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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두 얼굴: 경파(京派)와 해파(海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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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9-13 ㅣ No.297

[전하라! 땅끝까지] 중국의 두 얼굴 : 경파와 해파



베이징 신학교와 상하이 신학교를 오가며 십여 년을 가르치다 보니 극명히 다른 중국의 두 얼굴을 보고 느끼고 알게 되었다. 중국을 대표하는 북방과 남방의 두 도시는 마치 두 나라가 있는 것처럼 말도 다르고, 먹는 것도 다르며, 생각도 달랐다. 북방의 문화와 남방의 문화로 대표되는 베이징과 상하이의 모습은 그렇게 중국의 다른 두 얼굴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중국의 근 · 현대사를 이해하는 핵심어 중하나가 경파와 해파라는 개념이다. 중국의 문화를 양분하여 구분한 말인데, 베이징의 ‘경파(京派)’와 상하이의 ‘해파(海派)’는 각각 중국의 북, 남 문화를 대표한다. 이 단어들은 지역감정과 경쟁심이 내포되어 있는 개념이다. 사실 베이징 사람들과 상하이 사람들은 서로 견원지간(犬猿之間)이다. 베이징 사람들은 북방인의 기질대로 실리보다는 명분과 체면을 중시하고 성격도 거친 편이다. 반면, 상하이 사람들은 남방인으로 실리를 최우선으로 여기며 부드러운 성격을 지니고 있다. 베이징 사람들은 상하이 사람들을 보고 돈만 밝히는 돈벌레라고 하고, 상하이 사람들은 베이징 사람들을 보고 가진 것 없이 허풍만 세다고 한다. 베이징이 군자의 도시라면 상하이는 신사의 도시라 하고, 베이징 사람들은 허풍이 세고 상하이 사람들은 쩨쩨하다고 서로 비꼬아 말한다. 베이징에서는 연줄로, 상하이에서는 계산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등 두 도시를 비교하는 말들은 넘쳐난다. 상하이와 베이징은 서로 제 잘난 맛에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렇듯 중국의 근 · 현대사를 이끌어 온 수레의 두 바퀴인 베이징과 상하이는 사뭇 대조적이다. 사람들의 기질, 사고방식을 결정하는 ‘문화적 유전자’가 다르고, 삶의 외부로 표현되는 ‘문화적 형태’ 또한 다르다.

한 국가의 정체성을 이해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두 요소를 꼽으라고 하면 그것은 바로 정치와 경제일 것이다. 중국의 정치를 알기 위해서는 베이징을 파악해야 하고, 경제의 흐름을 알기 위해서는 상하이를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북과 남의 차이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자연적 환경, 그 중에서도 강수량 때문일 것이다. 창장 강(長江 · 양쯔 강) 이북 지역 사람들은 물이 적은 건조한 기후로 인해 척박한 자연환경을 극복하면서 살아온 삶의 고단함이 쌓여 담백한 성격을 이룬 반면에 창장 강 이남 지역은 풍부한 강수량으로 인해 물산이 풍부하여 그에 따라 사람들의 성격도 온후한 편이다.

중국의 북방 지역은 베이징을 중심으로 하는 황하 이북을 지칭하는 것으로 동북 3성을 비롯하여 내몽고 자치구역, 신장, 산서, 섬서, 하북 지역, 산동 지역을 포함한다. 이곳의 기후는 차갑고 토지는 척박하다. 인심 또한 자연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개척적이며 담백하고 의지가 강하다. 그래서 북방 사람들은 자신들을 진정한 ‘사나이’라고 말하곤 한다. 마오쩌둥이 만리장성에 올라 일필휘지를 날렸다. “불도장 성비호한(不到長 城非好漢)”, ‘만리장성에 오르지 못한 남자는 진정한 남자가 아니다’라는 의미이다. 술을 마실 때도 상하이 사람들은 고량주를 손톱만한 잔에 따라 조금씩 홀짝거리지만 북방 사람들은 먼저 맥주 컵에 52도나 되는 배갈을 콸콸 부어 단숨에 들이킨 다음에야 본격적인 술자리를 시작한다. 북방 지역에서는 기백, 야성미, 용맹함 등이 최고의 덕목으로 추구되다 보니 아무래도 경제적인 관점보다는 정치적이고 중후하며 체면과 명목을 중시하는 경향이 돋보인다. 실제 중국의 역사를 이끌어 간 영웅과 호걸들을 보더라도 대부분 북방에서 나왔으며, 그들이 역사의 큰 축을 이끌고 갔다. 그러나 그들의 영웅주의는 상하이 사람들의 눈에는 참으로 속 빈 강정 같이 싱거운 녀석들로 보이는지 가소롭게 쳐다볼 뿐이다.

