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일)
(백) 부활 제5주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수도 ㅣ 봉헌생활

봉헌 생활의 해, 완전한 사랑21: 트르와 사랑의 성모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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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10-11 ㅣ No.542

[봉헌 생활의 해 - 완전한 사랑] (21) 트르와 사랑의 성모 수녀회

우리 사회 그늘진 곳을 밝게 비추는 빛으로



위기 가정 찾아가는 사복 수녀들

전국에 거센 빗줄기가 내린 1일 오후. 수녀 두 명이 폭우를 뚫고 길을 나섰다. 청주 시내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사는 한 가족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뭐 이런 걸 가져왔어~ 그냥 오지!”

이명자(가명, 88) 할머니가 수녀들이 바리바리 챙겨온 사과와 강냉이를 보며 말했다. 버스라도 타려면 2㎞를 걸어가야 하는 깊은 산골. 이곳까지 찾아온 수녀들이 반가우면서도 할머니는 괜히 왜 왔느냐는 핀잔부터 줬다. 강 데보라 수녀가 대청마루에 철퍼덕 앉으며 말했다. “할머니 예쁜 얼굴 보려고 왔지~.” 강 수녀의 살가운 말에 할머니와 며느리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수녀들이 찾아간 이명자 할머니댁은 3대가 함께 사는 곳이다. 며느리의 우울증과 손자들의 정서 불안으로 청주시에서 위기 가정으로 분류했다. 수녀들은 한 달에 2~3번 이곳을 방문해 가정의 어려움을 살핀다. 엄마가 우울증약은 잘 먹고 있는지, 아이들이 학교생활은 잘하는지, 할머니의 독감 주사부터 아이들 교복까지 수녀들이 챙기지 않는 것이 없다.

“할머니는 저희가 수녀인지도 몰라요. 수도복도 안 입는 데다 종교적인 얘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거든요. 복지기관에서 나온 사람인가 보다 하시죠.” (김민경 수녀)

트르와 사랑의 성모 수녀회는 가정과 교회 사이에서 ‘가정 사도직’을 수행한다. 알코올 중독, 자살, 폭력 등 아픔이 있는 가정이라면 어디든 수녀들이 달려간다. 청주의 슬럼가에서 아동과 청소년들을 돌보던 것에서 시작해 지금은 위기 가정들을 ‘찾아다니는 서비스’로 만나고 있다.

수녀들은 말동무가 필요한 이에겐 벗이 돼주고, 먹을 것이 필요한 가정에는 음식을 가져다준다. 이를 통해 더 나아지는 가정도 있고 그렇지 않은 가정도 있지만 이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가난한 이들과의 ‘동반’이 수녀들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강 데보라 수녀는 “하느님 앞에서 우리는 모두 가난한 사람이기 때문에 가정 방문을 할 때도 누구를 도우러 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면서 수녀들은 그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만난다.


지역 사회 속에서 수도회 영성 드러내

“정말 수녀님 맞아요?”

수녀들이 자주 듣는 말 중 하나가 이것이다. 씩씩하고 유쾌한 모습에 ‘정말 수도자가 맞느냐’는 질문을 받는 것이다.

청주의 한 병원에서 간호 사도직을 수행하는 김혜영 수녀가 일화 하나를 들려줬다. “제가 간호사로 병원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됐을 때, 어떤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우리 병원에 수녀가 한 명 있다는데 도통 누군지 모르겠네. 선생님은 알아요?’”

나중에 김 수녀가 수녀라는 것을 알게 된 직원은 몇 번이나 되물었다고 한다. 이렇게 밝고 활기 넘치는 수녀는 처음 봤기 때문이다. 수녀라면 조용하고 엄숙한 줄만 알았는데, 김 수녀의 모습은 자기 생각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렇다고 수녀들이 수도자로 살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자신을 드러낼 뿐이다. 수도자라면 그 삶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느껴진다는 것을 수녀들은 알고 있다.

김 수녀는 “의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선생님들이 평소에는 동료로 일하다가도 힘든 일이 있으면 저를 찾아온다”며 “저의 모습에서 수도자의 기운이 느껴져서가 아닐까 싶다”고 설명했다.

수녀들은 청주시 모충동의 ‘트르와 가정방문센터’에서도 수녀회의 영성을 드러낸다. 지역 주민들은 언제든 이곳에 찾아와 수녀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는 자활의 기회도 준다. 가정방문센터에서 지역 여성들의 미술 치료를 담당하는 김은경(55)씨는 “어려운 이들과 함께하면서도 밝고 유쾌한 수녀님들의 모습에 잠깐만 일을 도와주려고 왔던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면서 “불교 신자인 제가 수녀님들과 지내면서 점점 수녀님들과 닮아가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수녀들은 가정방문센터 옆집에 사는 스님과도 한가족처럼 지낸다. 서로 마음을 연다면 상대방의 종교나 직업, 가정환경과는 상관없이 인격적인 만남이 가능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다.

수녀들은 오늘도 자신의 자리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전한다. 이 발걸음으로 세상이 조금이라도 따뜻해지기를 바라며.


르와 사랑의 성모 수녀회는

트르와 사랑의 성모 수녀회는 프랑스 폴 세바스티앙 밀레(1797~1880, 사진) 신부가 신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만든 수도회다. 당시 프랑스는 산업혁명과 프랑스 대혁명, 계몽주의를 거치면서 실업과 질병 등으로 가정 공동체가 해체됐다. 특히 아픈 사람들이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없어 가정 전체가 흔들리는 상황이었다.

가정 공동체가 흔들리면서 사람들의 신앙까지 흔들리는 것을 목격한 밀레 신부는 가정과 교회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해줄 수도회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1840년 3월 25일 트르와 사랑의 성모 수녀회를 설립했다. 수녀들은 밤낮으로 고통받는 가정을 찾아가 그들을 돌보며 가정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환자 간호뿐 아니라 가정의 의식주, 신앙생활까지 깊숙이 들어가게 된 수녀들은 프랑스뿐 아니라 서유럽, 북아프리카, 북미 곳곳으로 파견됐다.

2002년 10월 청주교구에 진출한 수녀회는 현재 청주 지역에서 12명의 수녀가 활동하고 있다. 2003년 위기 아동과 청소년을 위한 공부방 ‘사랑의 울타리’를 시작으로 2008년에 수도회의 고유한 영성을 따르는 ‘트르와 가정방문센터’를 개원했다. 2009년에는 청주교구 산하 여성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인 ‘모퉁잇돌’을 만들어 우리 사회 소외된 이웃을 돕고 있으며, 간호사 수녀들이 병원에서도 사도직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평화신문, 2015년 10월 11일, 김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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