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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하는 커피25: 빛과 심상의 색, 그리고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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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11-15 ㅣ No.622

[사유하는 커피] (25) 빛과 심상의 색, 그리고 커피


제의 색에 의미 있듯 커피에도 향과 색이

 

 

1665년 영국을 휩쓴 흑사병을 피해 고향 집에 가 있던 스물세 살 뉴턴은 빛에서 색을 발견했다. “색은 단지 특정 파장의 빛이 반사된 데 따른 물리적 현상”이라는 설명은 놀라움과 함께 적잖은 실망감을 주었다. 빛에 대해 인류가 품어온 신비로움과 상상력이 한순간 수그러들었기 때문이다.

 

색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명쾌하게 풀어낼 수 있는 현상이 아니었다. 색의 변화무쌍함을 설명할 수 없는 모호함은 인류에게 수많은 상상력을 키워낼 여지를 주었다. 데모크리토스는 빛의 자극뿐 아니라 인간 내부에서 나오는 알 수 없는 물질이 자극과 버무려지면서 색이 감지된다고 봤다. 플라톤에게 색채는 참된 쾌락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였고,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색은 물, 불, 공기, 토양 등 자연의 어우러짐이 결과로 드러나는 것이었다. 이에 앞서 고대 이집트인들은 금색은 태양, 녹색은 자연, 파란색은 하늘을 보고 벽화를 그렸다. 그들에게 색채는 의미를 담아내는 상징이었다.

 

색에 대한 이러한 지적 호기심에 뉴턴은 한마디로 찬물을 끼얹었다. 가톨릭도 영향을 받았다. 13세기 초 인노첸시오 3세 교황이 전례력에 따라 특정 색의 제의를 입도록 했다. 250년가량 지나 성 비오 5세 교황 때에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전례색 규정이 확정됐다. 이때가 뉴턴이 빛에서 색을 가려내기 100년쯤 앞선 시점이다.

 

사제의 제의 색상에 따라 미사의 의미를 더욱 깊게 가슴에 새겨온 신앙인은 ‘색은 단지 물질 현상’이라는 해석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신앙인들이 보기에 제의의 색상은 분명 심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었다. 부활, 성탄 미사에서 백색 제의는 예수님의 영광과 결백, 기쁨을 더욱 드높여준다. 순교자 축일의 홍색 제의는 피와 열정과 사랑을 더 또렷하게 떠오르게 하고, 대림과 사순 시기의 자색 제의는 참회로 이끈다.

 

색은 뉴턴의 말대로 기계적인 물질 현상의 결과일 뿐일까? 뉴턴이 세상을 떠나고 22년 뒤 신성로마제국의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난 괴테는 뉴턴의 색에 관한 광학은 틀렸다고 일갈했다. 괴테가 마흔한 살이던 어느 날 뉴턴처럼 프리즘을 통해 색을 관찰하다가 흰색과 검은색의 경계에서 색깔이 만들어지는 것을 발견했다. 100여 년간 진리처럼 여겨진 뉴턴의 주장에 허점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괴테는 이후 20년간 색채 연구에 매달려 환갑이던 1810년 색채론을 발표했다. 괴테는 빛과 어둠의 경계에서 모든 색이 만들어지며, 같은 색이라도 사람의 마음 상태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탈리아 예술 여행과 평소 산행을 통한 자신의 체험담이 담긴 것이지만 과학적 이론으로 뒷받침하진 못했다. 하지만 같은 풍경도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른 감성이 형성된다는 괴테의 직관은 인상주의라는 미술사조의 탄생에 영향을 주었다.

 

사실, 인간이 색을 보고 아무런 감성을 키워내지 못한다면 새우만도 못한 존재이다. 인간은 적색, 녹색, 청색 등 3개의 광수용체만 있어 가시광선만을 볼 수 있는 반면 새우는 16개 광수용체를 지니고 있어 자외선과 편광까지 볼 수 있다. 새우가 보는 세상이 인간이 보는 세상보다 다채롭다.

 

색이란 인간에게 무엇인가? 커피를 통해 답을 할 수 있다. 커피 전문가들은 110칸으로 구성된 색상환을 가지고 향미를 공부한다. 커피를 마시면 과일, 견과류, 꽃, 캐러멜, 흙과 같은 향들과 함께 특정 색이 떠오른다. 후각과 미각뿐 아니라 시각까지 자극돼 더 풍성한 감성을 느낄 수 있다. 이런 공감각은 신이 주신 선물이 아닐 수 없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11월 8일, 박영순(바오로, 커피비평가협회장, 단국대 커피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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