이에 반해 남방 지역은 황하의 아랫동네를 말하는데, 하남, 강서, 복건, 사천, 강소, 광동 지역을 아우른다. 드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고, 해안을 접하고 있어 물산이 풍부하고, 또 물류의 흐름이 빠르다 보니 남방인들은 일찍부터 경제 개념에 밝았고 장사 기질이 농후했다. 청나라 말 외세의 압력에 굴복하여 나라를 개방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후 자연스레 자본주의와 실용주의를 몸에 익히면서 국제경제에 눈을 뜨게 되었다. 특히 상하이, 복건, 광동, 홍콩 등지는 근면하고 정직하면서도 개인의 명리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는 극히 실리적인 면을 갖고 있으니 중국의 거부들 모두가 중국의 남방 출신이라는 점은 당연한 결과이다.

상하이는 중국의 중심이며 세상의 중심으로 변모하고 있다. 불과 백 년 전만 해도 상하이의 지명은 ‘고기 잡는 통발’이라는 뜻인 후(?)였는데, 당시 상하이는 작은 어촌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상하이가 세계에 알려진 것은 아편전쟁 이후로,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국제도시로 변모하기 시작했을 때부터다. 그런데 ‘상하이’라는 지명 자체가 매우 시사적이다. 이 말은 ‘바다로 나아가자’(上은 동사로 쓰임)라는 뜻이다. 만리장성과 고궁이라는 네모진 울타리 속에 갇혀 자신의 정체성만 고집하는 베이징의 문화와는 달리 상하이는 1843년 개항 이후 발전을 거듭하여 이제는 전 세계의 이목을 한 몸에 집중시키고 있다. 베이징 사람들이 돈보다는 정치적 사안에 관심을 많이 두는 데 비해 상하이 사람들은 ‘귀족이 되기보다는 부자가 되는 꿈을 꾸고 싶다’는 태도를 보인다. 경파 문화가 보수적이며 자기중심적인데 비해, 해파 문화는 개방지향형이며 현실적이고 실용적이라는 특색을 지니고 있다.

문학에도 경파와 해파는 장르를 달리하며 발전해 왔다. 경파문학은 고향을 떠나 수도로 몰려든 사람들의 정신적 나그네의 입장을 통하여 고향에 대한 향수를 그려내는 표현들이 많다. 고향은 현실적 삶의 고통이 팍팍할수록 더욱 어머니의 이미지로 경파의 작품 속에 형상화되어 있다. 루쉰은 ‘고향’에서 머슴이 되어버린 옛 친구를 통해 잃어버린 고향을 반추한 바 있고, 심종문은 ‘변성’을 비롯한 향토문학을 선보여 고향의 냇가와 차밭에서 벌어지는 소수민족 남녀들의 사랑을 마치 황순원의 ‘소나기’처럼 청초하고도 순결한 꿈으로 그려냈다. 이에 반해 해파는 모더니즘적 방법으로 도시인의 고독감과 소외의식을 소설에 담았다. 일찍이 개항을 통해 꿈과 낭만의 도시로 변모한 상하이에서 그들은 도회의 다른 얼굴, 곧 탐욕과 경쟁, 도덕적 부패와 죄악 등을 보았고 그 속에서 소외되는 인간성을 파헤치려 하였다. 이러한 문학과 사상의 두 부류는 시대 속에서 각기 다른 가치관을 견지하였고 그것이 여러 가지 측면에서 두 도시를 각기 고유의 특색을 띄면서 공존하도록 만들었다.

언어와 생활습관, 사람들의 기질, 경제와 정치를 대하는 시각 등에서도 북과 남의 중국인들은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흔히 북, 남방 사람의 기질을 비교 표현하는 데 있어 사각형과 원형의 형상을 적용하는데, 북방인은 고지식하고 격식에 집착하는 ‘방(方 : 네모)’을 대표하고, 남방인은 변화에 민감하고 처세에 뛰어난 ‘원(圓 : 둥긂)’이라 말한다. 생긴 것도 동그스름한 얼굴의 남방계 상하이인들과 네모지고 조금 길쭉한 듯한 북방계형의 베이징인들로 구별된다. 중국 지식인들은 “중국 문화엔 네모의 방(方)과 동그라미의 원(圓)이 함께 있다”는 말을 곧잘 한다. 전자는 매사를 원칙과 계획대로 추진하는 ‘네모’를 숭상하는 북방을 말하고, 후자는 유연성과 임기응변에 능한 ‘원형’을 추구하는 남방을 말한다. 그래서인지 베이징과 상하이의 도시 외곽 순환도로도 베이징은 사각으로 돌리고 상하이는 원으로 돌렸다.

