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8일 (수)
(백) 부활 제6주간 수요일 진리의 영께서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사목신학ㅣ사회사목

[노인사목] 어떤 꿍꿍이!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11-12 ㅣ No.898

[노인사목 이야기] 어떤 꿍꿍이!



작년에 노인사목 담당으로 발령을 받고서 제일 먼저 생각을 했던 것은 ‘교회가 노인들에게 베풀고 있는 것은 무엇이지?’였다. 물론 구원이나 희망 등의 신앙이 가져다주는 직접적인 내용들 말고서 말이다. 그래서 단편적인 일이긴 하지만 나라에서도 정해져 있는 노인의 날을 교구 차원에서 지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참가 대상은 본당 노인대학이나 다른 어떤 특정 모임에 속한 분들이 아니라 본당에서 원하는 모든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고서 말이다. 물론 그냥 많은 노인들을 초대해서 기분 좋게 하루를 지내는 펑퍼짐한 행사 치르기가 아니라 어떤 꿍꿍이(?)가 들어 있는 순수하지 못한 계획이었다고 고백한다.

작년에 처음 시작 할 때 생각했던 꿍꿍이란, 교구장님께서 참가한 노인들과 함께 미사를 드리면 참 좋겠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신앙인인 우리에게 더 없이 소중한 가치인 미사를 교구장님 주례로 노인들이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노인들이 흔히들 자랑삼아 하시는 말씀에는 “우리 본당 신부님이 우리를 위해 미사까지 드려 주시더라!”는 것이 있다. 신앙에 대한 교리라든지 신학은 잘 모르시더라도1) 미사가 신앙 생활의 중심에 있다는 것은 알고 계시기 때문에 당신들을 위해 드려지는 미사가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교구장님께서 직접 미사를 드리신다면 그 기쁨은 얼마나 더 할 것인가 상상하기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미사야 다 같은 미사지만, 흔히 ‘수험생들을 위한 미사’, ‘군인들을 위한 미사’, ‘병자들을 위한 미사’, ‘청년·청소년을 위한 미사’ 등 특별한 지향을 가지고 드려지는 미사들이 많다. 하지만 이제껏 ‘노인들을 위한 미사’라고는 들어 본 적도 없었다. 특별한 지향을 가지고 드려지는 미사가 많다면 평생 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당신들을 위해 미사가 드려진다는 것도 마땅한 것이 아닐까!

꿍꿍이는 이것만이 아니다. 두 번째 꿍꿍이는 점심 식사를 통해서 이루어지기를 바랐다. 무슨 말인가 하면 교회가 어르신들을 모셔서 대접한다는 각본이었다. 마치 본당에서 경로잔치를 벌여 음식과 즐거움을 대접하듯이 교회가 노인들을 잊지 않고 있으며 1년에 한 번이지만 대접해 드린다는 것을 전하기 위해서이다. 어느 모임에서든 먹는 것은 빠지지 않는다. 사실 노인들에게는 더 중요하다. 스스로 노년이라고 생각이 되면 신체적·정신적 노화로 인해 자존감이 떨어지게 된다. 예전에는 거뜬하게 했던 것을 지금 와서는 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해 무력감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려한 음식은 아니라 하더라도 대접을 받는다는 것은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교회가 그 분들에게 대접을 한다는 것은 마치 ‘당신들은 교회 안에서 소중한 분들입니다.’라는 것을 전달하는 방법이 되기를 염두에 두었다. 하지만 사실 1천 5백~2천 분께 한꺼번에 식사를 제공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노인이란 것을 고려하면 일단 장소가 문제다. 그리고 배식 또한 생각해야 할 부분이다. 그래서 작년에는 따뜻한 한우 소고기 국밥을 준비해서 대접하고, 거기서 생긴 문제들을 보완해서 올해는 도시락으로 대접을 해 드렸다. 이런 때 주위 비신자 어르신들을 초대해서 함께 참석한다면 그것 또한 전교가 아닌가?

