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목)
(백)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너희 기쁨이 충만하도록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예화ㅣ우화

꽃들에게 희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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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우 세자요한 신부 [john1004] 쪽지 캡슐

1999-06-12 ㅣ No.3

 꽃들에게 희망을

글 : 트리라 포올러스

 

한 옛날 줄무늬 진 작은 애벌레 한 마리가 살았습니다. 애벌레는 오랫동안 자기를 보호해 준 알을 깨고 향기로운 바람이 있는 세상으로 나왔습니다. "안녕 세상아?" 첫 인사를 했습니다. 배가 고파서 곧 그가 태어난 곳인 녹색 잎을 갉아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잎도. 이리하여 애벌레는 점점 크게 자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먹는 것을 중단하고 생각에 잠겼습니다. "삶이란 그냥 먹고 자라는 것 외에 더 오묘한 무엇인가가 있을 것 같은데." 그래서 줄무늬는 여태 풍성한 먹을 것과 참된 희망을 주던 정 들었던 나무를 떠났습니다. 그는 그 이상의 것을 추구하고 있었습니다. 땅 위에는 온갖 희한한 것들이 가득 차 황홀경에 빠지게 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것도 그를 만족시켜 주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기처럼 기어다니는 또 다른 것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먹는 일에 열중하느라 이야기 할 틈이 없는가 봅니다. 옛날에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저들은 삶에 대하여 나보다 아는 게 없구나." 하고 탄식할 뿐입니다.

 

어느 날 줄무늬는 하늘 끝까지 치솟은 크나 큰 기둥을 향해 기어가는 다른 무리들을 만났습니다. 그는 그들과 같이 가다가 기막힌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 웅장한 기둥은 서로 밀치며 앞서 가려는 질서 없는 애벌레 더미라는 것을. 애벌레들은 꼭대기에 오르고자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꼭대기는 구름 속에 가려져 있었기에 그 곳에 과연 무엇이 있는지 줄무늬는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또 다른 흥분을 느꼈습니다. "내가 찾고자 하는 것이 어쩌면 저 속에 있는지도 몰라." 쉴 새 없이 많은 애벌레들이 그의 옆을 지나 그 기둥 속으로 사라져 갔습니다. 그도 그 속으로 밀고 들어갔습니다. 줄무늬는 사방으로부터 밀리고 채이고 밟히고 했습니다. 밟고 올라서느냐 밟히느냐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과감히 밟고 올라섰습니다. 전쟁과 같은 상황에서 이미 친구란 없어진지 오래입니다. 이제 그들은 하나의 위협이요, 장애물일 뿐이며 그들은 서로 딛고 올라서서 위로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겨야 한다는 그의 무서운 집념은 정말 높은 곳에까지 올라 올 수 있게 만든 것 같았습니다.

 

몹시 약이 오른 어느 날 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꽥 소리를 질렀습니다. 한데 그의 발아래 밟혀 있던 노랑 애벌레가 말을 걸어 왔습니다. 둘은 서로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다시 각자의 발길을 옮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직 하나 뿐인 올라가는 통로를 막고 서 있는 그녀를 만났습니다. "자, 네가 밟히느냐 내가 올라서느냐 이거다."하고 그녀를 밟고 올라서고야 말았습니다. 줄무늬는 노랑이의 날카로운 시선을 보고 자시 자신이 무서운 놈이라 느꼈습니다. "저 꼭대기에 무엇이 있든 과연 이런 행동을 할 가치가 있을까?" 줄무늬는 노랑이에게 미안하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무엇인가 있을 것이라고 믿어 왔던 기둥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올라가는 것을 단념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올라가는 일을 포기했습니다.

