-38        요한 17,11ㄴ-19

    2004. 5. 26. 퇴계원.(석탄일)

주제 : 미래를 보는 서글픔 (2)

 

우리는 삶에서 미래를 알고 싶다고 말하면서 실제로 그에 상응하는 행동을 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어제 미사 시간에도 미래를 보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드리기는 했습니다만, 오늘 독서와 복음이 내용도 어제의 내용에 이어지는 것입니다.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곳곳에서 불러들인 원로들을 앞에 두고 어떤 자세로 살아야할 것인지를 이야기합니다.  요즘의 사람들은 미래를 알고 싶다고 하면서 내게 어떤 행복이 다가올 것인지 그 일에 관심이 더 많지만, 미래를 이야기하는 바오로 사도의 생각은 그와는 달랐던 듯합니다.  각 지방에 퍼져있는 교회들을 위하여 걱정하는 자신이 예루살렘으로 가고 나면, 각 교회들이 겪을 혼란을 미리 예견합니다.  그것을 겪을 책임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사나운 이리떼가 양떼들 사이를 마구 해칠 것인데, 책임자들은 어떤 계획을 세우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듣습니다.  이런 내용이라면 아마도 미래를 알고 싶은 마음이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미래를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이 정상적인 일은 아니었듯이, 그렇게 듣는 미래에 대한 사정이 우리에게 오지 말라고 하는 것 역시도 정상적인 자세는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실제로 미래가 어떤 모양일지 모릅니다.  점쟁이가 복채를 받고 우리의 미래를 이야기해주어도 그의 말이 정확하게 말 그대로 우리 삶에 그대로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사정을 안다면 우리가 미래란 현재와 연결된 것이라고 말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이 나를 미워한다면 그 미움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거나 그 미움의 강도를 약하게 만들 방법을 찾는 것이 현실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입니다.  수난을 앞두고 하느님께 바치는 대사제의 기도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현실에서 도망치기를 원하지는 않습니다.  현실에서 도망친다고 바라볼 수 있었던 미래가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는 것은 아닙니다.

 

미래의 모습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현실과 연결될 거라고는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좀 더 나은 미래를 원한다면 현실에서 좀 더 큰 정성을 보여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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