나의 꿍꿍이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점심식사에 이어지는 행사는 ‘시니어성가 경연대회’이다. 작년에는 15개 본당에서, 올해는 12개 본당에서 참여를 했다. 성가 부르는 실력을 떠나 성가대회를 통해 마음에 전해지는 커다란 감동은 작년이나 올해나 다르지 않았다. 전해들은 바에 의하면, 대회를 준비하는 그분들의 열성이 보통이 아니란다. 한 번 연습하면 2-3시간은 기본이고 그런 연습을 보통 일주일에 2-3번씩 하신다니 어디에 내놓더라도 빠지지 않는 열성이라 할 것이다. 어느 할머니 한 분이 이런 말씀을 직접 하신 적이 있다. “신부님! 우리가 언제 사람들 앞에 서서 복장 맞춰 입고 성가 불러 보겠습니까?” 무대에서 지휘자의 지휘에 맞춰 준비한 성가를 부르시는 모습을 보면 마치 초등학교 학예발표회에서 긴장해서 준비한 것을 발표하는 어린이 같다. 그래서 그런지 무대에서 성가를 부르시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한편으로 귀여우시다. 어느 본당에서는 지휘자가 입을 크게 벌려서 노래하시라고 했는지 성가 부르는 내내 입을 얼마나 크게 벌리시던지….

준비 회의 때 봉사자들이 찬조 출연으로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소위 뽕짝노래 가수를 초대하자고 했다. 하지만 나의 세 번째 꿍꿍이와 달랐으므로 그 제안은 단칼에 거부되었다. 나의 의도란 ‘성가를 부르면서도 기분이 좋을 수 있구나.’를 느끼시도록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에서 반 이상 되는 본당은 악보 없이 아예 성가를 외워서 불렀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얼마나 수없이 참가곡을 반복해서 연습하셨을까? 그런 노력으로 준비되어진 대회의 의미가 한낱 대중가요가 가져다주는 일시적이고 얕은 맛에 빼앗겨서야 되겠는가 말이다.

이러한 세 가지의 꿍꿍이를 가지고 ‘교구 노인의 날’은 계획되었고 둘째 해가 지났다. 하지만 이런 꿍꿍이는 아직 진행 중이다. 즉 부족한 것이 많다는 것이다. 일을 하다 보면 의도하고 계획한 대본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삐걱거리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미사를 마치고 성모당에서 내려오는 곳에 봉사자가 배치되지 않아 다른 이가 수고를 해야 했다. 올해는 점심이 늦게 도착해 계획대로 분배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불평과 혼선을 빚었다. 사실 이러한 일은 사소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무엇이 더 큰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하면, ‘노인의 날’이라고 해서 노인들만 참석해야 하는가? 예를 들면 이렇다. 성가 경연대회를 하는데 본당에서 청년들이랑 청소년들은 응원하러 올 수 없는가? 혹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오랜 시간 수고하여 무대에 오르시는데 그 가족들은 꽃다발 하나 준비할 수 없는가? 손주들 발표 때는 모두 가시는데….

건강한 공동체란 어린이부터 연세 있으신 분들까지 모두가 어우러져 제 색깔을 낼 수 있는 공동체가 아닐까 생각한다. 서로서로 삶의 나눔을 통해 부족함이 채워져 보다 생기있고 건강한 공동체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자꾸 ‘생산인구’니 뭐니 하며 따지지 말고서 말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노인들이 가정과 공동체를 위해 하는 일들은 참 많다. 어떻게 비생산 인구라고 할 수 있는가?

1년에 한 번 있는 이 행사를 위해 올해도 수고하신 분들이 참 많으시다. 미사를 주례해 주신 하성호(사도요한) 총대리 신부님을 비롯해서 함께 하신 신부님들, 성체 분배를 도와 준 부제님들, 수많은 봉사자들, 아침 일찍부터 수고를 해 주신 운전기사사도회원들 등 모두에게 지면을 통해 감사드린다. 함께 해서 즐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1) 요즘은 평신도 교리신학원, 성경 공부 모임에 다니시는 어르신들도 많지만 일반적인 경우를 두고 하는 이야기이니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월간빛, 2015년 11월호, 박상용 사도요한 신부(대구대교구 노인사목 담당)]



2,067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