 

수많은 애벌레들이 그들을 밟고 올라오기에 그들은 서로를 꼭 껴안았습니다. 몸을 공처럼 둥글게 만들었습니다. 질식할 것 같이 숨이 막혔습니다. 그러나 행복했습니다. 꽤 오랜 시간 그들은 그렇게 있었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들이 눈을 떴을 때 그들은 기둥 옆에 나와 있었습니다. 그들은 풀밭에서 행복하게 노닐며 맛있게 먹고 점점 건강해져 갔습니다. 둘은 더욱 더 친해져 갔습니다. 하지만 줄무늬는 쉽게 미련을 떨쳐 버릴 수 없었습니다. '삶은 정녕 무언가 지금 이 이상의 것이 있을 거야.' 줄무늬는 또 방황하기 시작했습니다. 노랑이가 즐겁게 해 주려고 애를 썼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줄무늬는 노랑이를 뒤에 두고 올라갔습니다.

 

노랑이는 모든 것에 흥미를 잃어 버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낡은 애벌레 한 마리가 털 보자기에 싸여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아주 놀라운 사실을 듣게 되었습니다. "나비는 애벌레의 모습을 기꺼이 포기할 수 있을 만큼 절실히 날기를 원할 때 가능하단다. 이 고치 속에서 머무르는 동안 넌 점점 변하게 된단다. 애벌레의 삶으로 결코 돌아 갈 수는 없는 변화가 일어나는 동안 너나 나는, 누구의 눈에도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이미 나비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란다. 다만 시간이 걸릴 뿐이야! 겉모습은 과감히 죽어 없어지더라도 참모습은 여전히 살아 있어. 그리고 또 다른 것이 있지. 일단 네가 나비로 변한 후에는 '진정한 사랑'을 할 수가 있을 거야. 새로운 삶을 탄생케 하는 그런 사랑을 말이야. 그건 애벌레가 갖은 사랑보다 더 훌륭한 것이지."

 

그녀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날개를 가진 화려한 존재로 변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인데 하나 뿐인 생명을 걸 수 있단 말인가? 늙은 애벌레가 마지막으로 실을 뽑아 머리를 감아 덮으면서 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너는 한 마리의 아름다운 나비가 될 수 있어. 우리는 모두 너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노랑이는 모험을 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늙은 애벌레의 고치 옆에서 자신의 실을 뽑아서 그도 변화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한편 줄무늬는 그 전보다 훨씬 빨리 올라갔습니다. 다른 애벌레와 노랑이처럼 눈을 마주치지 않도록 조심했습니다. 인연이란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가를 잘 알고 있었기에 그는 전보다 단순히 더 독해진 것이 아니라, 무자비했습니다. 드디어 그는 목적지 가까운 곳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그 곳은 아무런 대화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살갗만 맞대고 있을 뿐, 그들은 서로에게 고치에 숨어 버린 존재와 같았습니다. 자기 자신이 더 높은 곳을 차지하기 위해 위에 있는 애벌레들을 밀쳐 떨어뜨렸습니다. 오직 자기 자신만이 존재할 분. 꼭대기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가 올라 온 기둥은 수많은 기둥들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는 노랑이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노랑아! 너는 무엇인가 알고 있었지? 그렇지? 기다림이 용기란 말인가?' 그는 허탈감을 안고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아름다운 나비가 날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내가 꼭대기에 갔다 왔는데 아무 것도 없었어." 그는 애벌레 하나 하나에게 속삭여 주었습니다. 그러면 "공연히 샘이 나서 가 보지도 않고 그러지?", "그것이 사실이라도 우리는 달리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잖아!" 라고 말 할 뿐이었습니다. "우리는 날을 수 있어! 우리는 나비가 될 수 있는 거야!" 그러나 그들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 걸어갔습니다. 대꾸조차 않으려 했습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홀로 맨 아래까지 내려왔습니다. 피곤에 지친 몸과 슬픈 마음으로 노랑이와 지냈던 곳에 갔지만 그녀는 없었습니다. 그는 스르르 잠이 들었습니다. 이윽고 깨어 보니 노란 나비가 있었습니다. 나비는 그에게 무엇인가 말을 했지만 그는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서서히 이해할 수가 있었습니다.

 

마침내 그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줄무늬는 기어올라갔습니다. 또 다시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모든 것을...... 그러는 동안 노란 나비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제부터 새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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