베이징의 전통 주택 양식인 사합원(四合院)은 명료한 위계질서를 가진 중국의 전통 주거 형태를 보여준다. 사합원의 중심에는 집주인이나 웃어른의 일상 거처와 사당이 있다. 이런 점에서 사합원은 전통 중국 사회를 지배해 온 유교의 가치 체계와 위계질서를 구현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주거 형태라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사합원은 황제의 궁궐에도 적용이 되는데 인공위성에서 바라본 자금성(紫禁城)의 모습은 무수한 사면체의 집합처럼 보인다.

후통은 베이징의 ‘담장 문화’인데 키를 넘는 수많은 담장들이 골목에서 골목으로 연결되어 있다.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북방인들의 심성을 드러내주는 문화의 표현이다. 십여 미터가 넘는 붉은 담이 쳐진 자금성은 후통의 전형이라 말할 수 있는데, 만리장성처럼 새외(塞外)를 배척하는 폐쇄성을 지니고 있다. 중국의 전통적인 관료들은 주로 베이징의 사합원에 살았는데 네모꼴 문화가 앞뒤가 꽉 막힌 관료주의와 형식주의를 대표한다면 바로 베이징의 관료들이야말로 수많은 네모들의 주인인 셈이다.

정치 세력에서도 베이징과 상하이는 확연히 구분된다. 태자당(太子黨)은 중국의 당 · 정 · 군의 원로나 고위 간부 자제들이 모여서 이루는 정치 세력으로 주로 베이징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한편 상하이방(上海幇)은 정치 이념보다는 경제에 중점을 두고 중국을 상하이처럼 발전된 모습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추진해 온 정치 세력이다. 대부분이 외국어에 능통하고 외교협상능력이 뛰어나며 중국의 개혁 개방 이후로 중국외교를 담당해 온 대표적인 지역 인맥이다. 베이징의 중앙 세력은 상하이방의 등각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항상 견제하려 든다. 베이징 올림픽을 할 때만 보더라도 베이징의 잔치 분위기에 비해 상하이에서는 찬국수 말아 문간에서 얼른 먹어치워야 되는 신세처럼, 달랑 축구 하나 그것도 중요하지 않은 경기를 두어 번 치렀을 뿐이다. 신문에도 베이징의 열띤 분위기에 심드렁해진 상하이 사람들의 모습이 다루어지기도 했다. 올림픽을 치루는 동안 상하이가 베이징으로부터 푸대접을 받았던 것이다.

그 외에 사상의 경우도 남과 북은 갈린다. ‘남방은 노자, 북방은 공자라는 남노북공(南老北孔)’이라는 말은 중국 사상의 지역적 차이를 남북으로 나누는 대표적인 표현이다. 북방은 당연히 통치자가 많아 유교의 논리인 대전통(大傳統)을 중시하여 왔지만, 남방은 민중 중심으로 도교적 삶인 소전통(小傳統)에 따라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방은 언제나 반골의 기질이 있다고 말한다. 또 모든 혁명은 남방에서 시작되는데 그 이유는 바로 민중의 종교적인 배경(민간신앙. 도교 등)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공자의 정신은 도덕적이고 원칙적이며 정통성을 띄기 때문에 방형의 정신에 가깝다. 반면 노자의 정신은 무정부적이고 민초적이기에 두루뭉실한 원형(圓形)에 더 어울린다. 불교가 중국에 유입된 이후 중국식으로 토착화하여 선종을 형성했는데, 이 역시 북남의 차이를 드러낸다. 북종은 점진적인 수양을 중시하는 점수설(漸修說)을, 남종은 성불을 중시하는 돈오설(頓悟說)을 주장하여 이른바 ‘남돈북점’이란 용어가 생기기도 했다. 북방은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수행을 중시하여 점수를 주장하는 반면 남방은 무정형의 수련속에 갑자기 득도하는 돈오적 성격이 진하다.

지금 중국에는 거대한 관개공사가 진행 중이다. ‘남수북조(南水北調)’라 이름 지어진 프로젝트인데 곧 창장 강의 물을 끌어 북쪽 지역에 공급하는 우공이산(愚公移山)과 같은 사업이다. 이 사업이 완성되면 물로 인해 구분 지어진 중국의 북, 남 문화에 큰 변화가 생길지 모른다. 그러면 경파와 해파로 구분 지으며 살아온 과거의 삶이 정리될 수 있을까? 신중국의 북방과 남방은 과연 소통을 이룰 수 있을지 기대해 본다.

[땅끝까지 제83호, 2014년 9+10월호, 김병수 대건 안드레아 신부(한국외방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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