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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종이책 읽기: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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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12-17 ㅣ No.190

[김계선 수녀의 종이책 읽기]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라는 말을 들을 때 의미가 다른 두 가지 해석을 해볼 수 있다. 하나는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엄청난 사건 사고로 혼란을 가져오면서 하느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들 때, 또 하나는 감히 상상도 못했던 큰 은총이 주어져 그저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 때이다. 모든 것이 공짜처럼 거저 주어진 은총 앞에서 감읍해서 드리는 저자의 고백은 후자이다.

일본의 나가사키에서 일어난 엄청난 일 앞에서 아주 겸손하면서 큰 사랑으로 세상을 품어 안은 나가이 다카시 박사의 책을 읽었을 때 진정 그리스도인의 모범을 그에게서 발견하면서 ‘아, 우리나라에 어디 이런 분 없을까?’ 하고 고개를 돌려보던 일이 엊그제 같다. 요셉의원에서 가난하고 병든 이를 예수님처럼 돌보던 선우경식 박사가 하늘나라로 가시던 날도 또 하나의 예수님이 이 세상을 떠나는구나 하고 한편으로 마음 아팠던 것은 남아있는 그의 손이 아직도 필요한 사람들을 보면서이다. 그런데 반갑게도 여기 또 하나의 예수님을 만나게 해주는 책을 만났다. 바로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라는 책이었다.

가톨릭을 처음 대하는 사람들에게 쉽게 가톨릭을 소개하면서도 감동을 주고, 재미까지 있는 책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는 초등학생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쉬우면서도, 어느 사이 그 속에 깊이 빠져들게 하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들로 채워져 있으며, 또 가슴이 뜨거워져 함께 눈시울을 붉히는 감동을 안겨주는 책이다. 그래서 한 번 잡으면 끝까지 읽게 만드는 것은 저자 안득수 박사의 삶과 신앙을 이끌어 오신 분이 바로 성부·성자·성령이신 성삼위 하느님임을 알게 해주는 진정성 있는 신앙체험기이기 때문이다.

국립대학교 부속병원 병원장이 될 때까지 그저 평범한 신앙인이자 의사였던 저자는 하루 아침에 병원장이 되면서 성경을 그저 좋은 책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말씀이 생생이 살아 움직이면서 쑥쑥 굴러 들어오는 체험을 하게 된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실험과 통계로 입증하고, 수천 수만 번 되풀이된 경험을 차곡차곡 정리한 의학에 기초해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과학도인 그에게 종이에 인쇄된 성경 속 글자가 왜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은지 근거를 대며 설명해보라면 속수무책 설명할 길이 없을 터이지만, 그 때의 그 떨림과 움직임이 너무도 생생하고 분명했기 때문에 잊을 수 없는 것이다. 마치 파스칼이 요한복음 17장을 읽다가 너무도 강렬한 성령체험을 하고 신앙고백문을 쓰지 않을 수 없었듯이 그의 성령 안에서의 삶은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병원장이 된 후 처음 맞이한 주일의 독서 이사야서를 그의 좌우명으로 삼는 모습에서, 또 그것을 실천하는 모습에서 저자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신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

교구의 성령쇄신봉사회 회장으로 27년 동안이나 봉사한 그에게 일어난 수많은 주님의 섭리와 은총에 대한 확신은 이 책을 읽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전달되어 온다. 그가 일하는 병원에서 성모님을 모시고 몇 안되는 신자들이 모여서 하는 기도모임은 점차로 사람들을 감복시키고 종교집회라고 감시하던 사람들마저 가톨릭 신자로 만들게 하는 그의 참 신앙의 실천적 삶은 이미 교구에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 정신적으로나 영적, 육체적으로 아픈 이들이 찾는 사람이 되었고 도움이 필요한 누구에게나 자신의 손을 먼저 내밀어 물리적인 치료뿐만 아니라 영적인 치유까지도 해주는 하느님의 사람이 되었다. 수많은 다양한 사람과의 만남도 우연처럼 보이고 해결되는 것도 정말 절묘하지만 그곳에는 참으로 주님의 섭리가 개입하고 있음을 보지 않을 수 없다.

또 하나의 사건은 위기가 닥칠수록 더욱 하느님께 의지하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는 그의 모습을 보게 해준다. 그 유명한 전주의 전동성당이 1989년 백주년을 맞았고 그 전 해에 그는 사목회장을 맡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성전 2층 회랑에서 불이나 귀한 성당의 천장과 지붕이 다 타버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망연자실 모든 신자들이 눈물과 걱정을 전화위복으로 바꾼다. 100년 성당의 낡은 곳을 손보는 대대적인 개선 보수작업을 위해 뛰어다니던 그에게 “주께서 하시는 일이라, 놀랍게만 보인다.”는 시편의 말씀이 그대로 들어맞았던 것이다.

너무 가난한 의대생이 천주교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으려고 세례를 받았지만 주님께서는 그를 전교의 큰 일꾼으로 쓰셨다. 완고한 유교집안이었던 그는 효심 지극한 장남이었다. 할머니를 위시해서 집안의 어른들을 주님께 이끌고 가정을 성가정으로 만들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전하여 주님의 자녀가 되게 하였다. 그리고 종교의 벽을 넘어 그가 진심으로 베푼 사랑은 ‘가장 보잘것없는 이에게 해준 것이 곧 나에게 해준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현실에서 그대로 살았던 한 그리스도인의 아름다운 삶을 보여준다. 병원에 실려 온 환자들, 특히 죽음을 앞둔 이들이 그의 사랑과 진실한 진료를 통해 하느님을 만나고 세례를 받고 하늘나라로 떠나는 일은 얼마나 많았던가. 깊이 신뢰하는 믿음 안에서만 볼 수 있는 사랑과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제 그는 죽어가는 환자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 임종환자들을 정성껏 돌보는 성바오로복지병원에서 일하며 환자가 인간으로서 마지막 순간을 잘 정리하고 떠날 수 있도록 동반해 주는 영혼의 의사로 일한다. 그리고 그가 사람들을 하느님께 데려다주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오는 사람들을 주님의 현존을 일깨워주는 수호천사로 보면서 기도한다. “언제나 저를 지켜주시는 수호천사님, 인자하신 주님께서 오늘 저희를 당신께 맡기셨으니 저희를 도우시고 인도하시며 다스리소서. 아멘.”

[월간빛, 2013년 12월호,
김계선 에반젤리나(성바오로딸수도회 수녀)]

* ‘김계선 수녀의 종이책 읽기’는 이번 호로 끝맺습니다. 그동안 유익한 책을 소개해주신 김계선 수녀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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