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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하는 커피15: 커피 음용법이 생각으로 바뀌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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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8-23 ㅣ No.599

[사유하는 커피] (15) 커피 음용법이 ‘생각’으로 바뀌어야 하는 이유


커피 향미가 떠오르게 하는 생각을 좇아

 

 

커피는 신체에 작용하는가, 정신에 작용하는가?

 

커피가 백내장 발생률을 낮추고 미세 혈관 기능과 혈당 대사를 향상시켰다는 등 질병 치료에 도움이 됐다는 연구 결과들이 이어지고 있다. 항산화를 비롯해 항암, 항균 효과를 입증한 논문들도 인터넷 검색을 통해 쉽게 찾아진다. 반면 카페인을 지나치게 많이 섭취하면 골밀도 손실을 증가시키고 혈압 상승 및 혈청 지질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보고도 있다. 어쨌든, 커피가 신체에 작용하는 증거들이다.

 

커피가 정신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은 향기를 맡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만으로 간단하게 증명된다. 카페인이 심리적인 영향을 끼쳐 우울증과 자살을 예방하고, 집중력을 높여 업무능력 향상에도 긍정적이라는 보고는 더는 새롭지 않다. 거꾸로 커피의 과도한 섭취는 불안, 두근거림, 신경질을 유발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를 종합하면, 질문의 답은 “커피는 신체와 정신에 모두 작용한다”가 되겠다.

 

하지만 질문 자체에 좀 문제가 있다. 17세기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을 토대로 인간이 각각 독립적인 정신과 물질(신체)로 이루어졌다고 단정했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이원론적 전통을 계승한 심신이원론은 그러나 한 세대 뒤쯤 나타난 스피노자의 도전을 받았다. 스피노자에게 인간은 사유(정신)의 측면과 연장(신체)의 측면을 모두 가진 존재이고, 심신은 서로 동등하면서도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렇다면, ‘커피는 어떻게 신체와 정신에 영향을 끼치는가?’로 질문을 바꿔야 공평하다. 복잡한 철학적 사유를 단순화해 답을 찾아간다면, 커피의 특정 성분이 신체를 건강하게 만듦으로써 정신이 맑아지고 행복해진다는 메커니즘을 들 수 있다. 카페인이 중추신경의 시냅스에 물리적으로 작용해 전기신호를 만들어 냄으로써 에너지가 넘치는 기분을 유발한다는 식이다. 합리적이며 과학적인 설명으로 들리지만, 철학자들은 대체로 심신의 관계에서 이와는 반대쪽에서 설명을 시도한다. 커피가 정신에 먼저 영향을 줘서 신체 반응을 이끌어낸다는 관점이다.

 

플라톤은 관념적이며 이성적인 인간의 정신을 감각적이고 가변적인 신체보다 우월한 위치에 두었다. 데카르트 역시 사유(정신)가 신체(연장)에 대해 우월하다고 봤다. 위에 있는 정신이 신체에 영향을 주는 것이지, 아래에 있는 신체가 정신을 이끌 수는 없다는 게 이들의 관점이다. 신체와 정신이 동등하다는 스피노자의 심신일원론에도 정신이 신체를 이끈다는 견해가 들어 있다.

 

사실 우리는 일상에서 이를 체험하고 있다. 문장을 생각하면 손가락이 거의 무의식적으로 움직여 자판을 두드리는 것이나 운동선수들이 활용하는 이미지 트레이닝은 신체를 움직이고 단련하는데, 생각이나 정신을 먼저 다스리는 사례이다. 무용은 신체의 움직임이 아름다운 감성을 만들어 내므로 그 반대의 예가 될 만하다.

 

커피의 본성을 올바르게 누리기 위해 이제 음용법이 바뀌어야 한다. 커피를 마실 때 달다, 쓰다, 시다는 등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바에 멈추지 말아야 한다. 커피 향미가 나로 하여금 어떤 생각을 떠오르게 하는지를 인내심을 갖고 따라가야 한다. 한 잔에 담긴 커피는 내 몸으로 들어와 목을 타고 내려가면서 나의 관능이 되고 나의 일부가 된다. 그것은 감각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유를 통해 이루어진다. 세계적으로 커피의 가치는 ‘나를 생각으로 이끈 것(To make me think)’에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쓰고 떫고 시고, 자극적인 커피는 우리의 생각을 멈추게 만든다. 좋은 커피인지 아닌지는 우리를 얼마나 깊은 생각으로 이끄느냐에 달려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8월 23일, 박영순(바오로, 커피비평가협회장, 단국대 커피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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