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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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종이책 읽기: 키릴 악셀로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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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8-16 ㅣ No.179

[김계선 수녀의 종이책 읽기] 키릴 악셀로드 신부


“우리가 생활 속에서 잃어버린 삶은 어디에 있는가? / 우리가 지식 속에서 잃어버린 지혜는 어디에 있는가? / 우리가 정보 속에서 잃어버린 지식은 어디에 있는가?” T.S. 엘리엇의 ‘바위’라는 시이다. 엘리엇은 이 시에서 20세기의 지혜와 지식과 정보가 우리를 하느님에게서 멀리 떼어 놓았다고 비판한다. 오늘날 우리 시대에 꼭 맞는 말이다. 그러나 태어날 때부터 청각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던 키릴 악셀로드 신부는 그의 책 「키릴 악셀로드 신부」에서 이러한 것들이 그에게는 정반대였다고 쓰면서 지혜, 지식, 정보 등이 삶을 얼마나 윤택하게 하고 하느님께 더 가까이 데려다준 선물이었다고, 그것이 없었다면 하느님의 부르심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고 사제가 되지 못했을 것이며, 하느님의 이름으로 평생 봉사하지 못했을 거라고 고백하고 있다.

내가 「키릴 악셀로드 신부」를 처음 만난 것은 6월초였다. 신간 코너에서 관심을 끄는 한 줄이 있었다. ‘세계 최초, 세계 유일의 시청각 장애인 사제가 직접 쓴 자서전’이라는 부제였다. 그리고 얼마 후 그분이 한국을 방문하여 텔레비전 프로그램 ‘아침마당’에 출연했던 동영상을 지인이 보내왔다. 참 단순하지만 인상깊게 보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청각 장애인 사제 박민서 신부님이 그분과 촉각 수화와 영어 수화 통역을, 이창원 신부님의 우리말 수화통역을 보면서 촉각 수화도 처음 보았지만 신부님 세 분이서 수화로 대화를 나누고 이것을 또 통역하여 시청자에게 다가가는 아주 감동적인 강연이었다. “이 세상에 할 일이 있다. 나도!”라는 제목처럼 청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희망을 위해 열심히 일하시던 중에 시각마저 서서히 나빠져서 실명하게 되며 이 시련으로 엄청난 좌절과 원망을 하게 되지만 그 장애로 인해 도움이 꼭 필요한 이를 이해하라는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며 장애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한다고 하는 그를 만난 사람들은 다 감동에 젖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정통파 유다인인 그의 부모는 아들이 청각 장애를 가진 것을 세 살 때 알게 된다. 그뒤 그는 가톨릭 성 빈센트 농아학교에서 새로운 교육을 받게 되는데, 농아학교에서 받았던 것은 교육뿐만 아니라 수녀들의 따뜻함과 사랑, 관심과 통교였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소명을 깨닫고 찾아가는데 기초적 역할을 한다. 종교를 초월해서 여러 가지로 소외되고 교육의 혜택에서 떨어져 있는 청각 장애인들을 위해, 그리고 뒷날 시청각 장애인들을 위해 하느님이 자신을 부르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마침내 부르심에 응답한 것이다.

그가 청각 장애인도 신부님이 필요하냐고 조심스럽게 그의 친구 로버트에게 묻고 ‘그렇다.’라는 답변을 들었을 때 그는 랍비가 되고 싶었던 좌절된 꿈이 가톨릭 사제로 부르시는 강한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고 개종을 한다. 그의 개종은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근본적인 변화나 결별이라기보다는 새로운 경험의 연장이자 유다 신앙의 꽃이 만개한 것으로 여긴다. 마치 예수님의 제자들과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경험했던 것처럼. 유다인 조상들과 하느님의 관계에 대한 체험에 뿌리를 두고 하느님 사랑이 경계가 없이 보편적이라는 ‘가톨릭’안에서 꽃피운 것을 어찌나 감동적으로 이야기 하는지 그가 예수님과 같은 동포라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리스도교는 지평을 넓혀 주고, 배타적이기보다는 포용적인 새로운 형태의 영성과 친교로 통하는 문을 열어 주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제 신실함이라고 고백한다. 신학교에 들어가서 한동안 인연을 끊고 살았던 어머니와 다시 만나고 유다인의 전례인 금요일 키두쉬를 지내는 허락을 받고 진정으로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더 많았다는 것을 말한다. 유다인 어머니가 외아들을 하느님께 바치는 이야기는 성경에 자주 나온다. 그의 어머니도 그를 기꺼이 사제로 하느님께 바친다. 마치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처럼. 후에 교황 바오로 6세를 알현했을 때 교황은 특별히 어머니께 존경을 표하며 가톨릭교회에 선물을 바쳐서 감사하다고 전한다.

사제가 되기 위한 길은 사실 험난하기만 했다. 무엇보다도 그가 부모님과 통교가 되지 않았을 때 느꼈던 좌절감과 소외, 고통을 똑같이 느꼈다. 수업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나중에는 강의록으로 혼자 독학하는 방식으로 신학교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사제가 된 그는 킹 윌리엄스 타운 근처의 세인트 토마스 흑인 농학교를 시작으로, 당시 인종차별정책으로 어려움을 겪던 남아프리카의 흑인 청각 장애인들을 위해 학교를 세우고 그들의 고통에 함께 한다. 그 후 공동체 삶을 살 때 기쁨을 느끼는 자신의 성향상 수도생활이 적합하다고 여겨 구속주회에 입회한다. 1980년 망막 세포 변성증으로 곧 실명하게 된다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고 2000년에 완전히 실명하면서 그는 크나큰 상실과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는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고 화가 났고 완전히 길을 잃은 느낌이었지만 새로운 여정의 시작을 실감했고 그 여정은 오로지 신앙의 힘으로만 걸어야 했다고 밝힌다.

“제가 그토록 만족스러웠던, 그 많은 나라의 청각 장애인들과 함께 했던 제 사업을 박탈당한 것 같았습니다. 저는 완전히 길을 잃은 느낌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청각 장애인이 아니라 시청각 장애인이 되어 감에 따라 제 공동체, 청각 장애인 공동체에서 멀어지는 듯했습니다. 그 모든 것이 제가 감당하기에 벅차 보였습니다. ‘이런 내가 어떻게 사제직을 계속할 수 있단 말인가?’ 사실, 그것은 새로운 여정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여정은 오로지 신앙의 힘으로만 걸어야 했습니다.” 시청각 장애인들을 위한 봉사의 길을 다시 시작한 그는 “볼 수 없다는 것, 들을 수 없다는 것은 나 자신 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을 위한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나의 장애를 통해 하느님은 모든 사람의 고통과 서로 다른 여러 어려움들을 격려하고, 또 그 고통을 통해 우리를 이끌어 준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라고 고백하는데 이 강력한 힘은 절망을 고통의 회피 수단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을 끌어내 새로운 희망으로 살게 한다. 그의 아름답고 소중한 삶을 이끌어주신 분은 우리의 삶도 소중하고 아름답게 이끌어 주시는 하느님이시니까.

[월간빛, 2013년 8월호,
김계선(에반젤리나 · 성바오로딸수도회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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